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위작’
  • 정준모 | 前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 승인 2016.01.28 19:31
  • 호수 1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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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미술품 위작 논란, 그 유통 과정과 근절 대책

미술품 위작(僞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짜’들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공신력 있는 감정기구의 설립이 중요하지만, 공신력을 갖춘 감정기구나 감정 결과가 존재하기란 원천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다. 여기에 감정 전문가들의 의견보다는 일반인들의 추측과 상상에 의존하거나, 또는 미술계에 종사한다는 이유만으로 검증이 안 된 이들의 말만 신봉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무시되는 사회에서 가짜 미술품들을 가려내는 일은 마치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내 미술계의 가짜 미술품 실태는 사단법인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산하 ‘한국미술감정평가원’의 발표를 보면 알 수 있다.<86쪽 표 참조> 이들이 발간한 백서에 의하면, 2012년을 기준으로 이전 10년간 총 5130점의 감정 의뢰를 받아 이 중 1329점인 26%를 위작으로 판단했으며, 진작(眞作)은 3655점(71%)이었고, 나머지 3%는 판정 불능으로 결론지어졌다.

① D급에 해당하는 박수근의 위작.② C급에 해당하는 천경자 작품의 위작.③ D급에 해당하는 이중섭의 위작.④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사이에 북한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김관호 작품의 위작.

또한 감정 의뢰가 가장 많이 들어온 천경자 화백 작품의 경우, 총 327점의 감정 의뢰작 중에서 99점인 30.3%가 위작 판정을 받았다. 두 번째로 감정 의뢰가 많은 것은 김환기 화백 작품으로, 총 262점의 감정 의뢰작 중 63점(24.0%)이 가짜였다. 특히 감정 의뢰가 많았던 10명의 미술가 중 위작 판정 비율이 가장 높은 화가는 이중섭 화백이었다. 총 187점의 의뢰 작품 중 108점(58.8%)이 위작이었다. 박수근 화백의 경우도 총 247점의 의뢰 작품 중 94점(38.1%)이 위작 판정을 받았다. 진품보다 위작이 더 많았던 셈이다. 이는 아무래도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고 작품가가 비교적 비싸게 형성된 작가들의 경우라는 점에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 2003부터 2012년까지 감정을 의뢰받은 총 5130점 중 1329점이 위작으로, 전체의 4분의 1이 위작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 결과만으로 우리 미술 시장에 위작이 많다거나, 또는 우리 미술 시장에 유통되는 미술품의 넷 중 하나가 가짜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이들 위작 중 대다수는 소장가들이 매매를 위해 감정을 의뢰하기보다는 호기심 또는 궁금증 해소 차원에서 감정을 의뢰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가짜 미술품 생산·유통하는 ‘공장’이 문제

사실 위작이 나오는 배경과 그 질도 다양하다. 우선 위작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모사(模寫)·임화(臨畵)류다. 즉 미술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학습 과정에서 유명 작가의 작품을 따라 그려보며 표현 기법이나 재료를 연구하고 익히는 과정에서 제작된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들의 경우 이사를 가거나 집수리를 할 때 쏟아져 나와 고물상이나 재활용센터 등을 거쳐 위작을 다루는 고화(古畵) 또는 고화서양화로 분류되어 서울 황학동 인근과 동대문 풍물시장, 답십리, 장한평 등을 거쳐 시장으로 흘러나온다. 이런 임화 작품들은 원래 가짜를 만들려는 의지 없이 제작된 것이어서 대개 그 수준이 D급이나 C급인 것이 대종(大宗)을 이룬다. 그래서 조금의 안목만 있다면 금방 위작임을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간혹 B급 임화들에 대한 감정 의뢰가 들어오면 감정가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이런 위작들의 경우에도 후손들이 궁금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감정을 의뢰하기 때문에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작품들이 본의 아니게 벼룩시장 등으로 흘러나오면서 발생한다. 이런 유(類)를 취급하는 사람들 중 그 무리에서 제법 안목이 있다고 하는 자가 이른바 ‘○○○류’의 작품으로 분류하면서 다른 고물보다 조금 더 높은 가격과 대접을 받고 팔려나간다. 그러다 간혹 전문가인 척하는 이들에 의해 ○○○의 사인이 들어가 더욱 확정적인 진품 같은 가짜 작품으로 둔갑하면서 문제가 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순진한 편이다. 이런 작품들이 중간상들의 손을 거치면서 양지인 인사동 진출까지 모색하기도 한다. 일단 양지로 나오기 위해서는 감정서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감정을 의뢰하게 되는 것인데, 그때 위작 판정을 받고 좌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임화나 모작의 경우 감정 의뢰자들은 가짜를 진짜로 만들려는 의지보다는 마치 복권을 사는 심정으로 혹시나 해서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위작인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행여나 하는 심정으로 한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는 임화류의 작품들을 감정해달라고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가짜 미술품 생산과 유통의 다른 한 축인 이른바 ‘공장’이다. 이들은 아예 가짜를 만들어내는 생산과 유통이 분리된 점조직 형태로 움직인다. 이번 서울경찰청이 수사 중인 이우환 화백 위작의 경우도 이런 경우가 아닌가 생각된다.

1970년대 후반은 고서화, 조선시대 회화류의 위작 시대였다. 당시 활개를 치던 조직폭력배들이 고미술품을 수복 처리하면서 가필하거나 떨어져나간 부분을 그려넣는, 이른바 기술자라고 하는 복원 전문가들을 겁박해 제작하게 한 것이다. 1980년대에는 반(半)추상 회화와 근대 회화 위작들, 1990년대에는 주로 북한이나 중국 연변에서 제작된 위작들이 유입되었다. 이 시기에 인기 있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근대 작가, 월북 작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그 후 잠시 뜸하다 2012년께부터 미술 시장이 다시 활황을 이루자 위작 관계자들이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우환 화백의 위작과 관련해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현 아무개씨와 권 아무개씨, 김 아무개씨 등은 이미 이 분야에서는 전과가 있는 전문가로 알려진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런 가짜 미술품의 가장 커다란 수요처는 가짜 어음이나 수표 또는 채권을 소지한 사람들이나 선물용으로 구입하려는 조폭·정치가·관료들이다. 이들은 불법 자금을 세탁하는 통로로 이용하거나 추후 환금을 목적으로 감정서의 진위 여부나 작품의 진위에 크게 개의치 않고 음지 시장의 고객이 된다. 또 뇌물로 미술품을 받은 경우 어디에다 물어보기 어려운 사정 때문에 가짜를 선물로 주어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채무를 대신해서 그림으로 받은 경우 대부분이 가짜, 그것도 수준이 낮은 조악한 위작들이다. 이렇듯 미술계에서는 양지에서 음지를 지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음지에서 양지를, 또는 음지에서 거래되는 미술품들의 경우 대부분 위작이거나 태작(作), 졸작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미술품·문화재 전문 중개사’ 제도 도입 필요

열 순검이 한 도둑 못 지킨다고 했던가? 사실 많은 장치와 감정에도 불구하고 미술품 위작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 정부는 감정 인력 양성, 레조네(도록) 발간 등의 사업을 펼쳐왔지만 이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위작 근절과 미술 시장의 투명·공정을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미술품 및 문화재 유통관리법’을 통한 ‘미술품 및 문화재 전문 중개사’ 제도의 도입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우리 미술·문화재 시장 규모에 비해 수백 배 큰 유럽이나 미국 미술 시장에서 오히려 우리보다 위작 관련 뉴스가 적은 이유는 전문가들이 판단하고 결정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회적 성숙도도 한몫하지만,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모든 화상이 이미 300여 년 전부터 미술품이나 문화재를 사고팔 때 스스로 만든 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를 근거로 거래된 모든 작품에 대해 소장 경로(Provenance)를 분명하게 밝혀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진품이라는 귀중한 근거 자료로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하다.

위작 관련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전작 도록(Catalogue Raisonne)을 발행하고 감정 전문가를 양성하는 한편, 모든 작품을 데이터베이스화하자’고 떠들지만, 대한민국에서 그려지고 제작되는 모든 미술품을 데이터베이스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이는 엄청난 돈과 시간이 드는 일이다. 그나마 ‘미술품 및 문화재 전문 중개사’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세상의 모든 작품은 아니라도 일정 ‘거래’를 통해 검증된 작품은 자동적으로 해당 중개사 또는 중개사가 소속된 화랑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그리고 이 데이터베이스는 화랑협회나 미술품·문화재 유통센터의 컴퓨터와 연동된다. 이렇게 되면 거래가 투명하게 드러나 세금 징수에도 유리할 것이며, 중요 문화재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데도 편리할 것이다. 또한 많은 미술·문화재계의 고학력 저임금 비정규직 인력들에게 신규 일자리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투명해질 것을 요구받는 미술계·문화재계도 청정 지역이 될 것이다. 최소한 일석오조인 셈이다.

굳이 정부가 나서서 국민 혈세를 동원해 미술품·문화재 거래 때 발생하는 위작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 아니라, 민간 스스로가 해결하도록 법안을 제정하면 될 일이다. 사실 지금까지 실수로 위조된 미술품이나 문화재가 거래된 경우, 처음 판 사람에게 거슬러 올라가면서 배상이 이루어져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이는 공신력 있는 화랑에서 거래한 경우에 한한다.

문제는 중간상들이나 듣도 보도 못하던 사람들이 인사동 언저리에 ‘화랑’이라 내놓고 영업하는 쪽에서 거래된 문화재나 미술품이었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이우환 위작 논란 작품의 경우도 미술계에서 잘 알지 못하는, 화랑가에 나타난 지 몇 년 안 되는 ‘듣보잡’들이거나 아니면 변변하게 전시 한 번 하지 않은 중개인들이 연루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식으로 등록된 화랑이 전문 자격을 획득한 인력을 고용해서 미술품·문화재의 거래를 맡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어 누구나 미술품이나 문화재를 거래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많은 선량한 사람이 위작에 속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제라도 거래되는 미술품과 문화재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고, 작품 소장 경로와 서지 문헌 자료(Bibliography), 즉 해당 미술품이나 문화재가 실린 서적이나 도록, 인쇄 매체의 목록까지 거래 이력들을 문화재와 미술품에 따라다니게 한다면, 연일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위작 문제는 좀 더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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