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브랜드’ 휠라는 어떻게 ‘10대들의 핫템’으로 날아올랐나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03.20 15:00
  • 호수 15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모 세대 인기 브랜드 요즘 애들에게 먹힌 이유 분석해 보니…키워드는 ‘Z세대’ ‘뉴트로’ ‘콜라보’

패션 감각이 부족한 ‘아재’들이 입는 브랜드, 옛날 유행 메이커, 고루한 이미지. 그동안 휠라가 받아왔던 수식어였다. 큰 글씨로 휠라 로고가 새겨진 가방이나 티셔츠는 ‘촌스럽다’며 외면받았다. 그러던 이 브랜드가, 이제 1020세대의 ‘인싸템(인사이더+아이템)’이 됐다. 학생들이 휠라 신발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휠라 빅 로고를 전면에 배치한 반팔 티셔츠를 친구들과 맞춰 입는다. 올드한 이미지로 시장에서 뒤처지면서 파산 위기까지 몰렸던 휠라가, 패션시장에서 홀로 독주하는 트렌디한 브랜드가 됐다. 그것도 타깃층을 1020세대로 완전히 바꿔서. 휠라는 완벽하게 부활했다. 

휠라는 2018년 9월 세계 4대 패션쇼인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2019년 봄·여름 컬렉션을 선보였다. ⓒ FILA
휠라는 2018년 9월 세계 4대 패션쇼인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2019년 봄·여름 컬렉션을 선보였다. ⓒ FILA

휠라코리아에 따르면 2015년 8157억원, 2016년 9671억원이던 매출은 2017년 2조5030억원으로 올라섰고, 2018년 잠정 실적은 2조9615억원이다. 2020년에는 매출 ‘3조 클럽’에 가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패션 상장기업들의 극심한 침체 속에서 홀로 사상 최고의 실적을 겨냥한 휠라는 어떤 전략을 펼친 것일까. 패션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휠라의 성공사례를 3가지 키워드를 통해 짚어봤다. 

휠라는 전속모델로 아역배우 출신 김유정을 기용해 1020세대에게 어필했다. ⓒ FILA
휠라는 전속모델로 아역배우 출신 김유정을 기용해 1020세대에게 어필했다. ⓒ FILA

■ Z세대 
1020 타깃으로 브랜드 정체성 변화  

휠라는 사실 1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브랜드다. 1911년 이탈리아에서 탄생했다.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등 글로벌 유명 스포츠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이 이탈리아 정통 브랜드를,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이 1991년 한국에 라이선스 형태로 들여왔다. 그러나 유럽 시장에서 큰 부진을 겪고 경영 상태가 불안정해지면서, 휠라는 매각을 결정했다. 2003년 6월 윤 회장은 본사를 사들였고, 2007년 휠라코리아는 휠라 본사 인수 작업을 마무리했다. ‘꼬리가 머리와 몸통을 삼켰다’는 신화를 남긴 윤 회장은 휠라를 인수한 뒤 흑자 전환을 이끌었다. 그러나 나이키와 아디다스 같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2013년부터 매출이 줄어 고전해야 했다. 

그래서 휠라는 바꿨다. ‘브랜드명’만 빼고 모든 정체성을 바꿨다. 그동안 골프, 테니스와 같은 스포츠군에 주목한 만큼 3040세대 이상 ‘아재들’의 소비가 많이 이뤄졌고, 등산화와 트레킹화 등 제품을 신상품으로 내놓아 휠라를 찾는 젊은 소비자는 극히 적었다. 이 때문에 고루한 이미지가 굳어졌다고 판단한 휠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기로 했다. 1991년 휠라코리아 창립 이후 25년 만이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 일명 ‘Z세대’를 비롯한 1020에게 어필하기 위해, 아역배우 출신의 김유정을 광고 모델로 새롭게 기용했다. 어린 세대를 주 고객층으로 하는 만큼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하는 데도 초점을 맞췄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지난해 11월 열린 ‘코리아 패션 마켓 트렌드 전망 세미나’에서 밀레니얼 세대에 맞는 혁신을 이룬 기업 중 하나로 휠라를 꼽았다. “1020세대의 구매 의욕을 높이기 위해 디자인을 혁신했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시장 변화에 주도적으로 반응하면서 역대 최고 실적으로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Z세대가 상품을 구매한 뒤 후기, 구매방법 등을 공유하고, 차별화된 디자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는 점도 공략했다. 선생님과 함께한 재미있는 사진과 동영상을 올린 전국 중·고생들에게 운동화를 증정하는 이벤트도 매출의 촉매제가 됐다. 

휠라는 1997년 출시한 디스럽터의 후속작 디스럽터2를 2017년 출시했다. 디스럽터2는 국내 ‘어글리 슈즈’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휠라가 펩시와 콜라보해 출시한 티셔츠 ⓒ FILA
휠라는 1997년 출시한 디스럽터의 후속작 디스럽터2를 2017년 출시했다. 디스럽터2는 국내 ‘어글리 슈즈’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휠라가 펩시와 콜라보해 출시한 티셔츠 ⓒ FILA

■ 뉴트로  
“패션은 돌고 돈다” 현대적 감성 입힌 재해석

일명 ‘뉴트로’. 새로움(New)과 복고(Retro)의 합성어로, 과거의 것을 현재 감성에 맞게 재해석한 것을 말한다. 2016년 9월부터 휠라는 옛 디자인을 참고하거나 재현한 제품들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패션 유행은 돌고 돈다’는 정설이 있듯이, 문화 분야에서 먼저 시작된 복고 트렌드를 일찌감치 감지해 시장에 대응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뉴트로는 패션업계에서 열풍을 만들어내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2019년 트렌드 중 하나로 ‘복고를 새롭게 해석하는 뉴트로’를 꼽기도 했다. 

휠라의 뉴트로, 그리고 부활을 주도한 상품은 운동화다. 테니스를 주요 종목으로 삼아 스포츠용품을 만들어낸 역사를 가지고 있던 휠라는, 학생들에게 ‘코트화’가 유행하고 있는 것에 착안했다. 오랜 개발 기간을 거쳐 테니스화의 복고 디자인에 현대적 감성을 입힌 ‘코트디럭스’를 출시했다. 이 신발은 15개월 만에 100만 켤레 이상 팔렸다. 1분에 1.5켤레씩 판매된 셈이다.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코트화 가격은 10만원이 넘었지만, 휠라는 6만원대로 제품을 출시했다. 이 신발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갑(甲) 운동화’로 불리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휠라 로고가 전면에 배치된 티셔츠의 판매량도 함께 올라갔다

휠라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디스럽터2’를 출시했다. 휠라는 미국 뉴욕과 유럽 등에서 1960~70년대 유행했던 복고풍 스타일의 옷들과 신발들이 선을 보이자, 밑창이 두껍고 디자인이 투박한 ‘어글리 슈즈’에 주목한 것이다. 휠라는 1997년 출시됐던 디스럽터의 후속작, 디스럽터2를 내놨다. 시범 삼아 1000족 한정으로 온라인 쇼핑몰에 출시된 이 신발은 하루 만에 ‘완판’됐고, 지난해 7월 공식 출시된 디스럽터2는 코트디럭스의 기록을 꺾었다. 국내에서 180만 켤레의 디스럽터2가 판매됐고, 세계 판매량은 1000만 켤레에 육박한다. 디스럽터2는 글로벌 패션 데이터 플랫폼 리스트가 선정한 ‘2018년 2분기 TOP 10 여성 인기 아이템’ 중 2위에 올랐고, 미국 슈즈 전문 미디어 풋웨어뉴스가 선정한 ‘2018 올해의 신발’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성공에 힘입어 휠라는 2018년 3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면서 증권가의 극찬을 받았다. 

키움증권은 지난해 11월 휠라에 대해 “성공적인 리뉴얼 효과는 2019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 턴어라운드를 시작으로 미주 및 유럽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중국에서는 프리미엄 스포츠 브랜드로 입지를 다지고 있으며, 명품 브랜드 펜디(FENDI)와 콜라보 진행, 해외 유명인 및 인플루언서들의 착용 등 브랜드의 노출 빈도 증가에 따라 광고 효과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분석했다. 

키움증권은 휠라의 성공을 컨버스의 성공사례에 비유하기도 했다. 1960년대 이전 시장을 장악하던 컨버스가 나이키, 아디다스 등의 성장으로 시장 점유율을 잃자, 1990년대 올드 스쿨을 표방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으로 변화를 주며 다시 한번 인기몰이에 성공,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판매되고 있는 점이 휠라의 재기 방법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휠라와 펜디의 콜라보레이션은펜디의 러브콜에 따라 이뤄졌다. ⓒ FENDI
휠라가 츄파춥스와 협업해 탄생시킨 ‘휠라x츄파춥스 콜라보 드리프터’ ⓒ FILA

■ 콜라보레이션 
10대와 셀럽들에게 주효하게 다가가

휠라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국내와 해외 셀럽들이 휠라 브랜드를 착용하고 등장하거나 SNS를 통해 휠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모습들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에는 휠라 본고장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세계 4대 패션쇼인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2019년 봄·여름 컬렉션을 선보인 것이다. 이탈리아로의 ‘금의환향’이었다. 스포츠 브랜드로서는 이례적인 단독 런웨이였고,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에서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콜라보레이션 전략도 주효했다. 러시아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와의 협업은 세계 패션인들 사이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리한나, 비욘세, 켄달 제너, 에이셉 라키 등 톱스타들이 휠라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 영향력은 SNS를 타고 번져 나갔다. 뉴욕 디자이너 바하 이스트, 제프 스테이플과도 콜라보를 했고, 펩시와 빙그레 메로나, 츄파춥스 등 식품업계와의 협업 전략도 펼쳤다. 또 메이크업 브랜드 베네피트(Benefit), 인기 게임 ‘플레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 등까지 업계를 넘나드는 협업을 했다. 패션에 민감한 10~20대에게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브랜드와의 콜라보를 통해 익숙함과 동시에 신선함을 선사한 것이다. 명품 브랜드 펜디의 러브콜을 받아 협업을 한 것도 주목된다. 본고장이 이탈리아라는 점과 브랜드 앞글자가 ‘F’로 시작한다는 공통점에 착안해 콜라보한 이 제품들은 휠라가 지목한 새로운 소비자, 2030세대에게도 어필이 됐다. 

휠라코리아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의 근간이 되는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는 것에 집중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품질 좋고 트렌디한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대에 지속 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휠라 전성시대 이끈 2세 경영…
윤근창 사장의 ‘젊은 승부수’ 

패션업계는 트렌드에 민감하다. 또 젊은 소비층을 사로잡아야 소비가 활성화된다. 2007년 휠라 인수 이후 윤윤수 휠라 회장(74)이 가장 고민했던 과제 중 하나가 브랜드 타깃의 고령화였다. 윤 회장과 윤근창 사장(44)으로 이어지는 적극적인 오너 경영은 휠라가 재도약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휠라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도록, ‘아저씨 브랜드’에서 1020 브랜드로의 리뉴얼을 실질적으로 이끈 장본인이 윤 회장의 장남 윤 사장이다. 

2018년 3월 단독 대표이사로 취임한 윤근창 사장은 휠라코리아가 글로벌 본사를 인수한 2007년 자회사인 휠라 USA에 입사해 사업개발 및 라이선싱과 소싱 업무 등을 담당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브랜드 운영 및 경영에 참여하던 중 2015년 7월 휠라코리아에 공식 입사했다. 전략기획본부장을 시작으로 풋웨어 본부를 총괄했고, 지난 2017년 7월부터 경영관리본부장 및 CFO를 겸임해 왔다. 

2016년 휠라 창립 이래 처음으로 단행한 브랜드 리뉴얼의 실질적 전략수립과 실행을 맡았다. 그가 주목한 것은 역시 ‘신발’이었다. 스포츠 브랜드의 핵심인 신발 부문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혁신 모델’을 적용했다. 휠라의 부활을 가져온 신발 ‘코트디럭스’도 그의 주도로 탄생했다. 특히 합리적 가격 정책, 홀세일 유통채널 진출, 헤리티지 강화 제품 전략 등 브랜드 변화를 주도하며 휠라코리아 국내 부문 턴어라운드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