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전쟁은 싱거웠지만 이젠 서비스 전쟁
  • 엄민우 시사비즈 기자 (mw@sisabiz.com)
  • 승인 2016.05.12 17:43
  • 호수 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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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 3사, 주파수 대역 적당히 배분 소비자들, 각 사별 차별화된 서비스에 주목

당초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 간의 치열한 혈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됐던 주파수 경매가 4월2일 세 업체 간 서로 얻을 건 얻어가는 ‘윈-윈’으로 마무리됐다.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갈리는 무리수를 피한 채 적당히 타협하는 쪽을 선택한 셈이다. 이를 두고 ‘싱겁게 끝난 주파수 전쟁’이란 평가를 낳고 있다. 반면에 소비자들은 이번에 확보된 주파수 대역에 따른 서비스 혜택을 기대하고 있다.

 

“늘어나던 데이터 소비량 소화할 수 있게 돼”

 

퇴근길 사무실을 나서면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집 안 온도와 습도를 확인한다. 집 안이 덥거나 눅눅하다면 에어컨을 켜 섭씨 20도에 맞춘다. 춥고 건조하면 히터를 가동해 실내온도는 섭씨 22도를 설정하고 가습기도 켜 습도를 40%에 맞춘다. 지하철에 타면 스마트폰으로 영화 1편을 12초 만에 다운받아 초고화질 UHD 화질로 본다. 집에 도착하면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무선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하고 모바일 웹상의 가상현실 콘텐츠를 즐긴다. 사물인터넷(IoT)과 가상현실 기술이 구현하는 시나리오다.

 

ⓒ 시사저널 이종현

 

이 시나리오는 아직은 우리네 실생활에서 구현할 수 없다. 기술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통신 환경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 서비스와 가상현실은 통신 채널로 엄청난 데이터양을 주고받아야 한다. 지금 형편에서 가상현실과 사물인터넷 서비스를 구현하고자 하면 통신 장애가 일어난다. 통신사마다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라고 떠들지만 현실적으로 데이터 제한 서비스인 셈이다.

 

조만간 실시간 가상현실과 사물인터넷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다. 이동통신 3사가 주파수 경매에 참여해 충분한 주파수 대역을 확보한 덕분이다. SK텔레콤은 2.6㎓ 대역 총 60㎒ 폭을 확보해 주파수 대역폭 부족을 일시에 해소했다. KT는 1.8㎓ 대역을 확보해 초광대역 서비스를 구현할 여건을 갖췄다. LG유플러스는 2.1㎓ 대역 주파수를 얻어 기존 주파수와 더해 광대역 서비스를 실현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이번에 확보한 주파수 대역을 활용해 각 3사가 앞으로 어떤 서비스를 내놓을지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파수 경매는 토지 분양과 비슷하다. 인구가 늘어 주택 공급이 부족하면 정부는 택지를 건설사에 공급해 주택을 짓게 한다. 주파수 경매도 마찬가지다. 고용량 데이터 송수신을 요하는 콘텐츠가 늘다 보니 통신사마다 주파수 대역 부족에 시달렸다. 건설사가 분양받은 토지에 어떻게 주거단지를 조성하느냐에 따라 입주민 생활환경이 달라지듯 이동통신사가 늘어난 주파수로 어떤 서비스를 내놓느냐에 따라 통신 소비자의 효용도 달라진다. 서비스 차이는 각 이동통신사가 보유한 기술·콘텐츠·아이디어에 달렸다. 그렇다고 이동통신사가 당장 획기적 서비스를 내놓지는 못한다. 통신 3사 관계자들은 “이제 막 주파수를 확보해 어떤 서비스를 개발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늘어나던 데이터 소비량을 소화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통신 품질 개선이다. 해마다 12월31일 자정만 되면 통신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자정에 데이터 트래픽 양이나 이동통신 서비스 이용량이 폭증하기 때문이다. 특히 보신각 타종 행사가 시작되는 순간 새해 안부인사 등으로 순간 이동통신 서비스 이용량이 300%까지 치솟는다. 이 탓에 일시적으로 통화 불통이 발생하거나 데이터 전송이 안 된다. 통신사들은 기지국 용량을 증설하거나 비상 근무자를 두고 대응하지만, 역부족이다. 5월5~8일 황금연휴에도 통신사들은 트래픽 급증을 우려해 비상대책을 수립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황창규 KT 회장과 관중들이 VR 기기로 모바일 야구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 KT 제공

 

1GB 영화 1편을 12초 만에 다운받아

 

하지만 앞으론 이런 불편을 겪지 않을 듯하다. 1.8㎓ 대역을 확보한 KT의 이필재 마케팅전략본부장은 “1.8㎓ 기지국과 중계기에 초광대역 LTE-A 기술을 쉽게 적용할 수 있어 안정적인 네트워크 품질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며 “도심 핫스팟, 빌딩 안, 지하철 등 트래픽이 많은 곳에서 고객이 체감하는 통신 품질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4차로 도로가 8차로로 넓어지면 더 많은 자동차들이 몰려도 교통 흐름이 원활한 것과 비슷하다.

 

대용량 영화를 다운받기는 한층 수월해진다. LG유플러스는 기존 2.6㎓ 광대역과 함께 ‘듀얼 광대역(2.1㎓+2.6㎓)’ 3밴드 CA(주파수 묶음 기술) 서비스를 시행할 예정이다. 김윤호 LG유플러스 자원협력팀장은 “듀얼 광대역 서비스를 통해 올해 최대 700Mbps 기가급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라며 “700Mbps 속도는 1GB 영화 1편을 약 12초 만에 다운받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통신사가 콘텐츠와 인프라만 갖추면 획기적인 통신 서비스도 가능해진다. 실시간 가상현실 서비스가 대표 사례다. 가상현실은 실시간으로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 또 대용량 데이터를 주고받아야 한다. 이동통신사들이 이번에 확보한 주파수를 활용해 가상현실 서비스를 구현하면, 이용자가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게임을 즐기듯 가상현실 기기로 고용량 가상현실 콘텐츠들을 실시간으로 끊김 현상 없이 즐길 수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주파수 대역폭이 충분하면 5세대 통신 기술로 가상현실 콘텐츠를 실시간 서비스할 수 있다”며 “당장 구현하기 힘들지만 이번 주파수 확보로 고용량 가상현실 기술이 발전할 계기를 마련했다”고 해석했다.

 

사물인터넷 역시 주파수를 확보하면서 서비스 실현 가능성이 커졌다. 모바일을 통해 고화질 UHD 화면으로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이동통신사들이 얼마나 빨리 주파수를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느냐가 관건이다. 통신사마다 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고용량 데이터 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부 통신사는 올여름부터 설비 증설에 착수할 뜻을 밝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반 법 규정만 정비되면 올해 안에 초고용량 데이터 서비스를 일부 구현할 수 있을 듯하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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