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스캔들’ 다룬 영화 《블랙머니》의 5대 팩트체크
  •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 소장(전 한국은행 금융안정분석국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8 10:00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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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매각은 아직도 ‘뜨거운 감자’

영화 《블랙머니》는 미국의 사모펀드 론스타가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2012년 큰 이익을 보고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한 사건을 영화화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및 매각과 관련해 많은 의혹이 제기됐고,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 등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밝혀진 사실이나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 영화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매각하려던 2011년 말과 2012년 초의 시간을 대상으로 여러 사건을 농축해 집어넣었다. 잊혀가는 금융 사건을 흥미 있는 영화로 만들어 많은 사람이 이 사건을 알 수 있게 됐다.

영화 《블랙머니》의 한 장면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블랙머니》의 한 장면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 인수한 것은 확실”

론스타 건은 2002년 김대중 정부 말에 시작돼 노무현 정부 때 저질러지고 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 일단락됐지만,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S) 등 지금까지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사건의 핵심은 부실하지 않은 외환은행을 파는 사람(외환은행과 감독 당국)이 앞으로 부실해질 것이라고 우기고 법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은행 인수 자격이 없는 사모펀드에 매각한 것이다. 매각에 도움을 준 사람들은 출세하고, 아까운 외환은행은 없어지고, 한국의 은행산업은 더 나빠지고, 관련 실무자들이 죽고, 의혹만 남은 사건이다.

영화는 사건의 큰 줄기를 지키면서 볼 만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복잡한 금융 사건인데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대중성을 위해서겠지만 너무 단순화했다. 그리고 검찰 수사 과정과 검찰 내 갈등에 시간을 많이 할애해 금융을 주제로 한 검찰 영화가 돼 버린 것 같다. 이것이 흥행성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영화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 중요한 몇 가지를 팩트체크 했다.

“자산 가치 70조원짜리를 1조7000억원에 판다”는 말이 영화에서 몇 번 나온다. 이는 사실과는 다소 다른 면이 있다. 2003년 9월 당시 외환은행의 총자산은 65조원쯤 됐고, 론스타는 1조3834억원에 샀다. 통상 매매가격은 총자산이 아니고 부채가 공제된 순자산 가치에 영업전망과 경영권 등이 반영돼 결정된다. 순자산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부채 규모뿐 아니라 자산의 질이 어떤지, 또 숨겨놓은 부채가 더 있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회계법인의 자세한 실사가 꼭 필요한데 외환은행은 실사 과정 없이 졸속 매각됐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 후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외환은행의 수익이 좋아져 많은 배당을 받고, 비싼 값에 되팔 수 있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얼마나 싸게 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엄청난 헐값에 인수한 것은 확실하다.

둘째,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을 6.16%로 조작했다는 말은 현실과 조금 거리가 있다. 2003년 7월 외환은행이 금융감독원에 2003년 말 기준 BIS 비율이 6.16%로 추정된다는 팩스를 보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BIS 비율은 숫자를 단순 합산하는 통계가 아니다. 판단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는 건전성 지표다. 여기에다 과거가 아닌 미래의 추정치는 정답이 없는 숫자다. 즉 BIS 비율 6.16%는 의도를 갖고 만들어졌겠지만 조작을 입증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2006년 당시 검찰 수사나 감사원 감사도 이 숫자의 조작을 밝히는 데 너무 매달려 일을 그르친 면이 있다.

셋째, 영화에서 팩스를 보낸 대한은행 여직원과 이를 받은 금감원 직원이 내연 관계로 여직원은 자살하고, 금감원 직원은 교통사고로 죽는다. 이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팩스를 보냈다는 외환은행 실무자와 금감원 실무자가 각각 2005년과 2007년 죽은 것은 사실이다. 두 명 모두 남자이고, 각자 다른 병으로 죽어 표면적으로는 론스타 사건과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론스타와 외환은행에 얽힌 의혹을 밝힐 수 있는 핵심 실무자가,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두 명 모두 죽은 것은 우연이라고 보기엔 좀 이상하다.

넷째, 영화에서 전직 총리를 정점으로 하는 금융관료들과 로펌이 배후 조직인 것으로 나온다. 그렇지만 금융관료와 로펌만이 이 사건을 주도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투자금액이 너무 크고, 2002년부터 지금까지 여러 정부를 관통할 만큼 이들의 힘이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당연히 론스타는 미국 텍사스에 본부를 두고 있기 때문에 미국 부자들의 돈이 투자된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 한국에서 금융관료 이외에 다른 세력이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고, 이들을 통합 기획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어쩌면 한국 경제와 정치의 탐욕스러운 기득권자들이 참여해 강력한 비밀 조직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들의 실체를 상상 속에서나마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것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이다.

다섯째, 영화에서는 검찰 수사 중 검찰총장이 배후 세력에 의해 경질되고, 검찰 수사팀은 배후 세력을 체포하는 등 거의 밝혀진 사건을 덮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 2006년 검찰은 충분한 인력을 투입하고, 특별한 외압 없이 수사했는데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그리고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나 매각에 직접 관련돼 처벌받은 사람도 없다. 당시 법원의 영장기각 등 수사에 방해되는 일이 있었지만 이것 때문에 수사를 제대로 못 했다는 것은 핑계 같다. 왜 정답이 없는 BIS 비율 조작 여부에 수사력을 쏟았는지, 뒤에 뉴스타파 등에서 보도되고 영화에서도 제기된 론스타의 한국인 투자자 등 배후 세력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는지 등이 궁금하다.

 

“금융관료·로펌보다 큰 배후 있었을 것”

론스타와 외환은행에 얽힌 의혹을 장기간 지켜보면 흥미 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론스타 쪽에 섰던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출세를 한다는 것이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참여정부 때인 2003년에 이뤄지고, 2006년 대대적 검찰 수사가 있었지만 관련자들은 승진하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지나 문재인 정부까지 론스타 관련자들이 ‘꽃길’을 걷는 것은 실질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정부라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다수 국민의 경제적 삶은 개선되지 못하고 서울 집값은 계속 오르기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정치인은 말이나 구호가 아닌 그들의 실제 행동과 실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말이 절실히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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