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호흡기 쓴 인사동에 문화 숨결 불어넣어야
  • 정준모 | 前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10 20:29
  • 호수 137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복되는 고치기에 문화와 예술이 없는 ‘문화지구’로 전락해버린 인사동

 

곳곳에 공사가 벌어지면서 매번 수술대에 오르는 인사동은 문화와 예술이 없는 ‘문화지구’가 돼가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세월이 흘러가면 변하기 마련인지라, 오늘날의 인사동을 바라보며 예전의 흥취와 감흥을 새삼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인사동은 이제는 생경하다 못해 황당하다. 사실 인사동은 그나마 서울 귀퉁이에 남아 유일의 전통문화를 되새겨볼 수 있었던 공간이다. 그래서 가끔 찾아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한국적인 멋스러움(?)을 음미하곤 했다.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인사동은 조금 고급스러운 문화적 향취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번잡하진 않았지만 꾸준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문화재와 미술품을 파는 화랑과 고서점들이 자리해 주머니가 가벼운 예술인들이, 또는 언론인들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런 풍경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인사동을 관광지로 만든 이는 관료들이다. 문화부든, 서울시든, 종로구든, 인사동을 뒤집어놓는 수술을 수없이 시도 때도 없이 했다. 수술 자국이 아물기도 전에, 아니면 새로 이식한 장기가 자리 잡기도 전에 또 다른 이름의 수술을 함으로써 오늘날 인사동은 문화도 예술도 없는 국적 불명의 관광지가 되고 말았다.

 

관료주의의 폐해로 인해 병든 인사동


서울시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인사동을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했다. 그리고 1997년 ‘차 없는 거리’, 2002년 월드컵 때는 ‘문화지구’로 지정하고, ‘눈보다는 몸으로 느끼는 인사동’을 콘셉트로 ‘점토 블록’ 보도를 깔았다. 2007년 다시 북인사마당에 붓 조각 설치, 관광안내소 설치 등을 하며 단장을 하더니, 2009년 5월부터 12월까지 인사동 재정비 사업을 하면서 물확(물 담는 웅덩이를 가진 돌덩이)을 일부 치우고 보도를 마천석으로 깔았다.

 

이처럼 끊임없는 수술로 인사동은 문화와 예술이 없는 ‘문화지구’가 되었다. 인사동은 현재(2015년 기준) 통계에 잡히기로 화랑 176개소, 공예품점 245개소, 문화재판매업 40개소, 표구사 43개소, 필방·지업사가 32개소라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이라는 전제를 달면 그 숫자는 확 줄어든다. 화랑은 10~15개소, 공예품점도 30개소를 넘지 못한다. 실제 우리가 예전의 인사동의 격을 기준으로 본다면 말이다.

 

인사동에 여러 수술이 단행되는 동안 서울시장이 바뀌고 종로구청장이 바뀌었다. 그렇게 사람이 바뀌면 인사동도 바뀌었다. 사실 지금까지 인사동 정책의 목표는 문화예술의 거리를 조성해 관광객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문화예술이 설 곳이 없어지는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났다. 문화예술이 바탕이 되고 이를 자산으로 관광이 뒤따라가야 하는데, 이른바 ‘컬처노믹스’라는 외국어로 포장된 채 관광에 문화예술을 끌어들이는,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되면서 문화는 대중적이고 가볍고 취미에 봉사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에 기반한 인사동의 관광은 막대사탕을 빨고 와플을 먹으며 걷는 형태가 됐다.

 

관광객 숫자가 아니라, 소비의 질이 중요


2013년 서울시가 ‘공평도시환경정비구역 변경 지정안’을 제정해 35년 만에 건축 규제를 해제하면서 인사동의 앞날은 또다시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 지정안은 인사동 161번지 일대 3만3072㎡를 69개로 나눠 정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사동의 역사·문화적 환경을 보호하고 지역적 특성을 살리면서 도심 정비가 이뤄질 것”이라는 게 서울시의 계획이지만, 지금까지 인사동을 두고 세웠던 모든 정책이 원래의 뜻과는 다르게 나타난 전례가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문화예술과 관광을 분리해보는 건 어떨까. 그윽한 문화와 풍요로운 예술의 인문학적 가치가 살아 있는 인사동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보자. 사실 세계 어디건 간에 문화재상이 운집하고 화랑들이 몰려 있는 곳은 조용하고 한적하다. 관광객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소비와 지출이 관건이다. 문화관광의 경우, 방문객 숫자는 적지만 1인당 소비가 일반관광객의 최소 100배 이상이라고 한다. 1인당 객단가(客單價)가 높은 고부가가치 문화관광이 인사동에서 일어나 매출에서도 수만 명의 일반 관광객을 능가하는 실적을 올릴 수도 있다. 지금처럼 방문객의 숫자만 성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문화예술의 인사동을 복원하거나 재건하기 위해서는 치밀하고 정교하며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건 자명해 보인다. 현재 인사동 방문객은 평일에 3만~5만명, 휴일 10만명에 이른다. 이미 과포화 상태다. 따라서 이미 관광지로 변해버린 인사동은 그대로 두고서라도, 사방으로 영역을 확대해 문화예술을 넣어야 한다. 향후 개관 예정인 풍문여고의 서울공예문화박물관과 북촌·감고당 길을 인사동과 잇는 지하광장을 안국동로터리에 조성하고, 낙원상가~종로세무서~돈화문로로 영역을 확대해 문화예술시설들이 자리 잡고 숨 쉴 곳을 마련해주는 그랜드플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나 종로구가 소유하고 있는 인사동 부지에 건물을 신축해 저가로 임대해 문화재상 또는 화랑을 입주시켜 인사동 전통 고유 업종을 지켜나가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대한민국 인사동이라는 상징적·문화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정신문화·인문적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한 관광 사업의 전형이 이곳에 필요하지 않을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