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 그룹, 권력 2·3세 그룹 그리고 여인들
  • 이영종│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03 18:05
  • 호수 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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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을 움직이는 3대 배후 세력의 실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도발 드라이브’가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와 주변 정세를 요동치게 하고 있다.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에 이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남북 관계도 꽁꽁 얼어붙었다. 대남 테러 역량을 결집하라는 김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북한군 정찰총국이 이를 준비하고 있다는 국가정보원의 보고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 정보 당국은 김 제1위원장의 다음 행보와 도발 카드에 주목하고 있다. 장고(長考)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그가 개성공단 폐쇄와 같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 카드에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지에 따라 향후 정세가 변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의 전례 없는 무력시위에 대해서도 더욱 긴장을 높이는 선택을 할지, 다음 수순을 겨냥해 잠정적으로 타협점을 찾는 제스처를 취할지도 관심거리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쌍방기동훈련을 직접 참관·지휘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월21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가신 그룹, 스위스 유학 챙긴 리수용 주목

 


이와 더불어 한·미 정보 당국 요원과 분석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의사결정 과정과 이를 주도하는 인물들이라고 한다.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 등 강경 국면을 조성하는 데 김 위원장의 정책 노선을 제시하고 조언하며, 그의 결심을 얻어내는 권력 내 핵심 인사나 그룹의 존재를 파악하려 애쓰고 있다는 얘기다. 권력 서열의 앞부분에 위치하는 노동당과 군부·내각의 고위 인사들은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김 위원장의 통치 노선이나 리더십 부각을 위한 선전·선동술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하는 인물들이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란 측면에서다. 검은 베일에 가려진 ‘김정은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보이지 않는 김정은 제1위원장 조언 그룹으로 우선 꼽히는 인물들은 평양 로열패밀리와 가장 가까운 공간에 머무르고 있는 가신(家臣) 그룹이다. 고위 탈북 인사나 정보 당국의 대북 분석관들에 따르면, 우리의 청와대 비서실 격인 김정은 위원장 서기실에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핵심 보좌 그룹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24시간 집무실과 관저 주변에 머무르며 수시로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고서를 올리고 각종 검토와 조언 작업을 벌인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혁명일화’로 불리는 문헌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야심한 시간에 자신의 측근 그룹 사무실에 들러 의자에서 잠들어버린 간부에게 외투를 벗어 덮어줬다는 등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들 그룹 중 일부 인사는 한국이나 서방 국가로 탈북·망명해 신분을 감춘 채 살고 있는데, 정보 당국은 이들의 진술을 통해 서기실의 조직과 규모, 내부 업무 흐름 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성공단 자금이 서기실로 유입됐다는 최근 정부 당국의 발표도 이를 토대로 이뤄졌다.

 

가신 그룹은 김일성의 이른바 항일 빨치산 활동 당시 동료나 부하였던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 최광 전 총참모장, 리을설 북한군 원수 등의 가족이나 혈연으로 엮인 사람들로 철저한 검증 과정을 통과해 일하게 된다고 한다. 북한 정권 수립에 일정한 지분이 있는 인사들의 친인척 그룹이 최근 들어서는 이 자리를 대물림하는 현상까지 나타난다는 첩보도 있다. 최고지도자와 직접 접촉하고 논의를 벌이는 책임자급은 상당한 경력을 가진 고령 인사가 주축을 이루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 위원장 관련 정책 개발이나 각종 교시, 명언집 작성 등을 위해서는 방대한 문헌 자료가 보관돼 있는 노동당 자료실의 수백 명 규모 베테랑 전문가들을 거느리고 있는 부부장급 인물이 책임자급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 집권을 전후해 평양 가신 그룹에 합류한 특이한 인물들도 있다. 리수용 외무상을 비롯한 스위스 파벌이다. 전문 외교관이나 관료들에 속하는 이들은 김 위원장의 스위스 조기 유학 때 현지 체류생활과 학교 문제 등을 챙기면서 자연스레 최측근으로 자리 잡았다. 리수용은 1980년 스위스 제네바 대표부 공사를 시작으로 30년간 ‘이철’이란 가명으로 스위스 공관에서 일했다. 어린 김 위원장의 베른 국제학교 등교까지 챙겼을 정도로 가까이 지냈고,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생모인 고영희(2004년 사망)의 신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리수용은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지명되기 6개월 전인 2010년 4월 평양으로 귀환해 합영투자위원장과 외무상 등을 맡았지만, 실제로는 김 위원장을 보좌하는 역할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 당국자는 “리수용은 스위스 부임 이전 당 조직지도부 서기실의 책임비서를 맡는 등 최고지도자 측근 그룹으로서의 기본기를 다진 인물”이라고 귀띔했다.

 

리수용, 리설주, 김여정 ⓒ 연합뉴스

 


권력 2·3세 그룹, 오세원 등 ‘봉화조’ 눈길

 

둘째로는 김정은 제1위원장과 비슷한 또래의 그룹이 지목된다. 김 위원장과 친형 김정철이 스위스 유학을 마치고 귀환한 2000년 초반부터 함께 어울린 당과 군부·내각의 핵심 인사 2세 또는 3세 모임 멤버들이다. 이들이 최고지도자 권력을 거머쥔 김 위원장에게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건 김정은 위원장과 김정철이 주도한 ‘봉화조’란 조직의 존재다. 미국 워싱턴타임스(WT)는 2010년 5월25일자 보도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들이 포함된 북한 최고위 권력자들의 2세 사조직이 존재한다”고 봉화조의 존재를 처음 알렸다. 이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에 대응한 제재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봉화조라고 불리는 이 단체의 존재를 파악하게 됐다. 봉화조는 중국의 당·정·군 고위층 인사들의 자녀군(群)을 일컫는 ‘태자당’과 닮은꼴의 집단이란 얘기다. WT의 보도는 특히 봉화조의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관심을 끌었다. 이 단체의 실질적 리더로는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아들 오세원이 꼽혔다. 또 북한의 대미 외교 브레인인 강석주 당시 외무성 제1부상(현 부총리)의 아들 강태승, 김정일 서기실 부부장 출신인 김충일의 아들 김철운,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원홍의 아들 김철, 보위부 김창섭 부국장의 아들 김창혁 등이 봉화조 멤버로 알려졌다.

 

친인척 그룹, 리설주·김여정 등 ‘여인 파워’


눈길을 끄는 건 김정은 위원장과 봉화조의 관계다. 당시 외신 보도와 우리 정보 당국의 첩보를 종합하면, 김 위원장이 봉화조 멤버들과 가깝게 지냈고 20대에 들어 정식 가입했다. 또 형 김정철의 경우 봉화조를 통해 마약을 구입하기도 했다는 게 미국 재무부 측의 시각이었다. 우리 정부 당국자는 “어릴 때부터 탄탄한 친분을 쌓은 이들 그룹이야말로 김 위원장에게 스스럼없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서방 유학 생활 경험이 있고 해외여행도 잦은 데다 인터넷 사용도 가능할 정도의 지위를 갖고 있어 국제 정세 등에 대해서도 비교적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이 집무실에서 주로 상대해야 하는 60~80대 고령의 간부들과 달리 또래 집단이라는 점이 이들 그룹의 강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의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인물이나 그룹 중 세 번째로 꼽히는 것은 가족이나 이른바 ‘백두혈통’으로 불리는 김일성 가계의 친인척 그룹이다. 특히 과거에는 은둔을 강요받던 여인들의 약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평양판 신데렐라’로 불리며 2012년 7월 공개석상에 등장한 부인 리설주는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에 동반하며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두 아이를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김정은 부부는 금실도 좋은 편이라 리설주의 조언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 부부장은 올 들어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까지 경제나 사회 분야 공개 활동에 김 위원장을 수행했는데, 올해에는 광명성 로켓 발사 참관에 동행하는 등 선전선동 부부장의 위상을 넘어서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우리 정보 당국자는 “리설주는 내조, 김여정은 외부 활동을 보좌하는 쪽으로 동갑내기(27) 시누이와 올케의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고모 김경희는 한때 북한 김정은 권력의 안방마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남편 장성택이 반역죄로 처형당하면서 외부 활동을 접고 세력도 잃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슈퍼 돈주’ K씨, 또 하나의 숨은 권력?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3대 배후 그룹 이외에도 막대한 경제력을 가진 이른바 ‘슈퍼 돈주(신흥 자본가)’ K씨가 꼽히고 있어 눈길을 끈다. ‘돈주’는 북한식 시장경제의 근간인 장마당 경제와 각종 유통 사업 등을 통해 달러와 위안화를 거머쥔 신흥 자본가를 말한다.

 

 

북한의 돈주 가운데 K씨는 천문학적인 자금 동원이 가능해 북한 외화벌이 일꾼과 경제 관료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인물이라고 한다. 김 위원장이 집권 이후 주력한 평양 문수물놀이장 건설과 순안국제공항 리모델링 사업, 원산 인근 마식령스키장 건설 등에 필요한 자금줄 상당 부분을 K씨가 쥐고 있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일각에서 북한 계획경제의 특성이나 수령제라는 점, 김정은의 공포정치 등을 고려할 때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70대 나이로 알려진 K씨를 둘러싼 평양발 소문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대북 소식통은 “평양시 고층 아파트 건설 자금 등을 조달하는 데도 K가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당은 물론 김정은 위원장도 함부로 다루기 어려워하는 인물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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