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심각성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press.com)
  • 승인 2016.04.28 17:28
  • 호수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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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완연한 요즘입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볼 사안이 있어 질문 드립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에게 물어보신다면 이렇게 답하려고 합니다. “건강”.

이 답에 대한 반응은 연령대에 따라 다릅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람들은 대부분 이 말에 공감하는 편입니다. 이 땅에서 50년 넘게 살아온 저도 요즘은 가장 중요한 가치가 건강입니다. ‘천하를 얻고도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 있으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요.

1384호용 원고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기사가 있습니다. 강찬호씨 인터뷰입니다. 그는 5년 전에 당시 다섯 살이던 딸을 위해 가습기를 설치하고 살균제를 사용한 탓에 자신과 세상을 원망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저희 잡지 74~75쪽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대형마트에서 파는 제품을 구입해 사용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는 공업제품입니다. 이런 구매행위의 바닥에는 국가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습니다. 이들 제품의 제조와 판매는 엄격한 국가의 관리하에 이뤄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나라에서라면 이런 믿음은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옥시로 대표되는 일련의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보면 과연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나라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 공식 집계상 피해자만 530명입니다. 강씨 가족처럼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은 합법적으로 시판 중인 제품을 나라를 믿고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는 사망 아니면 죽음보다 더 힘든 고통입니다.

이쯤 되면 책임자 처벌 및 피해 보상 이슈가 대두될 법합니다. 그러나 강씨 가족이 ‘신뢰 피해’로 괴로워하던 지난 5년간 정부와 옥시를 비롯한 해당 기업들은 뒷짐만 지고 있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상대방이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만 해도 피해자는 어느 정도 분이 풀리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들은 “내 소관이 아니다”며 모른 척하거나 서로 책임을 미루기 바빴습니다. 이런 고초를 겪은 피해자가 강씨 가족뿐일까요?

검찰은 지난해에야 특별수사팀을 꾸렸습니다. 다행히 최근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사법처리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강씨 가족과 같은 평범한 국민이 어처구니없는 고통을 겪어도 피해 구제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도 가습기 살균제를 무심코 몇 번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식은땀이 납니다. 죽느냐 사느냐가 운에 의해서 좌우되는 나라가 작금의 대한민국입니다.

강씨의 절규가 가슴을 찌릅니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국민이 한 명만 아프거나 죽어도 그 원인과 책임을 물어야만 하는 것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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