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홍보팀 24시, 그들의 업무는 ‘7 to 11’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6 10: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물컵 갑질’ 이후 13~14시간 근무… 홍보업계 관계자, “오너가 잘못하면 고생은 직원 몫”

 

총수 일가가 갑질 논란에 휘말리면 기업 홍보팀엔 불이 난다.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선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곳은 ‘대한항공 홍보팀’”이란 얘기도 나돈다. 근거 없는 우스갯소리는 아니었다. 



‘물컵 갑질’ 이후, 홍보팀 2주째 13~14시간 근무 

 

시사저널은 4월25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항공 빌딩에서 통합커뮤니케이션실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4월12일 조현민 전무의 ‘물컵 갑질’ 논란이 불거진 이후) 매일 아침 7시에 나와 밤 10~11시에 퇴근하고 있다”면서 “주말에도 회사에 나왔다”고 했다. 식사하는 두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13~14시간씩 2주째 일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대한항공 빌딩에는 홍보팀 직원 14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인쇄‧방송매체와 온라인매체 등 300곳에 달하는 언론사의 기자들을 상대하고 있다. 직접 출입하는 언론사는 약 70~80곳이다. 이 관계자는 “저녁 방송뉴스까지 모니터링하려면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럼 홍보팀이 대응하고 있는 문의는 하루에 몇 건일까. 이 관계자는 “직원마다 담당 매체가 다르다 보니 잘 모르겠다”면서 “나는 전화뿐만 아니라 카톡으로도 질문을 받으니 정확히 세기 힘들다”고 했다. 다만 “걸려오는 전화만 계산하면 하루에 100통은 안 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말하는 도중에도 이 관계자의 휴대폰에선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4월25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항공 빌딩 정문. ⓒ 시사저널 공성윤

 

인터뷰 중에도 쉴 새 없이 휴대폰 진동 울려

 

반면 사무실은 의외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통화를 하는 직원이 간간이 보이긴 했지만 그 수는 2~3명에 불과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주 들어선 소강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한진그룹을 둘러싼 의혹이 가라앉은 건 아니다. 오히려 불씨는 더 커졌다. 조현민 전무의 어머니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에 대한 보도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월요일(4월23일)엔 이 이사장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호텔 공사 현장에서 관계자들에게 삿대질하는 영상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화요일(4월24일)엔 이 이사장의 전직 운전기사가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 이사장에 대한 정식수사를 예고했고, 딸인 조 전무는 이미 경찰 소환을 앞둔 상태다. 게다가 공정거래위원회는 한진그룹에 대한 현장조사에 돌입했다. 사정당국이 사방에서 올가미를 조이는 모양새다. 

 

언론에서 보도한 일련의 의혹들은 4월15일 직장인 앱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에서 시작됐다. 자신을 ‘대한항공 직원’이라고 소개한 작성자는 글을 통해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과 불법행위를 폭로했다. 블라인드 앱에 가입하려면 본인의 회사 메일을 인증해야 한다. 즉 글의 진위여부를 떠나 작성자는 대한항공 재직자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해당 글엔 “대한항공 필리핀 지점이 필리핀 가정부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총책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담겨 있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는 수요일(4월25일) “조 회장 일가가 필리핀 가정부를 고용한 것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힌 상태다. 필리핀 가정부가 적법한 비자를 받지 않았을 경우, 고용주는 처벌 대상이 된다. 

 

 

서울 중구 대한항공 빌딩 입구 ⓒ 시사저널 공성윤

 

블라인드 앱에서 제기된 의혹… “실제 경험은 없다”

 

대한항공 홍보팀도 블라인드 앱의 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동료 등에게 들은 얘기를 옮겨 썼을 뿐, 실제로 경험했다는 내용은 없다”고 일축했다. 이와 관련, 조 회장 일가의 갑질 의혹을 다룬 대다수의 기사에 등장하는 ‘대한항공 관계자’는 “(의혹에 대해) 확인이 어렵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회사 업무와 관련 없는 총수 일가의 사적인 일을 홍보팀이 팩트체크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했다.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은 직원들의 숨소리마저 기사화되는 상황입니다. 고충을 들어주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홍보팀의 입장이 또 논란거리가 될 까봐 두렵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양해해주기 바랍니다.”

 


“잘못은 오너가 저지르고 고생은 늘 직원이 했다.”

 

돌이켜보면 홍보팀은 잘못한 게 없다. “잘못은 오너가 저지르고 고생은 늘 직원이 했다.” 전직 홍보업계 관계자 A씨의 말이다. 그는 오너 구조의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근무하다 사표를 냈다. A씨는 “오너에 대한 갑질 논란이 터질 때마다 홍보팀 직원들은 초비상 상황에 돌입해야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루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업무에 쏟아 부어야 하는 대한항공 홍보팀의 상황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채주엽 한국사내변호사회 부회장은 “직원은 회사의 공적 자원”이라며 “오너의 개인적 사건을 위해 공적 자원을 투입하는 건 잘못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기업 구조상 오너 리스크는 회사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데, 그때는 두 가지를 딱 구분해 대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기자는 4월25일 저녁 7시30분 다시 대한항공 빌딩을 찾았다. 홍보팀 사무실의 불은 여전히 환했다. 직원들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이미 퇴근했거나 퇴근을 준비할 시간이다. 이 시각, 언론에선 “이명희 이사장이 해외 대한항공 지점장에게 특정 물품을 사서 보내라고 지시한 이메일이 공개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 

 

 

4월25일 저녁 7시30분 대한항공 빌딩 홍보팀 사무실 전경. 환한 불빛 너머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 시사저널 공성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