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타이틀 두고 벌어진 백차대전(白茶大戰)
  • 서영수 차(茶)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10 10:52
  • 호수 15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영수의 Tea Road] 달빛으로 빚어지는 로맨틱한 백차, 월광백

 

백차(白茶) 삼국지의 기선을 잡기 위해 윈난(雲南) 대백차의 주생산기지인 징구(景谷)는 청나라 정부기록을 근거로 푸젠성(福建省) 백차의 조상은 윈난성이라며 정통·원조 경쟁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푸젠성은 청나라 기록보다 앞선 명나라 문필가 주량공(周亮工)이 쓴 푸젠성 풍물기록 등을 내세워 윈난성의 주장을 반박했다. 차 문화와 산업에 있어 원조라는 타이틀과 스토리의 힘은 막강하다. 푸젠성의 푸딩(福鼎)과 정허(政和)는 물론 윈난성 징구 지역의 차 전문가와 산업종사자는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백차 원조’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다. 

 

윈난 대백차를 살청하는 기술자 © 서영수 제공


 

고문헌 설화 등으로 백차 발원지 논쟁

 

윈난성 푸얼시(普?市) 징구는 3450만 년 전 관엽목란(寬葉木蘭·야생차나무의 조상) 화석이 지구상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지역으로 차 조상 발원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징구현에 속한 양타촌(秧塔村)이 윈난 대백차의 발원지다. 150여 년 전 란창강(瀾滄江) 주변을 돌며 장사를 하던 진육구(陳六九)라는 상인이 차산에서 우연히 백차종 나무를 발견하고 씨앗을 남몰래 따서 죽통에 숨겨 와 고향인 양타촌에 돌아와 심었다. 처음에는 텃밭에 심어 키우다가 수년이 지나 마을 이곳저곳에 차나무를 분양해 양타촌 전체에서 백차나무를 키워 대백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진육구가 심었다는 윈난 대백차의 조상나무가 4.5m 높이를 자랑하며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하얀 솜털로 가득 덮인 윈난 대백차는 외형과 맛이 뛰어나서 청나라 옹정제(雍正帝) 때 윈난에서 황실공차로 바쳐지던 보이차(普?茶)와 함께 징구에서 공차로 진상되던 백룡수공차(白龍鬚貢茶)의 맥을 잇고 있다. 중국 백차 시장에 뒤늦게 진입한 윈난 대백차의 시장점유율 확장을 위해 징구현은 정부가 중심이 돼 차 상인 및 농가와 함께 품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윈난의 대백차 산지 © 서영수 제공


 

생산량 확대를 위한 차나무 수종개량과 채취 단계부터 완성할 때까지 신기술을 접목해 등급에 맞는 품질표준화를 추구하는 징구현은 윈난 대백차의 위상과 지명도를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역사와 전설을 통한 스토리 만들기에 고심하고 있다. 청나라 정부기록에 의하면 1857년 징구현에서 대백차나무를 푸젠성의 푸딩으로 옮겨 와 심었다는 사실과 1867년부터 푸딩에서 백차를 만들었다는 대목이 있다. 사료를 근거로 푸젠성 백차나무의 조상은 윈난성이라고 징구현은 중앙정부에 주장했다. 

 

징구현에 맞서 푸딩은 ‘차신’으로 추앙받는 육우(陸羽)가 당나라 때 쓴 《다경(茶經)》 7장에 나오는 백차 생산지인 백차산(白茶山)이 바로 푸딩에 있는 푸딩타이무산(福鼎太?山)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모든 차를 ‘6대차류(六大茶類)’로 정리한 진연(陳?) 교수도 《다경》을 검토한 후 푸딩의 손을 들어줬다. 송(宋)나라 휘종(徽宗)이 저술한 《대관차론》에도 백차가 푸딩에 소재한 황실차원에서 생산되어 황실에 공납된다는 기록이 있다. 사료와 민간기록을 참조하면 푸딩이 유리했다.

 

이를 승복하지 않은 윈난성이 1800여 년 전 윈난 지역 차 조상신으로 모시는 파아이렁(??冷)과 7공주 설화를 근거로 원조를 자처하자 푸딩은 삼황오제(三皇五帝) 시절 백차나무 전설을 근거로 백차 발원지가 푸딩이라고 공언했다. 승산이 불투명한 ‘백차 원조’ 경쟁도 중요하지만 차의 품질과 생산량이 더욱 중요함을 인지한 푸딩과 징구는 신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푸딩은 중국 10대 명차에 이름을 올렸고 징구 대백차는 윈난 8대 명차에 선정됐다. 징구 대백차를 윈난 대백차라고도 부른다.

 

윈난 대백차는 ‘6대차류’로 분류하면 백차에 속하지만 시장에서는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완성된 차가 아닌 차를 만드는 원료로서 부를 때도 윈난 대백차라고 부르는 이유는 제조공법에 따라 ‘6대차류’에 속하는 모든 차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윈난 대백차나무 찻잎으로 백차는 물론이고 제조공법의 변화에 따라 녹차와 홍차 그리고 보이차도 만들 수 있다. 윈난  대백차는 일광과 그늘에서 말리는 방식 중 한 가지를 선택하거나 병행해서 사용하는데 햇빛을 전혀 보지 않고 달빛으로만 말린다는 ‘월광백(月光白)’이 최근 로맨틱한 이름으로 인기가 높다.

 

장미를 혼합해 만든 월광백 © 서영수 제공


 

월광백은 월광미인, 월광백차, 월광차라고도 불리는데 방 안에서 햇빛을 차단하고 달밤에 말려서 매력 넘치는 이름을 가지게 됐다는 설과 완성된 찻잎이 앞면은 검고 구부러진 뒷면은 어린 솜털로 덮여 흰색으로 빛나는 모양이 어두운 밤에 뜬 초승달처럼 아름답다고 이름 지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월광백을 보이차로 보는 시각도 일부 있지만 무리다. 월광백은 달빛이 아니어도 최소한 태양에 노출되면 안 되는 제작공정원칙이 있어 반드시 태양 아래 말려야 하는 보이차 표준 제조공법과 다르다. 윈난 대백차를 원료로 보이차 제조공법으로 만든 보이차와 월광백은 똑같은 원료를 사용하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차다. 월광백은 정통 백차 제작기법으로 만든 백차지만 장미꽃과 혼합해 재가공돼 장미 월광백으로 변신하면 백차가 아닌 재가공차로 분류한다. ‘6대차류’에 속한 차를 꽃과 병배하거나 향을 입히는 2차 공정을 거쳐 완성시키면 재가공차라고 한다. 

 

푸딩의 백차 생엽 © 서영수 제공


 

대백차 산지 각각의 강점 내세워 경쟁

 

윈난 대백차는 원조 경쟁과 스토리텔링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지는 못했지만 대백차를 원료로 신기술을 적용해 다양한 종류의 차를 생산해 내는 한편 ‘달빛으로 빚어지는 월광백’을 신무기로 장착해 젊은 차 애호가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푸젠성의 푸딩은 가장 높은 지명도와 많은 생산량을 장점으로 시장에 어필하기 위해 정통 공법과 다른 신기술 개발을 도입해 백차 시장의 요구를 선도하고 있다. 지명도가 떨어지는 정허는 생산량도 많지 않아 안타깝지만 제값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허는 생산량과 명성이 아닌 전통 수공예 제작방식을 고수하는 방법으로 정허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 백차 삼국지를 이끌어가는 푸젠성과 윈난성의 3대 백차 생산기지는 3인3색 개성과 원조 논쟁을 넘어 신기술 경쟁과 전통 고수라는 각자의 길로 백차 시장을 함께 키워 나가고 있다.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TOP ST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