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딸의 죽음 석연찮은 의문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30 10:54
  • 호수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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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하게 밝혀야”

 

경기도 시흥에 사는 김정범씨(63)는 얼마 전 외동딸을 잃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빌라에서 남자친구와 동거생활을 했던 영례씨(33)는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아직도 딸이 죽었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애지중지 키운 딸이 부모에게 인사도 없이 떠나갔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김씨는 딸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다가 몇 가지 의문점을 발견했다. 그 이후로 온 신경이 거기에 쏠려 있다. 딸의 죽음에 한 치의 억울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이 사망한 지 3개월이 넘었지만 그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동거남과 술 마신 뒤 사망

 

김씨의 딸 영례씨가 사망한 것은 지난해 12월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밤은 불타는 금요일이라는 뜻의 ‘불금’이었다. 영례씨는 결혼을 전제로 남자친구 박아무개씨(37)와 7년 이상 교제하고 4년째 동거하고 있었다. 김씨는 애견 관련 일을 했고, 박씨는 자영업(식당)을 했다. 이날 밤 두 사람은 각각 다른 곳에서 일행들과 술을 마셨다. 영례씨는 1차 술자리를 가진 뒤 박씨의 술자리에 합류했다. 여기에는 박씨 외에 2명의 일행이 더 있었다.

 

동거남 박씨의 진술과 영례씨 아버지가 전한 정황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해 보자. 영례씨가 합류한 후 2차 술자리는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영례씨는 술자리를 거듭 이어 가면서 만취 상태가 됐다. 박씨는 그런 영례씨를 부축해서 집으로 향했다.

 

© 故 김영례씨 유족 제공

그런데 집 앞 계단을 올라가다 영례씨와 박씨가 함께 넘어졌다. 박씨는 영례씨 부모에게 “나를 붙잡은 상태로 계단에서 뒤로 가볍게 넘어졌다”고 말했다. 영례씨가 넘어진 후 “아프다”며 욕을 했다는 것이 박씨의 진술이다. 박씨는 영례씨를 방에 눕힌 후 술자리를 계속하러 밖으로 나갔다.

 

박씨가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같은 날 오전 8시쯤이었다. 당시 영례씨는 바닥에 누워 있는 상태였다. 박씨는 한참 잠을 자다가 영례씨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워하자 이에 놀라 잠에서 깼다. 박씨는 영례씨를 똑바로 눕게 하고 숨소리가 안정되자 다시 잠을 청했다고 한다.

 

박씨가 잠에서 깬 시간은 오후 5시쯤. 이때까지도 영례씨는 바닥에 누워 있는 상태였고, 아무 이상 없다고 판단한 박씨는 일터로 나갔다. 박씨는 출근 후 영례씨가 걱정돼 휴대전화로 계속 연락을 했지만 받지 않자 집으로 갔다. 그리고 밤 11시쯤 사망한 영례씨를 발견하고 119구급대에 신고했다.

 

고인의 시신에 대한 부검은 국립과학수사원에서 이뤄졌고, 결과는 가족에게 통보됐다. 공식 사인은 두개골 함몰에 의한 ‘뇌출혈’로 나왔다. 고인의 시신은 장례를 치른 후 화장해서 공원묘지에 안장했다.

 

 

유족 측 사망 의혹 제기

 

딸의 장례를 치른 부모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의문점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유족 측이 제기하는 의문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술에 취한 고인을 부축해 집으로 간 박씨는 “머리를 부딪칠 만큼 큰 충격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는데 ‘두개골 함몰 뇌출혈’이 사망원인이라는 게 납득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고인의 아버지는 “부축한 위치와 딸이 넘어져 다쳤다는 두개골 부위도 일치하지 않는다. 만약 사망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면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났을 텐데 남자친구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의아하다. 또 딸이 넘어진 뒤 ‘아프다고 욕했다’는데 강한 충격을 받았다면 일어나서 ‘아프다’는 정도로 지나칠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부검 결과 골반에서 작은 상처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고인의 아버지는 “넘어져 머리만 다쳤다면 골반에 상처가 날 이유가 없는데 그것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박씨의 폭력 전과가 내내 마음에 걸린다고도 했다.

 

유족 측이 제기하는 또 다른 의문은 ‘응급조치’와 관련해서다. 박씨는 고인이 넘어진 후 “아프다”는 말을 들었으나 집 안으로 데려가 방에 눕혔다. 그리고는 다시 일행들이 있는 술자리로 갔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넘어져 아프다는 동거인을 두고 새벽 4시쯤에 다시 술자리로 갔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씨가 조금만 더 일찍 병원에 데려가는 등의 응급조치를 했더라면 사망까지는 막을 수 있었다는 게 유족 측의 생각이다.

 

셋째는 사망 전에 금전 문제로 다퉜다는 지인들의 증언이다. 고인의 아버지는 “돈 문제로 여러 번 다퉜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 딸이 애견일 말고 다른 것도 했는데 그것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런 것도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고인이 사망하기 직전 동거남 박씨가 영업 중인 가게의 구인광고를 전국 단위로 크게 낸 것도 의아해했다. 고인의 아버지는 “동거남은 식당 개업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1억원 정도의 채무변제 독촉에 시달렸고, 딸에게 ‘엄마에게 돈을 빌려오라’고 종용한 사실이 있다. 장례식장에서 ‘최근 영례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말한 사실 등 주변 정황들도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유족 측은 고인의 사망 직전 금융거래 등을 살펴봤다. 여기서 별다른 것은 나오지 않았다. 보험사에 확인해 보험수급자 변화 등이 있었는지도 꼼꼼하게 챙겼으나 그런 것은 없었다.

 

고 김영례씨가 넘어진 지점을 아버지가 가리키고 있다. © 故 김영례씨 유족 제공

유족 측은 경찰수사와는 별도로 당시 고인의 사망을 목격했거나 근처에 주차됐던 차량의 블랙박스 확보를 위해 제보를 받아왔다. 이를 위해 고인이 사망한 거주지와 인근에도 전단지를 붙였다. 제보자에 대한 신분 보장과 신빙성 있는 내용이면 후사하겠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건 당일 목격자나 신빙성 있는 제보는 없는 상태다.

 

유족 측은 경찰수사에 희망을 걸었다. 남아 있는 의문을 해소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수사는 고인의 거주지 관할 서초경찰서에서 진행했다. 서초서는 고인과 동거남이 살았던 집을 수색하는 등 타살 혐의점을 조사했다. 고인의 아버지는 서초서에 “철저하게 수사해 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경찰은 부모가 제기하는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추가로 통신수사, 거짓말탐지기 조사 등을 벌였다. 여기서도 별다른 것은 나오지 않았다. 3월13일 경찰은 고인의 아버지를 비롯한 유족들에게 “보강수사를 했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고인의 아버지는 “담당 팀장이 거짓말탐지기 결과를 설명하면서 ‘음성반응이 나왔는데 (박씨가) 거짓말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납득하기는 어려웠지만 이를 믿고 받아들이려고 했다”며 “혹시나 해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실시한 서울경찰청에 연락했다. 그런데 서울청에서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판독불가(NCND)’가 나왔다고 알려줬다. 당초 음성반응(진실)이 나왔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경찰을 믿을 수가 없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서초경찰서가 이번 사건을 귀찮아서 덮으려 하거나 박씨(동거남) 측을 비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

 

 

“거짓말탐지기 결과 속였다” 주장

 

유족 측은 3월16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서초경찰서를 감사해 달라는 ‘감사요청서’를 보냈고, 서울중앙지검에는 “딸의 사망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한 점 의혹이 없게 해 달라”는 진정서를 접수했다. 유족 측은 감사요청서에서 “서초경찰서가 왜 거짓말을 했는지 철저히 감사해 달라”며 “사고 정황이나 사망에 이르기까지 방치된 경과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지만 경찰은 이에 대해 충분한 조사 없이 마무리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초경찰서 담당 수사팀장은 “우리가 검시 결과를 보여주면서 ‘판단 불가로 나왔는데 이것은 음성반응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잘못 이해한 것 같다. 고인의 죽음에 한 점 의혹이 없도록 강력팀이 매달려서 수사했다”고 강조했다. CCTV와 관련해서는 “가장 먼저 한 것이 현장의 CCTV다. 사망 장소를 비춘 것은 없어서 8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CCTV를 구청 관제센터를 통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일단 경찰은 철저하게 수사해서 ‘내사 종결 처리’하고 검찰로 보고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김영례씨 사망은 타살 의혹이 없어 경찰은 사실상 내사 종결 상태다. 하지만 유족 측은 여러 의혹을 제기하며 경찰 부실수사까지 제기한 상태다. 고인의 부모는 딸이 억울한 죽음으로 구천을 떠돌지는 않을까 애가 타고 있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
故 김영례씨 동거남 박아무개씨 인터뷰


요즘 심경이 어떤가.
영례가 죽고 나서 우울증에 걸려 너무 힘들다. 약을 먹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

고인의 부모가 여전히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알고 있다. 부모님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재조사한다면 언제든지 응할 생각이다. 

사망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 좀 이해 안 된다.
영례는 술을 마시면 잘 넘어졌다. 그날도 계단을 헛디뎌서 넘어졌는데 ‘아이씨’ 하면서 바로 일어났다. 그래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골반에 난 상처는 왜 그런 것인가.
그건 나도 모르겠다.

응급조치를 더 일찍 할 수 없었나.
내가 다시 나갔다 오니까 영례가 화장실을 다녀온 흔적이 있었다. 그래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폭력전과가 있는가.
2010년 영례를 만나고 한 달쯤 지난 후 술 마시고 누가 시비를 걸어와서 때린 적이 있다. 당시 뻑치기가 문제가 됐는데 그걸로 생각해 폭행했다. 그 일로 벌금을 낸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누구와 시비 붙은 적이 없다.

최근 돈에 쪼들렸다는데 사망 사고 전 대대적인 구인광고를 냈다.
내가 돈이 없다고 누가 그러더냐. 나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부동산이 있다. 지금 장사하는 것도 다 그게 밑천이다.

고인에게는 자주 가는가.
1주일에 한 번씩 묘소에 찾아간다. 빨리 종결돼야 영례 부모님 만나서 무릎 꿇고 사죄라도 할 텐데, 나를 ‘살인자’로 생각하시니 그럴 수가 없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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