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속임은 가라, 가상현실 온몸으로 느낀다
  • 정윤형 시사비즈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5.22 16:22
  • 호수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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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현실감 획득하는 ‘체감형 가상현실’, 기자가 직접 체험해보니

지금까지 가상현실(VR)은 눈속임이었다. HMD(Head Mount Display·머리 덮개형 디스플레이)로 사람 눈으로 들어가는 시각 정보를 통제해 가상현실을 구현한다. 그러다 보니 인지부조화가 발생한다. 시각은 가상현실 공간을 보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고 다른 감각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 탓에 멀미가 나고 현실감은 떨어진다. 국내 가상현실 업체 모션테크놀로지는 이런 눈속임에 만족하지 않는다. 가상현실 체험자가 HMD에다 헤드셋과 외골격 슈트까지 착용하고 공간을 움직이게 한다. 행사장에선 벽을 설치해 체험자는 벽을 만지며 이동한다. 후각과 미각을 제외한 시각·청각·촉각을 자극하고 몸의 움직임이 더해지면서, 디스플레이 속 가상현실은 극도의 현실감을 획득한다.

 

 

한 체험자가 HMD에 헤드셋, 외골격 슈트를 착용하고 ‘체감형 가상현실’ 체험을 준비하고 있다. © 모션테크놀로지 제공

 


 

너무나 생생한 공포 체험에 3분 만에 포기

 

기자는 지난 5월4일 서울 중구 충무로영상센터 5층에 자리한 모션디스플레이 스튜디오를 찾았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개발된 ‘체감형 가상현실’을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HMD에 헤드셋, 외골격 슈트까지 착용하고 가로 10m, 세로 8m 스튜디오를 움직이며 영상을 보게 된다고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아니 ‘본다’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듯하다. 영상을 온몸으로 ‘느낀다’는 표현이 맞았다. 이 업체는 장갑도 개발하고 있는데, 장갑까지 착용하면 현실감은 더 고조될 터였다.

 

기자는 우선 회사 관계자의 지시대로 HMD와 헤드셋을 착용했다. 마지막으로 조끼 모양의 외골격 슈트를 입었다. 외골격 슈트는 약 2㎏으로 다소 묵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가벼운 외골격 슈트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골격 슈트를 몸에 꽉 조였다. 슈트에서 나오는 진동을 최대한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장비 착용을 마치고 귀신의 집에 들어섰다. 눈앞에 침대가 보였다. 침대 위엔 피묻은 좀비가 누워 있었다. 좀비 옆에 빨간 화살표가 눈에 들어왔다. 화살표를 따라 움직였다. 침대 옆에 다다랐을 때 좀비가 벌떡 일어났다. 슈트를 통해 진동도 느꼈다. 기자 입에선 순간적으로 “악” 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너무 놀란 탓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좀비에서 벗어나 어둠 속을 걸었다. 앞에 승강기가 나타났다. 문이 열렸고 좀 더 걸어가 승강기 안으로 들어갔다. 승강기를 탔을 때 느끼는 미세한 진동이 슈트를 통해 전해졌다. 승강기를 실제 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자 자신도 실제로 승강기를 탄 것인지, 가상현실에서 그저 승강기를 탄 것처럼 느끼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교했다.

 

승강기가 멈췄고 몸을 뒤로 돌리니 승강기 문이 열렸다. 승강기에서 나와 어두운 방을 걸었다. 헤드셋에서 음산하고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에는 벌레와 혈흔이 뿌려져 있었다. 세심한 곳까지 신경 써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앞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걸음이 느려졌다. 공포감은 고조됐다. 이때 좀비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 슈트는 역시 진동을 몸에 전달했다. 좀비가 나타날 때마다 기자는 비명을 질러야 했다. 좀비는 아예 출입문을 막고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는 그 좀비가 무서워 다가가지 못하고 결국 체험을 포기해야만 했다. 기자는 3분가량 체험했다. 너무 짧았다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남녀 구분 없이 해당 영상을 끝까지 체험하는 이는 드물다는 회사 관계자의 설명에 스스로를 위로했다. 회사 관계자는 “행사장에서 귀신의 집 영상을 체험하다 소리 지르고 바닥에 주저앉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정윤형 기자가 직접 ‘체감형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있다. © 정윤형 제공
시각만 느끼는 HMD 가상현실과 차원 달라

 

체감형 가상현실은 시각 속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몰입도가 달랐다. 회사 관계자는 스튜디오에 벽까지 설치해 체험자가 만지며 움직이게 하면 몰입도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멀미가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기자가 여러 행사를 취재하고 다니며 가상현실 기기를 체험했지만, 멀미를 느끼지 않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전엔 HMD만 착용하고 가만히 영상을 봤지만, 이번엔 걸어 다니며 영상을 체험하다 보니 멀미를 느끼지 않은 것이다. 영상은 깔끔했고 시점 이동에 따른 화면 반응 시점도 정확했다. 

 

회사는 체감형 가상현실 기기를 놀이공원에 공급하려 한다. 놀이공원에 체험장을 설치하기 용이한 데다 상품성도 크기 때문이다. 권홍재 모션테크놀로지 이사는 “놀이공원은 정기적으로 기구를 점검하고 수리하느라 돈과 시간을 많이 들인다. 어떤 놀이기구는 교체하는 데 수개월씩 걸린다”며 “체감형 가상현실 기기는 영상 콘텐츠만 주기적으로 바꾸면 체험자가 매번 새기구를 이용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금 국내 놀이공원과 체험장 운영을 논의하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도 활용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권홍재 이사는 “원자력연구소나 소방서가 직원들을 교육·훈련시킬 때 실제 상황을 구현하기 어려워 교육 목표를 얻기 어려울 때가 많다. 체감형 가상현실 기기를 활용하면 방사능 누출, 화재 현장을 구현할 수 있어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의대생을 상대로 수술 실습에 활용할 수 있다. 이에 여러 연구소와 기관이 해당 분야에서 체감형 가상현실 기기를 응용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미국 업체들은 체감형 가상현실 기기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대표 기업은 ‘더 보이드(The Void)’다. 모션테크놀로지도 이 기업으로부터 사업 모티브를 얻었다. 그러나 국내 VR 업계는 HMD 수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체감형 가상현실 기기가 지나치게 비싼 탓이다. HMD 값은 10만원에서 100만원에 불과하지만, 체감형 가상현실 기기는 1억원을 웃돈다. 그럼에도 가까운 시일 내 체감형 가상현실 기기가 시장을 장악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카이스트 교수)은 “시각으로만 느끼는 가상현실 기기는 멀미가 난다. HMD 가상현실 기기가 지닌 가장 큰 문제다. 멀미를 없애려면 체감형 가상현실 기기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홍재 이사는 “외국 기업이 세계 시장을 선점하기 전에 국내 기업들도 체감형 가상현실 기기를 서둘러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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