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페이퍼’에 입 다문 중국 언론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6.04.21 19:25
  • 호수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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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시진핑 매형 등 관련 의혹 폭로되자 언론 통제

지난 4월14일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百度)로 ‘파나마 페이퍼(巴拿馬文件)’를 검색했다. 결과는 ‘관련 법률·법규와 정책에 의거해 일부 검색 결과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경고문과 함께 떠올랐다. 검색된 뉴스는 여러 건이 있었지만, 관영 통신 ‘신화사’와 반관영 통신 ‘중국뉴스(新聞)’가 보도한 것뿐이었다.

그나마 해당 뉴스를 보도한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 사이트 ‘인민넷’의 기사는 삭제됐다. 4월7일 인민일보의 자매 영자지인 ‘글로벌타임스’가 ‘파나마 페이퍼’에 대해 보도했지만 중국과 관련된 내용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중국 언론이 ‘파나마 페이퍼’에 침묵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문건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매형인 덩자구이(鄧家貴)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덩자구이의 아내는 시 주석의 큰누나인 치차오차오(齊橋橋)다.

‘파나마 페이퍼’와 관련된 중국의 언론 통제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 AP 연합

시 주석은 평소 “2남2녀의 형제·자매 중 가장 존경하는 이가 큰누나”라고 밝힐 정도로 치차오차오와 우애가 깊었다. 치는 문화대혁명 기간 홍위병의 공격과 혹독한 하방(下放) 노동으로 얻은 병 때문에 고생했다. 그 이후 20년 가까이 무장경찰에서 근무했고, 1990년 퇴직 후에는 12년 동안 병든 부모를 돌봤다. 이렇듯 배려심이 남달랐고 효심이 깊은 큰누나를 시 주석이 존경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치차오차오가 덩자구이와 언제 결혼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덩자구이도 홍콩 거류증을 가진 중국인이라는 정보밖에 없었다. 이랬던 그가 주목을 받은 것은 2014년 1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조세회피 문건을 분석해, 덩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운 사실을 밝혀냈다.

中, 최고위층이 재산 빼돌렸다는 의혹에 우려

이 폭로를 계기로 해외 언론의 후속 보도를 통해 덩의 실체가 일부 공개됐다. 덩은 위안웨이(遠爲)투자개발회사의 대표로, 1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부동산 재벌이다. 2012년 블룸버그통신은 “덩씨 부부와 딸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7억6000만 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덩이 버진아일랜드에 세운 페이퍼 컴퍼니는 이런 재산과 사업상 수익을 해외로 빼돌리기 위한 통로였던 셈이다.

‘파나마 페이퍼’는 덩씨 부부의 페이퍼 컴퍼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공개했다. ICIJ의 분석에 따르면, 덩은 2008년 3월 버진아일랜드에 엑설런스 에포트 프로퍼티 디벨로프먼트를 설립했다. 덩은 이 회사의 대표이자, 50%의 지분을 소유한 대주주다. 2009년엔 추가로 베스트 이펙트 엔터프라이즈와 웰싱 인터내셔널을 세웠다. 덩은 이들 업체를 매개로 활발한 거래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다가 시 주석이 공산당 총서기로 등극한 2012년 11월 직후 업무를 중단했다.

2014년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홍콩 언론에선 “시 주석이 덩씨 부부를 부패 혐의로 조사하기 위해 출국 금지시켰다”고 보도했었다. 하지만 덩씨 부부는 별 탈 없이 대외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지난해 4월에는 뉴욕타임스가 ‘덩씨 부부를 위시한 최고위층과 그 측근들이 완다(萬達)그룹의 주주로 등재돼 있다’고 보도했다. 완다는 중국 최대의 부동산개발업체로, 왕젠린(王健林)이 그룹 회장이다. 왕 회장은 처음 뉴욕타임스의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하버드 대학 강연에서 “덩씨 부부가 사모펀드에 투자해서 그룹 내 한 부동산개발업체의 지분을 보유했다가 되팔았다”고 인정했다.

외신 접속도 차단하며 언론에 재갈 물려

중국 현행법상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는 일은 불법이 아니다. 또한 덩씨 부부의 사업은 시 주석이 집권하기 이전에 이뤄졌다. 덩씨 부부 이외에도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2명의 가족이 ‘파나마 페이퍼’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서열 5위인 류윈산(劉雲山)은 며느리가, 서열 7위인 장가오리(張高麗)는 사위가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웠다. 이들뿐만 아니라 퇴임한 리펑(李鵬) 전 총리의 딸, 자칭린(賈慶林) 전 정협 주석의 외손녀,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의 동생 등도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언론은 최고위층 가족들이 페이퍼 컴퍼니를 앞세워 축재한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을 살까 봐 ICIJ의 폭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다. 만약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부패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권력을 강화한 시 주석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시 주석은 집권 이래 전례 없는 반부패 드라이브를 벌여왔다. 다른 이도 아니고 가족이 부패 혐의에 연루된다면, 숨죽이고 있는 반대 세력으로부터 엄청난 반격을 받을 수 있다.

이를 미연에 방지코자 중국 정부는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린 것이다. ‘파나마 페이퍼’는 웨이보(微博)에서 관련 기사가 검색되지 않는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려지는 글도 즉시 삭제된다. 중국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중국 네티즌이 외신 뉴스를 보는 것마저 막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관련 특집을 내보내자 홈페이지 접속을 전면 차단했다. 중국이 이코노미스트에 대한 접속을 틀어막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NN·워싱턴포스트·BBC·가디언 등의 접속은 가능하지만, ‘파나마 페이퍼’ 관련 뉴스는 차단됐다.

한국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접속을 전면 차단당했다. 뉴스타파는 ICIJ의 일원으로 참가해 2014년 1월부터 조세회피 문건을 공개하면서 관련 보도를 이어오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구글·뉴욕타임스·타임 등과 함께 뉴스타파를 2년 넘게 접속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차단 시스템인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현재 만리방화벽은 차단한 웹사이트가 새로운 IP 서버를 도입해도 자동적으로 인식하도록 설계됐다. 이 때문에 웬만한 가상사설망(VPN)의 경로를 다 찾아내고 있다.

과거에는 중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VPN을 활용해 차단된 해외 사이트를 접속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쉽지 않다. 심지어 VPN업체는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중국에서 사업을 할 수 있다. 기술문화잡지 와이어드는 ‘적지 않은 중국 네티즌이 VPN을 이용해 차단된 해외 사이트를 이용해왔지만 불편한 사용법과 너무나 느린 접속 속도로 이용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핫이슈에도 중국인들이 조용한 현실 뒤엔 이런 속사정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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