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기약할 수 있는 슈즈 브랜드 만들겠다”
  • 박혁진 기자·장지연 인턴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02.18 17:11
  • 호수 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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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마켓에서 출발, 한국을 대표하는 슈즈 브랜드 기업 꿈꾸는 슈디자이너 임재연씨

우리 사회의 청년 실업 문제가 좀처럼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2016년 1월 발간한 ‘동향과 이슈’에 실린 ‘청년 고용의 대안과 서울시 청년수당의 의미’란 글을 보면, 2015년 국내 청년(15~29세)들의 실질실업률이 35%를 넘었다고 한다. 고교나 대학 졸업 후의 청년들로 범위를 좁히면 놀고 있는 청년들의 비율은 더 올라간다. 이런저런 대책에도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창업으로 눈을 돌리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창업은 생각처럼 만만치 않다. 산전수전 다 겪은 50대 퇴직자들이 고민 끝에 창업을 해도 실패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수능 다음 날 바로 노점 열어 신발 팔았다”

그런 면에서 슈디자이너 임재연씨(34)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임씨는 신발업계에서는 ‘이단아’로 분류된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같은 패션 선진국 유학파 디자이너들이 업계에 ‘똬리’를 틀고 있는 현실에서 고졸 출신인 그는 조금씩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고졸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눈여겨보는 것도 편견이지만, 그 편견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역할을 하는 임씨이기에 더욱 주목할 만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토정로에 그가 론칭한 신발 브랜드 ‘아크로밧’의 쇼룸이 있다. 그곳에서 임씨를 만났다.

‘아크로밧’ 쇼룸,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아크로밧’ 쇼룸에서 만난 슈디자이너 임재연씨. ⓒ 시사저널 최준필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홍대입구에 버금가는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토정로’지만, 아직까지 무채색 건물과 간판이 대부분. 알록달록한 신발이 전시된 아크로밧 매장은 거리 자체를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임재연씨는 “지난해에는 ‘멕시칸 스타일’을 콘셉트로 한 제품을 주로 만들었는데, 올해에는 ‘하와이안 스타일’을 신발에 표현해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1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글로벌 패션 브랜드 ‘H&M 패션쇼’에서 1등을 수상한 한국인 디자이너 김민주씨와 협업한 것이 알려지면서부터다. 패션쇼에서 김씨의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른 모델들은 모두 임씨가 디자인한 신발을 신었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3, 4등만 해도 언론의 주목을 엄청 많이 받는데, 사실 국내에서는 기사가 별로 나지 않았어요. H&M 쇼를 스톡홀름에서 진행했는데, H&M에서 저희가 진행하는 쇼의 비용이나 항공료 등 모든 것을 지원해 쇼를 굉장히 크게 열어줬는데, 한국인 기자들이 많이 오지 않아서 아쉬웠죠.” 임씨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패션계나 연예계 등에서 입소문을 타면서부터다. “공효진씨와 같은 많은 셀러브리티가 애용했던 ‘푸쉬버튼’이라는 한국의 하이패션 브랜드가 있어요. 이 브랜드가 먼저 제의를 해와 지난해 서울 컬렉션 무대에서 콜라보레이션(협업)을 하면서 국내 소비자들한테 조금 더 알려지게 된 것 같아요.”

최근에는 씨스타나 에이핑크와 같은 아이돌 그룹들이 입소문을 듣고 찾아와 제품을 구매하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임씨가 만든 신발보다도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그가 걸어온 길들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패션디자이너를 꿈꾸었던 그는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중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에게 있던 재능을 포기하지 않았다. 임씨에게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자신이 국제시장에서 직접 떼어 온 신발로 카탈로그를 만들어 주변 친구들에게 팔 정도의 재능이 있었다. 그는 수능 다음 날 바로 노점을 열고 신발을 팔았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플리마켓’이었던 셈이다. 제법 인기가 있었고, 6개월간 모은 돈으로 부산 국제시장에 1평짜리 점포를 열었다. 부산 지역에서 입소문을 탄 것은 물론이고 해외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인기를 모아 2호점과 3호점을 연달아 냈고, 서울의 홍대입구까지 진출했다. 지금은 미국 뉴욕과 LA, 홍콩, 중국에서도 임씨가 만든 신발이 판매되고 있다.

착화감 위해 세계 신발 200켤레 다 뜯어봐

성공의 이면에서 남모를 고생도 많이 했다. “2011년 ‘아크로밧’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간 모았던 돈은 물론이고, 사업을 하면서 마련했던 집도 팔았어요. 두 달 가까이 찜질방을 전전했죠. 집을 내주겠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찜질방에서 생활했어요. 외국에서는 물건을 사갈 때 바이어들이 직접 구매를 하지만, 한국은 주문한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다시 떠넘겨요. 한번은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한 대형 숍에서 물건이 마음에 든다며 150켤레를 주문했어요. 힘들게 제작해서 납품을 했는데, 안 팔린다며 다시 떠넘겨 큰 재고를 안게 된 일도 있었어요. 또 대기업이 제품을 카피하는 일은 비일비재하죠. 그런데 저는 디자인에서 카피는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가치를 키우는 방법밖에 없죠. 오리지널을 신은 사람들이 프라이드를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게 숙제죠.”

청년 창업에 장밋빛 미래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임재연씨는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자기희생과 실패가 촉매 역할을 하지 않으면, 어떠한 외부적 지원도 빛을 발하기 어려운 것이다. 여기에 학벌, 유통환경 및 디자인 카피와 같은 외부적 요인을 ‘상수(常數)’로 받아들이고 극복해가는 것 또한 임씨가 가진 장점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자신이 만든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임씨는 아크로밧 슈즈의 특징인 편안한 착화감(着靴感)을 위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신발을 직접 신어보고, 편안하다고 느낀 신발 200켤레 이상을 구입해 모두 뜯어봤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만드는 신발의 착화감은 국내 어느 브랜드 제품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다. 임씨는 질문하는 기자에게도 직접 신발을 신겨가며 설명을 하기도 했다. 임씨는 최근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강의도 하며 조금씩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다. 임씨의 목표는 아크로밧을 100년 후에도 대를 이어서 신발을 만드는 한국의 대표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다. “사실 자체 브랜드를 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죠. 소재나 디자인 등 쉽게 갈 수 있는 부분에서도 원칙을 고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익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눈앞의 이익을 좇는 것이 아니라 100년을 기약할 수 있는 브랜드, 대를 잇는 한국을 대표하는 슈즈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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