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면세점 양극화 더 심해졌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4.14 18:47
  • 호수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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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중소기업 육성책 발표 불구, 면세점 대기업 점유율 오히려 상승

정부는 2012년 10월 기형적인 면세점 시장 구조를 바꾸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중소·중견기업에 시내면세점 신규 특허를 확대한다는 내용이었다. 2013년 1월에는 중소·중견기업에 면세점 특허의 20% 이상을 주도록 관세법을 개정했다. 기존 대기업의 면세점 특허 비중은 60% 미만으로 낮추게 했다.

경쟁자 없이 20년 이상 폭리를 취해오던 재벌 면세점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면세점 ‘빅2’인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은 1979년과 1986년 각각 특허를 받았다. 5년마다 특허를 갱신했지만, 단 한 번도 심사에서 탈락한 적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국내 면세점 시장은 롯데와 신라가 양분하는 구조로 고착화됐다. 2012년 국내 면세점은 6조329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중 롯데와 신라면세점이 5조4699억원을 기록하며 전체의 81.4%를 차지했다.

대기업은 정부 제재로 ‘황금알을 낳는’ 면세점 사업을 중소·중견업체에 일부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와 신라면세점은 중소·중견 면세점 7곳과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2014년 3월까지 10억원의 상생 펀드를 조성한다는 내용이었다”며 “당시 롯데와 신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면세점업계에서는 ‘특허 갱신을 앞두고 정부를 의식한 생색 내기용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2년 중소·중견기업의 면세점 확대 정책을 발표했지만, 2015년 말 기준으로 대기업의 점유율은 오히려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 시사저널 임준선


매출 기준 대기업 점유율 87.3%로 증가

관세법이 개정된 지도 3년여가 흘렀다. 표면적으로 보면 정부 정책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시사저널이 관세청에 요청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중소·중견 면세점의 특허 수는 2012년 4개에서 2015년 24개로 6배나 증가했다. 점포 수 기준으로 점유율은 9.4%에서 51.1%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기업 점포 수는 18개에 머물렀고, 점유율은 56.3%에서 38.3%로 18%포인트나 감소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중소·중견 면세점의 수가 늘어난 만큼 매출이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2년 중소·중견 면세점의 전체 매출은 2850억원(3.9%)이었다. 매장 1개당 매출은 713억원대였다. 2015년 중소·중견 면세점의 매출은 5997억원(6.2%)으로 3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매장 1개당 매출은 250억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면세점업계의 한 관계자는 “2012년과 2013년 11개 업체가 사전승인을 얻었지만 5개 업체가 승인을 반납했고, 나머지 6개 업체 역시 극심한 매출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반대였다. 불황에도 불구하고 국내 면세점의 매출은 평균 15%씩 증가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성장세였다. 대기업은 같은 기간 매출이 5조4699억원에서 8조297억원으로 46.8%나 뛰었다. 매출 기준으로 전체 점유율은 86.4%에서 87.3%로 오히려 상승했다. 대기업 과점 체제를 해결하고 중소·중견 면세점을 육성하겠다던 정부의 발표가 무색해지고 있다.

특히 서울 시내면세점에서는 롯데와 신라의 독과점 체제가 심화됐다. 지난해 서울 지역 시내면세점의 총 매출액은 약 5조3508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롯데가 3조2942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신라면세점이 1조4014억원으로 2위를 차지했다. 두 기업의 매출 비중만 87.8%에 달했다. 두 회사는 지난해 9.7%와 6.5%의 매출 상승률을 보이면서 전체 점유율 역시 1% 가까이 끌어올렸다. 지난해 신세계에 특허를 빼앗긴 SK워커힐면세점(6.3%)까지 합하면 대기업의 비중이 90%를 상회했다. 올해부터 한화와 HDC신라가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경우 대기업 비중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정부가 지난해 경제 관련 장관회의에서 서울 시내면세점 추가 허가 방침을 밝히면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중소·중견 면세점업계는 그 배경에 재벌의 로비와 정부의 재벌 챙기기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중소 면세점업체 관계자는 “‘면세점은 중소기업이 할 수 없는 업종’이라는 대기업 논리에 휘말려 정부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3년 전 발표한 중소·중견기업의 면세점 성장 지원 대책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면세점연합회, 기재부에 탄원서 제출

3월16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주최로 면세점 제도 개선 공청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도 중소 면세점업체들은 ‘왕따’를 당했다. 신세계와 HDC신라, 한화갤러리아, 두산 등 대기업 면세점 사장단은 모두 공청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중소 면세점들은 공청회 사실을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중소 면세점업체 관계자는 “공청회가 열리는 것도 신문을 보고 알았다”며 “정부에서 중소 면세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우려를 표시했다. 정부가 ‘대기업 달래기’에만 몰두하면서 중소업체를 홀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청회와 정부 개선 방안 발표 등 일련의 과정이 잘 짜인 각본처럼 진행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4월말 발표 예정인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 특허를 위한 수순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64쪽 기사 참조>

참다못한 중소·중견면세점연합회(연합회)는 3월30일 기획재정부에 A4 7장 분량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연합회는 탄원서에서 “대기업 위주의 면세점 사업을 타파하고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 정책을 믿었다”며 “하지만 3년 만에 정부 정책이 뒤집어지면서 지방 면세점뿐 아니라 모기업들도 존폐 위기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3월16일 열린 ‘관광산업 발전을 위한 면세점 제도개선 공청회’에 신규 면세점 5사 사장단이 참석해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관세청의 오락가락 면세점 정책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상생 차원에서 인천공항 등 출국장 면세점에 중소기업이 우선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관세청은 2014년 11월 인천국제공항과 출국장 면세점 특허 신청 공고를 냈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당시 공고문에는 일반 구역과 중소·중견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2016년 진행된 김포국제공항 출국장 면세점 특허 신청 공고에는 중소·중견 구역이 빠진 채 일반 구역만 나와 있었다. 출국장 면세점에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우선 부여하겠다는 말을 뒤집은 것이다.

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면세 사업의 발전과 지방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중소·중견 면세점의 질적 성장이 필요하다”며 “중소업체들이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인큐베이터 기간이 필요하다. 정부가 인큐베이팅은 못해줄망정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재벌 면세점-여행사 ‘검은 리베이트’ 대책도 시급 



중소·중견면세점연합회(연합회)가 기재부에 제출한 탄원서에는 면세점 대기업의 리베이트 문제도 언급돼 있었다. 연합회는 이 리베이트가 대기업과 중소·중견업체 간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재벌 면세점이 여행사에 제공하는 ‘폭탄급 리베이트’의 실체를 공개했다. 롯데·신라면세점의 내부 문건에는 재벌 면세점이 여행사에 주는 리베이트 규모, 지급 기준과 방법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롯데와 신라 두 재벌 면세점이 지급한 리베이트는 2014년 한 해 5000억원 규모였다. 지난 4년간 지급한 리베이트는 1조2000억원에 이르렀다.

여행 가이드에게도 상당한 리베이트를 지급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두 회사의 ‘여행사 가이드 인센티브 지급 안내’ 문건에 따르면, 가이드가 올린 매출에 따라 월 최대 1000만원+α(알파)의 리베이트를 지급하고 있었다. 재벌 면세점과 여행사, 여행 가이드 사이의 검은 거래로 인해 중소 면세점은 고사(枯死) 위기에 처한 것이다.

연합회 측은 청주국제공항을 한 예로 들고 있다. 2014년 4월 청주국제공항에 72시간 무비자 환승 공항이 생겼다. 외국인 관광객 수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로 청주공항을 통해 입국한 외국인 수는 2011년 7만3750명에서 2015년 25만4963명으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크지 않았다. 청주에 위치한 중원면세점과 청주공항 면세점의 연간 매출은 각각 12억원과 50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청주공항에 인도되는 재벌 면세점의 물품은 연 400억~500억원에 달했다. 재벌 면세점이 지역 공항을 이용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서울로 실어나르는 ‘싹쓸이 영업’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다른 지역 공항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지역 공항 입국→서울 시내 이동→재벌 면세점 이용→지역 공항 이동’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럼에도 자금력이 밀리는 지방의 중소 면세점은 넋 놓고 쳐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합회 관계자는 “기존 면세점은 신규 중소 면세점의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해 리베이트 제공 등 불법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며 “재벌 면세점과 여행사, 여행 가이드 간의 검은 리베이트 고리를 차단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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