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통령 서명운동 독려에 재계 “제발 좀.."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6.01.20 16:57
  • 호수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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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입법 서명운동 대통령 참여로 정치논란으로 변질돼

"유신시대로 회귀한 느낌이다"

한 재계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대한민국 재계가 요즘 유례없던 서명 삼매경에 빠졌다. 그동안 시민단체가 재계를 비판하는 서명운동을 하는 경우는 많아도 재계가 서명운동의 주체가 된 적은 없었다. “새로운 서명문화가 생겼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번 서명운동의 중심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떠올랐다. 박 대통령은 18일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이번 박 대통령의 서명은 재계에서 요청한 것이 아니라 박 대통령이 직접 결정한 것이다. 서명운동을 시작하기 하루 전인 17일 청와대 측에서 재계에 서명 참여 의사를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서명 이후 정부 관료들의 서명도 이어지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이 참여했고 심지어 경제입법과 깊은 관련도 없는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서명에 나섰다. 일부 새누리당 총선 출마자도 보도자료 까지 내며 “대통령도 참여했는데 도민들도 서명운동에 동참하자”고 외치고 있다.

대통령 손끝에서 시작된 정부관들의 서명운동을 반가워할 것이란 시각과 달리 제계에선 오히려 불편해 하는 모습이다. 대통령과 관료들이 나서기 시작하며 서명운동 취지 자체가 정치공방으로 변질되고 훼손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대통령의 참여로 서명운동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심지어는 재계를 위한 서명운동임에도, 대통령이 앞장서서 '재벌 안티'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야냥까지 수혜자인 재계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의 서명 참여 후 해당 서명운동은 곧바로 정치적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 민주당 대표는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재계의 서명운동이 관제 서명 운동이라는 게 드러났다”라며 “이승만 박정희 때 관제 데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의 서명운동 참여는 결국 경제이슈인 경제입법조차 정치이슈로 변질시켜버리는 결과를 초래한 꼴이 돼버렸다. 대통령 서명 이후 서명운동이 재계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서명의 주체가 돼야하는 국민들은 한파와 불경기에 서명할 여력도 없어 보인다.

재계는 최근 청와대의 행보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지난 9월엔 박근혜 펀드라 불리는 청년희망펀드에 기업들이 수 백 억 원의 기부금을 냈는데 이 역시 눈치 보기로 이뤄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일각에선 청와대가 친 기업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재계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부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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