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빙산’ 드러날까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9 11:05
  • 호수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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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케미칼 주장 반박할 유해성 연구자료 속속 나와
檢,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고 수사 재돌입

‘안방의 바이오사이드(biocide) 사건’으로도 불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고는 이미 ‘옥시 사태’로 알려진 바 있다. 옥시의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유해성이 입증된 뒤, 관련자들은 업무상 과실치사로 처벌을 받았고, 피해 보상도 마무리됐다. 그러나 옥시 사태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옥시 제품이 아닌 다른 회사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들은 구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원료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옥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피해자를 낸 ‘가습기메이트’의 원료 개발사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과 이를 판매한 애경산업은 처벌받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2012년 SK케미칼을 최초 고발한 이후 2014~16년까지 수차례 고발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시민단체와 피해자들은 지속적으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하며 1인 시위를 이어갔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늘었다. 2016년 4050명이던 피해자 수는 2018년 11월 기준 6210명으로 증가했다. 

최근 검찰은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고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1월15일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을 압수수색하면서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고에 대한 수사 돌입을 알렸다. SK케미칼이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을 만든 지 25년 만에,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원인이 드러난 2011년 8월31일 이후 8년 만에야 이들 기업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SK케미칼이 생산한 가습기살균제 제품들 ⓒ 연합뉴스
SK케미칼이 생산한 가습기살균제 제품들 ⓒ 연합뉴스

“피해자 90% 이상, SK케미칼 원료 때문”

지금까지 SK케미칼은 가습기메이트에 사용된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의 유해성이 동물실험에서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책임을 부인해 왔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CMIT와 MIT의 유해성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쌓였기 때문이다. 환경부까지 지난해 11월 관련 연구 자료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수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수사 재개 가능성이 열리자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는 최창원·김철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애경산업 전 대표 등 14명을 다시 검찰에 고발했다. 

가습기넷은 고발장을 통해 “국내 가습기살균제 피해 중 90% 이상이 SK케미칼이 개발한 화학물질을 사용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해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SK케미칼이 “PHMG를 옥시 등 제조사가 아닌 중간도매상에게 판매했기 때문에 그 물질이 가습기살균제 용도로 쓰이는 줄은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물질이 흡입독성이 있고 인체에 유해한 물질임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증거가 나왔다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화학물질은 크게 3가지다.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과 CMIT·MIT,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등이다. 이 중 이미 유해성이 입증된 옥시레킷벤키저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PB 제품의 살균제 물질은 SK케미칼이 개발한 SKYBIO1125로 그 주성분이 PHMG다. 애경과 이마트 PB로 판매된 가습기살균제 물질은 SK케미칼이 개발한 SKYBIO FG로, 그 구성 원료는 방부제인 CMIT와 MIT다. 

가습기넷은 SK케미칼이 공급한 PHMG 를 사용한 옥시레킷벤키저 관련 소송 및 동물흡입실험을 통해 PHMG의 위해성과 흡입독성이 인정된 바 있고, SK글로벌(호주법인)이 PHMG를 호주로 수입하기 위해 제출한 문서에서 “PHMG가 흡입독성이 있고, 상온에서 분말 형태로 존재하는 PHMG가 비산되어 호흡기로 흡입될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작업장에서의 노동자는 보호 장비를 갖추고 작업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는 것 등을 그 증거로 들어 SK케미칼이 이 물질의 유해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SK케미칼과 애경이 제조·판매한 제품에 화학물질 성분이나 위해성이 표기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2017년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게재된 ‘가습기살균제 제품에 표기된 안전보건정보 고찰 연구’ 결과에 따르면, SK케미칼과 애경은 호흡기 흡입에 따른 독성과 주의 및 권고사항, 비상조치에 대한 정보를 표시하지 않았다. 가습기넷은 “독성학적 근거도 없이 사용방법과 함께 ‘안전’ ‘안심’ ‘무해’ 문구를 표기했다”며 “SK케미칼과 애경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누구보다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진행된 4번의 동물실험은 모두 가습기메이트의 원료 물질인 SKYBIO FG가 아닌, SKYBIO FG에 들어 있는 CMIT와 MIT로만 시험을 했으며, 독성을 확인할 수 없는 한 가지 농도로만 실험을 했다는 사실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해당 조건에 노출된 쥐에서 독성 작용이 확인되지 않은 것일 뿐인데, 이 결과로 CMIT·MIT가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는다고 해석하면 곤란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실험이 폐섬유화 관련성만 확인했다는 문제도 지적된다. 이제 폐섬유화뿐 아니라 천식, 태아 피해 등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질환의 인정 범위가 넓어진 만큼, 그 실험 결과가 CMIT와 MIT가 유해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근거로 쓰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기태 가습기넷 공동운영위원장은 “당시 동물실험은 폐섬유화에 대한 실험 결과다. 지금 인정되는 질환들을 CMIT와 MIT가 유발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며 “단지 동물실험에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독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인체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을 간과하고, 쥐 실험으로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해성 입증하는 학계 연구 결과 축적돼 

과거와 달리 CMIT와 MIT의 유해성을 입증할 만한 임상 결과가 축적된 점도 주목된다. 시사저널은 ‘[단독] “CMIT·MIT 사람에게 유해” 해외 임상 결과 확인(2016년 6월8일자)’ 보도를 통해 이 물질들의 유해성을 보도한 바 있다. 2012년 영국의 세계적인 의학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에는 ‘CMIT·MIT는 공기를 통해 접촉해도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는 덴마크 국립 알레르기 연구센터 등의 연구 결과가 게재됐다. 이 결과를 근거로 연구진은 안전한 농도 규정을 마련하거나 모든 제품에서 이 성분의 사용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2013년 또 다른 의학 학술지 ‘Contact Dermatitis’에도 흡입 독성의 연구 결과가 발표됐는데, CMIT·MIT를 흡입하면 알레르기 반응과 함께 천식도 유발될 수 있다는 결론이다. 

2010년 같은 의학 학술지에 ‘젤·핸드크림·손세정제·샴푸 등에 들어 있는 CMIT·MIT에 노출된 후 증상이 뒤늦게 나타날 수 있다’는 스페인 한 대학병원(Hospital General Universitario)의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으며, 2014년에는 같은 의학 학술지에 구체적인 사례까지 보고됐다.

2014년에는 같은 의학 학술지에 구체적인 사례까지 보고됐다. 영국 루이샴 병원(University Hospital Lewisham) 연구팀은 ‘CMIT·MIT 성분의 공기 접촉은 심각한 안면 피부염과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팀은 “CMIT·MIT를 공기로 접촉한 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호흡곤란도 생긴다”고 지적하며 즉각 해당 성분의 위험성을 평가하고 관리할 것을 제안했다. 그동안 동물실험 결과로 안전성을 주장했던 SK케미칼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상반되는 내용이다. 가습기넷은 이 같은 해외 임상 결과들을 다룬 시사저널 기사를 고발장 증거로 제출했다.

그 외 최근 발표된 자료들도 과거 동물실험 결과를 부정한다. 2017년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임신한 쥐가 CMIT와 MIT에 노출돼 사산한 과정을 통해 이 물질들이 폐를 통해 전신 혈관계와 태반으로 이동이 이뤄진다는 것이 확인됐다. 서울아산병원 연구팀은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쌍둥이 자매의 병증이 전형적인 가습기살균제 폐질환과 같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이같이 축적된 연구 결과들로 인해 CMIT와 MIT를 사용한 가습기살균제와 피해의 인과관계가 입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질병관리본부의 동물실험을 통해 CMIT와 MIT의 유해성이 없다고 진단했던 이전 정부와 달리, 이번 정부가 유해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도 관련 수사가 과거와 달리 강도 높게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성분들이 포함된 가습기살균제가 소비자의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환경부 역시 2018년 10월 환경부종합감사에서 “환경부는 CMIT·MIT 함유제품 단독사용자에게서도 PHMG로 인한 피해자와 동일한 특이적 질환이 나타났기 때문에 해당 기업 피해자의 폐손상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며 “정부가 피해를 공식 인정한 만큼 SK와 애경도 피해자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 

피해자들의 고발대리인인 법률사무소 해내의 박종언 변호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앗아갔음에도 가해 기업에 대해 제대로 수사가 되지 않아 SK케미칼은 계속해서 책임을 부인해 왔고 수많은 이득을 취해 왔다”며 “이 같은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가해 기업에 대한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가 이뤄지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SK케미칼 관계자는 “아직 유해성과 관련된 고발장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 공식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 의견 청취 차원에서 피해자들을 만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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