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근함이 쌓여 아우라가 된 배우 안성기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7 13:03
  • 호수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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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배우 인생 동안 단 한 번의 스캔들도 없어

 

안성기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사생활이 깨끗한 인기배우’로 통한다. 여섯 살에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 아역으로 첫 배우의 길을 걸은 지 지금까지 60년간 그에게는 그 흔한 스캔들 하나가 없다. 보통 이 정도로 스캔들이 없다는 건 거꾸로 말해 인기가 없다는 걸 방증하는 경우가 많지만, 안성기는 정반대다. 그는 아역 시절에도 《10대의 반항》이라는 작품으로 문교부 장관상(대종상의 전신), 샌프란시스코영화상 골든게이트 특별상을 받을 만큼 인기가 있었고, 중간에 학업 때문에 영화계를 떠났다 다시 돌아와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로 스타덤에 오른 후 배창호·임권택·강우석 감독 등과 함께 1980~90년대 최고의 인기배우로 자리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갖가지 작품들 속에서 다양한 연기를 통해 ‘국민배우’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만큼 젊은 시절부터 현재까지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이렇다 할 스캔들이 전혀 없다는 건 그저 ‘자기 관리’라는 말만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이미지 관리’라는 표현이 여기저기 등장했었고, 그런 관리를 통해 스타들이 자기 관리를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외부에 포착되는 이미지 관리만으로는 자기 관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실제 그 모습 그대로를 관리하는 인성교육의 문제가 중요해지고 있는데, 안성기는 이미 1980~90년대부터 이를 실천해 온 인물이다.

 

이에 대해서는 안성기와 《칠수와 만수》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스타》 등의 작품을 해 온 콤비인 박중훈의 이야기가 많은 걸 말해 준다. 그는 안성기에 대해 “방송에서 나오는 모습과 실생활의 모습이 차이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그에 대해 돌아다니는 미담들은 대부분 동료나 후배 배우들의 입에서 자발적으로 나온 것들이다. 특히 후배들이 안성기를 존경하는 건 선배 연기자로서가 아니라 인격자로서라고 한다.

 

배우 안성기가 출연했던 영화들

 

연기의 대가지만, 베드신을 찍지 못하는 이유

 

안성기는 아역 시절의 어린아이부터 현재의 노인까지 거의 전 세대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또 같은 이미지의 역할만 반복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직업군과 개성을 가진 인물들을 소화해 냈다. 거기에는 거지도 있고, 바보도 있고, 지체부자유자는 물론이고 군인, 스님도 있었다. 이렇게 거의 모든 영역의 연기를 소화해 낸 배우지만, 그에게도 유일하게 못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베드신이다. 그의 거의 유일한 베드신으로 기억되는 작품이 장미희와 함께 출연했던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이지만, 이 작품에서도 베드신은 대역을 많이 썼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베드신을 찍지 못하는 이유가 흥미롭다. ‘몰입이 되지 않아서’라고 했다. 다른 역할들은 그렇게 잘 몰입하면서 베드신에 유독 몰입이 안 되는 이유가 뭘까. 박중훈은 한 인터뷰에서 안성기의 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꿈속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을 유혹하자 아내를 배신할 수 없어 억지로 꿈에서 깼다는 이야기다. 물론 우스갯소리로 한 이야기일 테지만, 그의 가정에 대한 충실함은 자타가 인정하는 바다. 그리고 이 부분이 연기와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가 하는 점을 안성기는 1993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말한 바 있다. 그는 “남자의 힘은 가정에서 나오는 것이며, 사랑할 상대가 있는 것이야말로 삶의 원동력이요, 행복의 원천”이라며 “대중을 상대로 하는 배우에게 있어 건전한 사생활이야말로 가장 마음 편한 휴식처”라고 했다.

 

안성기는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배우다. 그가 그런 평판을 얻게 된 건 그 오랜 세월 동안을 오롯이 영화배우라는 한 길만을 걸어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그 과정에서 그가 보인 많은 행적들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영화 촬영장에서 한 신인배우가 NG를 많이 내 감독에게 호된 질책을 받았을 때, 이를 중재하고 그 배우에게 따로 만나 “할 수 있다”고 어깨를 토닥여줬다는 일화는 영화계에서 안성기라는 인물에 대한 존경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베트남 꿈 포기하면서 한때 방황하기도

 

그가 후배들을 이처럼 챙기는 이유는 자신 역시 그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안성기가 늘 ‘국민배우’의 위치에서 성공가도를 걸어왔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젊은 시절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즉 아역배우로 성공한 후, 중학교 때 배우의 길을 포기했고, 베트남에 가겠다는 꿈으로 베트남어를 전공하고 ROTC 장교 생활까지 했다. 하지만 전쟁이 종결되고 베트남이 공산화됨으로써 이를 포기하고 방황하던 시기가 그렇다. 결국 배우의 길로 다시 돌아왔지만 아역배우로서 받았던 스포트라이트는 더 이상 없었다. 그는 당시를 술회하며 아역배우가 성인배우로 성공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현실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에게 성공의 기회를 주었던 《바람불어 좋은 날》을 연기하면서 그는 자신의 연기력 부족을 알게 됐다고도 했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장호 감독의 조련을 받았던 그 경험이 자신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는 것. 결국 안성기의 이런 어려운 시절의 경험들은 그가 왜 후배들을 챙기는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그가 존경받는 인물이 된 건 이런 어려웠던 경험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서다.

 

안성기의 연기는 억지로 짜내거나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물론 배역에 따라 만들어내는 역할들도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자신 속에 있는 많은 가능성들을 자연스럽게 뽑아낸 역할들이 많았다. 그래서 악역을 하더라도 거기서 느껴지는 건 그저 낯섦이라기보다는 일상 어디선가 봤음 직한 그런 느낌이 주는 섬뜩함이 더해진다. 이를테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살인자 역할 같은 것이 그렇다. 또 대통령 역할(《피아노 치는 대통령》)을 해도 그 권위와 함께 친근한 면을 잊지 않는다.

 

안성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주·조연이나 상업영화·독립영화를 구분하지 않지만, 대본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누구보다 철저한 배우로 알려져 있다. 또한 다작이나 겹치기를 하지 않는 배우다. 그것은 한 배역을 소화하는 데 있어 그것을 자신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가를 면밀히 판단하고, 또 집중적으로 연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가 하는 배역들은 그토록 달라도 다 안성기인 것처럼 자연스럽다.

 

다양한 세대와 직업과 개성들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면서 안성기는 우리 옆에 있는 친근한 어떤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친근함이 그의 아우라가 되었다. 실로 배우로서의 아우라란 억지로 만들어낸 신비주의가 아니라 이러한 다양한 친근함을 형상화해 내는 그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준 배우. 그가 바로 안성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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