청와대 개입할수록 무기중개상들만 신난다
  • 김종대 | 군사안보 전문가 前 ‘디펜스21플러스’ 편& (.)
  • 승인 2016.01.14 16:58
  • 호수 137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대 정권마다 반복되는 무기 도입 사업 비리의 근원은 정부권력

2000년에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 사건이 터진 후, 갑자기 국내에서 무기중개업체가 300개 넘게 개업을 했다. 미모의 로비스트가 정·관계 인맥을 배경으로 거침없이 무기 도입 사업을 틀어쥐는 사연을 접한 사람들 사이에서 ‘무기 사업은 한 건만 성사시켜도 평생 먹고산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그 영향인지 사람들은 무기 거래에서 모종의 신비감 또는 매력을 느껴왔다.

비정상적으로 과잉 성장한 무기거래업계는 서서히 자기 출혈을 시작했다. 외국의 무기 공급업체에 수수료를 대폭 인하하거나, 심지어 아예 수수료를 받지 않고 중개 업무를 대행해주기 시작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렇듯 자해적 경쟁으로 신규 무기중개상은 스스로 자취를 감추었다. 역시 무기 거래 시장의 패권은 1960~70대의 경험이 많은 무기중개상에 의해 여전히 장악되어 있다.

2012년 10월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 대장 진급 및 보직신고식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조정환 신임 육군참모총장 등이 보직신고를 마치고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들도 역시 무기 거래 자체가 아니라 무기 거래를 성사시키고 난 이후에 무기 운용·유지 과정에서 발생하는 후속 군수지원 사업에서 일정한 사업권을 획득하는 방법으로 수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예컨대 미국에서 전투기를 도입하는 경우, 무기중개상은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중개 업무를 대행해주지만, 전투기 도입 이후 거기에 사용될 부품·탄약 공급과 같은 사업을 따내서 보상을 받는 방식이다. 전투기 도입이야 단 한 번의 계약으로 끝나지만 해당 전투기에 사용될 부품이나 탄약은 30년 이상 상시적으로 이어지는 사업이고, 그 규모도 전투기 도입보다 월등히 크고 안정적이다. 결국 위험이 따르는 전투기 도입 자체보다 그 이후를 노리는 기가 막힌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여전히 군과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장기전을 노리는 기존 무기중개상이 최후 승자가 되는 것이다. 한탕주의의 환상에 젖어 함부로 무기 거래에 뛰어든 아마추어는 생존하기가 어렵고, 장기전에 능한 경험 많은 무기중개상이 생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 무기 거래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방산 비리를 척결한다며 국내 무기중개상을 조사 및 수사하는 검찰·감사원·국세청 등은 무기 거래 당시에 거액의 뇌물이 무기중개업체를 통해 오고 갔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업체에 전격적으로 쳐들어간다. 예컨대 이명박(MB) 정부 당시에는 김대중(DJ) 대통령 시절 계약이 성사된 5조원대 규모의 F-15K 전투기 도입에 관여된 무기중개업체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했다. 당시 집권 세력은 애초 4조원대로 계획된 전투기 사업이 실제로는 5조원대에 거래된 배경에는 그 차액 1조원이 거액의 비자금으로 조성됐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2009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비리로 구속된 장수만 방위사업청장 후임으로 부임한 노대래 신임 청장에게 “무기 리베이트(뇌물)만 없애도 국방예산의 20%가 절약된다”는 발언을 했다. 여기서 20%라는 수치는 사업비가 20% 증가한 F-15K를 염두에 둔 발언임이 분명했다. MB 정부는 해외 무기 도입 사업에서 과거 정부의 비리를 찾기 위해 이후로 또 3년을 방산 비리 척결에 매진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2014년 국회 시정연설에서 “방산 비리는 이적행위”라며 정부 차원의 방산비리합동조사단을 발족하고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수사를 해보니 방산 비리는 “끝까지 방산 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던 MB 정부 시기에 거의 대부분 저질러진 것으로 드러났다. 통영함의 음파탐지기, 와일드캣 해상작전헬기,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 잠수함의 축전지와 같은 해외 무기 도입은 물론이고, 이른바 한국형 무기라고 불리는 K-2전차, K-21장갑차, K-11복합소총, 청상어·홍상어 어뢰와 같은 개발 무기까지 거의 대부분에서 불량과 부실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런 부조리는 대략 2009~11년 사이, 즉 MB 정부가 방산 비리 척결을 외치며 고강도 수사를 벌이던 바로 그 시점에 이뤄졌다.

복잡한 절차 만들면 비리 개입 여지 더 커져

왜 방산 비리가 이 시점에 주로 집중되어 있는지가 바로 우리나라 방산 비리의 본질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과거 정부의 무기 도입을 비리라고 단정 짓고 전문성이 결여된 청와대가 직접 무기 거래를 장악한 결과다. 그러자 이것이 오히려 무기중개상에게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 셈이 된 것이다. 장시간을 요하는 무기 도입 과정은 사업의 타당성 조사, 대상 장비 선정, 시험평가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절차를 준수하면 비리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러나 청와대가 실무 부서에서 이미 검토가 끝난 입찰 및 계약 과정에 개입해 정책을 변경하면 이 틈을 노려 한탕주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페이퍼컴퍼니인 유령회사가 등장하고, 시험평가서를 조작하거나 가짜 장비를 슬그머니 끼워넣는 식으로 개입하기가 용이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MB 정부는 국내에서 개발하던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를 해외에서 구매하기로 정책을 변경했다. 역시 국내에서 개발한 국산 수리온 헬기를 해상작전헬기로 개조하려던 계획을 무산시키고 해외 구매로 선회했다. 그 즉시 무기중개상이 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비리를 저지르는 수순으로 나아갔다.      

무기중개상 입장에서 보면, 국내 개발은 그 과정이 번거롭고 장기간을 요하지만 해외에서 완성 장비를 긴급히 도입할 경우에는 사정이 급한 군만 잘 컨트롤하면 무리 없이 수익을 거둘 수 있다. MB 정부의 무기 도입 사업이 번거로운 국내 개발을 포기하고 주로 긴급 소요 전력으로 해외에서 단기간 내에 무기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상당 부분 선회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예컨대 잘 알려진 일광공영의 이규태씨는 국내에서 개발되던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를 터키에서 도입하는 것으로 갑자기 정책이 변경되자, 터키로 가서 500억원의 장비를 1000억원으로 부풀려 한국 공군에 왕창 바가지를 씌웠다. 전문성 없는 정치권력이 무기 도입 정책을 함부로 바꾸는 그 자체가 비리였다. 장기적으로 사업을 관리하는 사업가다운 면모가 아니라 눈먼 돈을 찾아다니는 한탕주의 세력으로 무기중개상이 타락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가 무기 거래에 과민 반응을 보이며 방사청의 입찰에 개입하고, 검찰·국세청·감사원이 무기 거래 의사결정 라인에 행위자로 참여하는 현상이다. 방사청에 신설된 파견검사에 의한 국방감독관 직위가 바로 그런 사례다. 이렇게 절차가 방만해지면 오히려 무기중개상들이 방산 비리를 저지르기가 더 쉬워진다. 행위자가 많으면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