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잡는 퍼제타 알고도 못쓰는 서민
  • 윤민화 기자 (minflo@sisapress.com)
  • 승인 2016.03.07 18: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회당 400만원..."보험 급여 항목에 포함해야"

#전미경(54·서울 강서구)씨는 2014년 12월 유방암 간 전이 4기를 판정받았다. 당시 림프, 간까지 암이 전이된 상태였다. 급하게 퍼제타, 허셉틴 조합으로 치료받기 시작했다. 6차 치료 후 간으로 전이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치료가 가능할진 미지수다. 퍼제타가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탓이다. 퍼제타 치료비는 회당 400만원 이상이다. 그는 “지난 10월 실손이 중단된 이후 치료에만 3000만원가량 쏟았다. 퍼제타가 앞으로 급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돈 때문에 생명을 포기해야 할까. 비싼 약값에 효능 좋은 치료제를 포기하는 유방암 환자가 늘고 있다. 대표적 예가 로슈의 유방암 표적치료제 퍼제타다.

퍼제타는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표적치료제 중 하나다. 표적치료제는 무진행 생존기간, 전체 생존기간(OS)을 연장시키고 부작용을 크게 줄인다. 특정 종양에만 반응하기 때문이다. 한국로슈의 허셉틴(트라스투주맙), 퍼제타(퍼투주맙), 캐싸일라(트라스투주맙 엠탄신) 등이 대표 표적치료제다.

대규모 임상시험업체 클레오파트라 연구에 따르면 도세탁셀, 허셉틴, 퍼제타 병용요법은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치료 경험이 없는 환자의 전체생존기간을 56.5개월까지 연장했다. 도세탁셀, 허셉틴 병용요법보다 15.7개월 길다.

환자 생명이 연장될수록 투여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퍼제타를 비급여로 분류한 탓이다.

퍼제타 치료를 중단하고 다른 약제로 대체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다. 한국로슈 관계자는 “퍼제타로 치료 받다가 치료법을 바꿀 수 있는지는 임상 연구한 적이 없다. 항암요법 변경은 의료진의 임상 판단에 따를 문제"라고 말했다.

◇ 심평원 “로슈가 재검토 신청해야 재평가 가능"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홈페이지에 유방암 환우들의 퍼제타 급여 적용에 대한 요청이 쇄도중이다. / 사진=한유협회 홈페이지

심평원은 지난 12월 퍼제타의 급여화 심사 결과 비급여로 결정했다. 임상 효과는 개선됐지만 대체 약(트라스투주맙+도세탁셀) 비용과 비교해 너무 비싸다는 해석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제약사가 약가를 낮추거나 약제 효과를 크게 개선한다면 급여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라며 “해당 제약사는 심의평가때 약제 가격을 평심원의 기준 범위에 못 미쳤다. 퍼제타는 비슷한 효능을 지닌 약제와 비교해 매우 비쌌다. 이 점이 평가에 크게 작용했다. 급여평가 때 기존 항암제와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정승필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유방내분비외과 교수는 “허셉틴, 도세탁셀 등은 (퍼제타의) 대체 약품이 아니다. 퍼제타를 허셉틴, 도세탁셀과 함께 사용하면 완전관해(완치) 도달률을 16%가량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 (급여 재평가는) 힘들 것"이라며 “제약사가 재검토를 신청해야만 다시 평가할 수 있다. 정말 필요한 약제라면 모르겠지만 심평원이 주도적으로 하긴 힘들다”고 덧붙였다.

로슈는 재평가를 요청하지 않고 있다. 심의 결과에 대한 재평가는 단한번 가능하다. 재평가심의 결정에 대해선 불복할 수 없다.

한국로슈 관계자는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가 비급여 결정한 약제를 재심의 신청하기 위해선 이전 제출 자료와 비교해 중요 내용을 변경해야 한다. 지난 12 월 이후 퍼제타에 대한 새로 발표된 임상자료나, 허가 변경 등 주요 변동 사항은 아직 없다”며 “현 제도 틀 안에서는 아직 명확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환자분들의 접근성을 넓히기 위해 보건당국과 지속적으로 긴밀히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 금수저 전용 약제 ‘퍼제타’

지난 4일 전미경씨(왼쪽)와 곽점순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회장을 한유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 사진=윤민화 기자

퍼제타를 쓰고 싶어도 못 쓰는 환자가 대부분이다.

정승필 교수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소수 환자들만 퍼제타를 이용한다. 유방암 환자 대부분 퍼제타를 사용 못한다. 비싸다보니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환자들에게만 퍼제타를 권하는게 실정이다. 의사로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의약 업계에서도 퍼제타 보험 급여를 환영한다. 효과는 인증됐지만 비싸서 못 쓰는게 실정이다. 보험 급여가 가능해지면 (의약업계) 매출도 크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퍼제타가 무조건 써야 할 약물은 아니지만 효과가 다른 약품과 비교해 굉장히 좋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많이 쓴다”라고 덧붙였다.

한국로슈 관계자는 “환자 정보는 의료 관련 정보라 접근이 불가능해 정확한 환자 수를 모른다. 다만 대다수 병원들이 퍼제타를 대상 환자에게 표준요법으로 권고한다고 알고있다”고 답했다.

앤드류 워들리 영국 맨체스터 크리스티 병원 종양학 전문의도 영국 의학전문지 파마타임즈를 통해 “암 환우들에게 더 효과적인 약물을 초기에 처방해야 한다"며 “파제타는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의 생존 기간를 크게 늘리는 효과를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돈 때문에 포기할 때 느끼는 절망감은 곱절"

퍼제타를 보험급여 항목에 넣어달라는 환자들 요청은 나날이 늘어간다. 하지만 메아리없는 함성일 뿐이다. 심평원 건의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 대해선 형식적 답변이거나 여전히 처리 중으로 남아있다.

전미경씨는 “심평원에 건의해도 돌아오는건 형식적 답변 뿐이다. 퍼제타는 영양제, 생명수같은 약이다. 구토, 변비, 설사, 탈모 등 기존 항암제와 달리 부작용이 거의 없다. 내 담당 주치의는 ‘퍼제타만 계속 맞으면 최소한 암으로 죽진 않을 것’이라 말했다"면서도 “기약없이 맞아야 하니 답답하다. 남들에겐 돈이겠지만 나에겐 생명이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익명의 유방암 환자는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자유게시판을 통해 “돈 때문에 삶의 희망을 잃기 싫다. 2014년 유방암 수술 이후 도세탁셀, 허셉틴, 퍼제타 병용요법으로 8차 치료까지 받았다. 현재 폐, 임파선 모두 호전됐고 암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 상태라면 퍼자테에 의존해 오래 살고 싶다. 하지만 퍼제타 비용은 1회 당 400만원이 넘는다. 요양급여 없이 퍼제타에만 의지해 살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익명의 유방암 환자도 “나는 아직 32살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날들을 치료에 의지해 살아야 할 지 모른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기 싫다. 입증된 약제를 비용 때문에 포기해야 할 때 환자가 느끼는 상실감과 절망감은 배가 된다”고 말했다.

곽점순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회장은 “HER2 전이성 유방암 환자 상당수가 퍼제타에 대해 모른다. 주치의들이 너무 비싼 가격 탓에 언급조차 안하기 때문이다. 효능도 떨어지고 부작용도 많은 예전 약제에만 보험이 적용되는건 어폐”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 국외출장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원 NICE(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and Care Excellence)도 '퍼제타주는 추가생존기간 연장이라는 실질적 개선을 가져오지만 비용효과성은 미달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보건의료 시스템이 잘 발달된 영국 정부는 자체 재정으로 항암제기금(Cancer Drug Fund)를 2011년부터 운영해왔다. 약 값이 비싼 약제에 대한 지원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