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체제’ 두산이 마주한 ‘빚과의 전쟁’
  • 박준용 기자 (juny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0 14:07
  • 호수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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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家 후계자들-(13) 두산그룹] 두산家 4세들 경영 전면에…‘유동성 위기’ 헤쳐 나갈까

 

‘예고된 집권’이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56)의 그룹 총수 선임 과정이 그랬다. 지난해 3월, 두산그룹을 이끌던 두산가(家) 3세 박용만 회장(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조카 박정원 회장에게 그룹 총수 자리를 물려줬다. 2000년대 후반부터 박정원 회장은 이미 후계자로 거론됐다. 박정원 회장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그는 박두병(박승직 창업주의 아들) 초대 두산 회장의 장손인 셈이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그룹 4세 경영자 중 가장 승진도 빨랐다. 2000년대 이후 그룹 주요 인수·합병(M&A)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그가 확보한 지분도 두산가 4세 중 가장 많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의 의결권 6.62%를 가진 단일 최대주주다. ㈜두산은 두산그룹의 핵심이다. ㈜두산은 두산중공업 지분 36.82%를 갖고 있다. 또 오리콤 63%, 두산타워 100%, 두산생물자원 100% 등을 보유한 두산의 뿌리다. ㈜두산이 지배하는 두산중공업이 다시 두산인프라코어(36.4%), 두산건설(80.41%) 등을 지배하는 구조다.

 

박정원 회장에 이어 ㈜두산 지분을 많이 보유한 이는 동생들인 두산가 4세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53·4.41%), 박진원 네오플럭스 부회장(50·3.76%) 등이다. 바로 직전까지 두산그룹을 이끌던 두산 일가 3세들은 각각 박정원 회장이 가진 지분의 절반가량만 보유하고 있다.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3.84%, 박용성 전 두산 회장 3.14%,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3.1%,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 1.43% 등이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2016년 3월28일 서울 강동구 DLI연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부실자산 매각에 나선 ‘박정원 체제’

 

두산은 당분간 장손 ‘박정원 체제’로 경영권을 정리하고 운영해 갈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는 그룹의 ‘형제 승계’ 원칙에 따라 박진원 네오플럭스 부회장,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49),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39), 박지원 회장 등이 후계군으로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변수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과거 두산 일가는 ‘형제의 난’으로 한 차례 혹독한 내홍을 겪었던 일이 있다. 2005년 불거진 이 사건은 ‘형제 승계’를 두고 의견차가 커지며 두산가 3세 형제들이 소송전을 벌인 일을 가리킨다. 1996년 박두병 전 회장의 장남 박용곤 전 회장에게서 경영권을 이어받은 차남 박용오 전 회장은 2005년까지 그룹을 이끈다. 2005년 두산가는 ‘형제 승계’에 따라 3남 박용성 전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것을 요구했고, 박용오 전 회장은 이에 반발했다. 박용오 전 회장은 동생인 박용성 전 회장, 박용만 전 회장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에 맞서 박용성 전 회장은 박용오 전 회장이 재임 시 수천억대 분식회계를 했다고 폭로했다. ‘형제의 난’은 수사 당국으로 넘어갔고, 결국 두산 일가 박용오·박용성·박용만 형제는 나란히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박정원 회장이 첫 1년간 낸 경영 실적은 표면적으로는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그가 총수에 오른 이후 두산은 ‘전 계열사 흑자전환’을 달성했다. 특히 지주사 역할을 하는 ㈜두산의 총차입금이 1년 만에 14조원에서 12조원 수준으로 줄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의 2016년 수주가 9조원으로 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주잔고는 20조원을 돌파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중국 시장 실적 호전으로 호황기에 진입했다”면서 “올해 실적 개선을 가속화하고, 지속적인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박정원 회장은 어떻게 취임 첫해에 두산그룹 실적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1년 만에 두산그룹의 부채가 줄어든 이유는 박용만 회장이 그룹을 이끌던 2014년부터 시작된 재무구조 개선 작업의 역할이 컸다. 2014년부터 시작된 두산의 유동성 위기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특히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두산의 2015년 당기순손실은 1조7000억원까지 커졌고, 부채비율은 276%에 달했다.

 

두산그룹은 2014년부터 자산 매각에 나섰다. 부실이 본격화했던 ㈜두산·두산인프라코어·두산건설이 보유한 자산을 팔았다. 2014년 8월 ㈜두산의 계열사이던 프랜차이즈업체 KFC를 팔아 1000억원을 마련한 게 시초다. 이후 ㈜두산은 두산동아·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두산DST 지분 등을 매각해 약 7270억원을 마련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2016년 3월 공작기계 사업 부문을 떼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1조1308억원을 받고 팔았다. 두산건설도 마찬가지다. 배열회수보일러(HRSG) 사업부를 떼어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에 30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건설용 레미콘을 제조 및 판매하는 사업부도 1300억원에 매각했다.

 

박정원 회장의 두산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계열사인 두산밥캣을 상장하기도 했다. 두산밥캣은 2007년 두산이 5조7000억원을 들여 야심 차게 사들인 중소형 건설기계 업체다. 당시 두산이 밥캣 인수를 위해 인수금 4조원 이상을 차입으로 끌어왔는데, 이게 화근이 됐다. 두산밥캣은 2008년과 2009년 2조원 이상 영업적자를 냈다. 이는 대형 기업 인수에 성공한 회사가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승자의 저주’ 사례로도 불렸다. 두산밥캣은 2011년부터 흑자전환에 성공, 지난해 414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여전히 1조5000억원 수준의 차입금이 남아 있다. 하지만 두산은 지난해 11월 두산밥캣을 상장하며 1조원가량의 재무구조 개선효과를 냈다.

 


‘미래 먹거리’ 면세점·연료전지 사업 부진

 

2014년부터 계속된 재무구조 개선작업은 효과를 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두산그룹이 갚아야 할 빚이 여전히 크게 줄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유동성 위기 우려도 나온다. 특히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우, 차입금 상환 스케줄이 숨가쁘다. 한국기업평가(한기평)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의 순차입금은 3조7000억원 수준이다. 이 중 올해 두산인프라코어가 빚을 갚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2조176억원이다. 차입금 1조4133억원, 공모사채 5500억원, 사모사채 2150억원, 단기차입금 6244억원의 만기가 1년 안에 돌아온다. 이에 대해 두산 측은 “영구채 만기는 2017년 10월이다. 리파이낸싱(refinancing), 밥캣 지분 활용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다.

 

두산건설도 상황이 좋지 않다. 3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냈다. 2014년 686억원을 손해 보더니, 2015년 5207억원, 지난해 357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기준 순차입금이 9044억원이다. 두산중공업도 마찬가지다. 2014년 855억원, 2015년 1조7509억원, 지난해 215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순차입금도 8조원대다. 두산중공업과 두산건설의 적자폭 확대는 미분양 논란이 불렀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두산 측은 분양 작업에 애를 먹고 있는데, 미분양 물량을 소진하기 위해 20~30% 가까이 할인분양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신용평가는 “준공 후 미분양 및 장기 미착공 사업장에서 추가 부실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두산건설의 악재는 계열사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한기평에 따르면, 현재까지 두산건설에 두산중공업이 4808억원을 지원했고, 디아이피홀딩스와 ㈜두산이 각각 1172억원과 616억원을 지원한 상황이다. 한기평은 “두산그룹 내 계열사들의 재무 연계성이 강한 수준”이라면서 “개별기업 위험이 여타 계열사의 자금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두산그룹은 실적을 개선할 ‘미래 먹거리’로 면세점 사업 진출과 연료전지 사업 강화를 들고 있다. 하지만 두 사업 모두 현재로선 성적이 초라하다. 지난해 두산의 연료전지 사업은 1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박서원 전무가 참여해 지난해 5월 서울 동대문에 야심 차게 세워진 두타면세점도 기대 이하다. 이 면세점은 지난해 약 3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타면세점 사업은 ‘사드 보복’의 피해를 보기도 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실적 개선에 차질이 전망된다.

 

서울 동대문의 두타면세점은 실적이 기대 이하다. ⓒ 시사저널 박정훈

두산 “미분양 사실 아냐…면세점도 안정세”

 

이에 대해 두산 관계자는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건설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체질개선을 마치고 턴어라운드 중이다. 다른 계열사까지 영향을 미칠 우려는 없다. 미분양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두산이 2015년과 2016년 분양한 1만여 가구는 100% 분양을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면세점 사업 역시 올해 2월 일평균 매출이 10억원을 돌파해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그룹의 악재는 비단 경영 실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 재벌그룹들이 대개 그렇듯 두산 역시 정치·사회적 이슈에 따른 논란에 많이 휘말렸고,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었다. 박용성 전 회장은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에게 중앙대 특혜 대가로 수천만원의 뇌물을 준 혐의를 받아 2015년 기소됐다. 그는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확정 판결을 받았다. 박용성 전 회장은 2015년 중앙대 이사장 재직 시 학사 개편에 반대하는 교수들을 향해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써 빈축을 샀다. 박용성 전 회장은 당시 “논란과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학내 구성원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중앙대 이사장과 두산중공업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두산은 인력 감축 과정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두산인프라코어는 2015년 30%가 넘는 대규모 인력 감축을 시도했다. 특히 지난해 8월 희망퇴직 신청 대상에 신입사원을 포함시켜 비판을 받았다. 당시 박용만 회장이 신입사원은 희망퇴직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지시해 사태가 일단락됐다. 지난해 3월에는 두산 계열사 두산모트롤이 명예퇴직을 거부한 직원에게 벽을 바라보게끔 책상을 배치해 ‘퇴사 종용’ 논란을 빚었다. 두산모트롤 측은 이후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과 입장을 밝혔다. 

 

 

 

박두병 초대 회장 유언으로 ‘형제간 경영 승계’

 

1896년 8월, 서울 종로4가 15번지에 포목상 하나가 문을 연다. 상호는 ‘박승직 상점’. 이 상점이 오늘날 두산그룹의 뿌리가 된다. 박승직 창업주는 17세 때 보부상으로 시작해 사업을 일군 ‘자수성가형’ 인물이었다. 그는 1915년 ‘박가분’이란 화장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내 정정숙씨의 제안이었다. ‘박가분’은 1930년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박승직 창업주는 1930년대 일본인이 세운 소화기린맥주회사에 주주로 참여했고, 1948년 그의 장남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이 이 회사를 인수한다. 이는 이후 오비맥주의 모태가 된다. 박두병 회장은 1951년 두산상회를 세우고 사장에 취임한다. 그는 음식료 계열사를 인수하며 회사를 키워간다. 박두병 회장은 명계춘씨와 결혼해 6남1녀를 둔다. 박두병 회장의 여섯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지(遺志)에 따라 ‘형제 승계’ 형태로 기업을 이끈다.

 


박두병 전 회장의 장남이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다. 그는 1981년부터 회사를 이끌었다. 그는 이응숙씨와의 슬하에 2남1녀를 뒀는데, 장남이 박정원 현 두산그룹 회장이다. 박정원 회장은 공군참모총장·국회의원을 지낸 김인기씨의 딸 김소영씨와 결혼했다. 박용곤 회장의 차남은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 장녀는 박혜원 두산매거진 부사장이다. 박두병 회장의 딸 박용언씨는 서울고검 검사장을 지낸 김세권 변호사와 결혼했다.

 

박두병 회장의 차남 박용오 전 두산 회장은 1996년부터 두산그룹을 이끌다 2005년 ‘형제의 난’으로 물러났다. 이 사건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그는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두병 회장의 3남 박용성 전 회장은 형 박용오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총수 자리에 올랐다. 박용성 전 회장이 취임한 뒤로 두산가 3세는 약 4년씩 그룹을 이끌었다. 4남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5남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도 약 4년간 재직 후 그룹 총수 자리를 내려놓았다. 6남 박용욱씨는 두산과 별개인 이생그룹을 따로 이끌고 있다.

 

두산그룹은 현재 4세들이 활발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박용성 전 회장의 장남 박진원씨는 네오플럭스 부회장, 차남 박석원씨는 두산엔진 부사장이다. 박용현 이사장의 장남 박태원씨는 두산건설 부회장, 차남 박형원씨는 두산인프라코어 부사장, 3남 박인원씨는 두산중공업 전무다. 박용만 회장의 장남 박서원 두산 전무, 차남 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부장도 마찬가지로 두산 그룹 계열사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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