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의 부정·부실 논문은 왜 매년 양산되나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8 16:00
  • 호수 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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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자·수요자의 암묵적 거래…“학위를 파니 사는 것”

#1. 직장에 다니며 서울의 한 대학에서 박사 수료를 마친 A씨는 최근 업무차 다른 대학의 교수를 만났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한국○○학회를 이끌고 있는 학회장이었다. 그는 A씨가 박사 논문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하자 바로 “통계는 지도교수한테 부탁해 풀타임 학생에게 맡겨라. 300만~500만원이면 된다. 그게 A씨도 좋고, 지도교수도 좋고, 풀타임 학생도 좋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A씨는 자세히 물어봤다. 학회장은 “A씨는 직장인이라 바쁠 뿐만 아니라 통계도 잘 모르니까 괜히 애먹지 말고 맡겨라”면서 “지도교수 입장에서도 그게 안심이 된다. 풀타임 대학원생에게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두둑한 용돈도 챙겨줄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고 했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논문 쓰기 위한 방법론 배운 적 없다”

#2. 국내 손꼽히는 명문대의 한 특수대학원에 재학 중인 B씨는 학위 논문을 준비하며 황당한 일을 수차례 겪었다. 연구 계획서를 발표하는 프로포절(proposal)을 할 때가 되자 학과에 논문을 누구에게 대필을 맡길 것인지, 통계 분석은 어느 업체나 지인에게 맡길 것인지, 금액은 얼마가 드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쫙 공유됐다. “같은 학교 같은 학과의 풀타임 대학원생에게 맡기는 게 제일 안전하고 좋다”는 말에 경쟁마저 벌어졌다. 논문 자격시험인 종합시험을 보기 직전에는 대학원장을 ‘모시고’ 해외에 다녀오는 일정이 짜였다. 한 학기 등록금만큼의 금액을 요구받았는데, 대학원장은 돈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교수에게 논문 지도를 부탁하고자 조교에게 연락했더니 학교 앞 가장 비싼 식당을 예약해 줬다. 논문 심사 당일에 B씨는 교수들이 자신의 논문을 제대로 읽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논문에 없는 이야기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상아탑이 무너지고 있다. 무엇보다 대학원의 연구윤리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모습이다. ‘김영란법’ 이후 거마비 등을 요구하는 관행은 사라지고 있지만 논문 심사 과정 그 자체의 부실함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문제는 일부 대학, 일부 학과만의 일이 아니다. 특히 학생들이 주로 모이는 일반대학원이 아닌 직장인들이 많이 다니는 특수대학원의 문제는 ‘복마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심각한 수준이었다. 

사실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대학원을 다녀봤다면 한두 번쯤 직간접적으로 들어봤을 만한 이야기다. 시사저널은 현상 그 자체보다는 이런 구조가 반복되는 메커니즘을 파악하고자 했다. 상아탑의 무너지고 있는 연구윤리와 논문 심사 과정의 부실함은 놀랄 만한 일이 못 된다. 오히려 중요한 질문은 ‘이런 모래성이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가 된다. 왜 같은 잘못이 매년 세상에 들춰져도 연구 과정의 부실함과 비윤리적 행동들은 근절되지 않고 반복되는 걸까. 왜 대학은 이를 근절하지 못할까. 

시사저널은 그 원인의 뿌리를 찾아보기 위해 대학원생들의 학위논문을 심사하는 현직 교수 5명과 최근 3년 안에 논문 심사를 받은 석·박사 5명을 인터뷰했다. 10명 모두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아 이름은 익명 처리했다. 인터뷰 결과는 이렇게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었다. “공급자와 수요자의 ‘니즈’가 서로 일치했다.”

학생들이 논문을 쓰면서 대필이나 통계를 타인·업체 등에 돈을 주면서까지 맡기려는 유혹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인터뷰에 따르면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모르고’ ‘그게 더 싸고’ ‘그래도 사실상 되기 때문’이다. 고려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 학생은 “석사 4학기 동안 학과 커리큘럼에 충실히 임했지만 막상 논문 쓸 때가 되니 막막했다”며 “질적·양적 방법론 모두 배우지 못해 방학을 이용해 비싼 돈을 내고 다른 학교에서 진행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박사과정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며 “교수들은 공급자 중심적으로 가르치고 싶은 과목만 가르친다”고 토로했다. 중앙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다른 학생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교수들은 학기 내내 사회과학의 정합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이를 어떻게 구현해 내는지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논문 심사, 인센티브 없이 리스크 큰 가욋일”

그렇게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결론이 있다. 석사든 박사든 학위 직전까지 왔다면 이미 투입한 시간과 비용 등이 적지 않다. 포기하기에는 매몰비용이 너무 크다. 이렇게 되면 대필을 맡기거나 통계 분석을 업체에 맡기는 비용은 치러야 할 값이 된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낑낑거리느니 이게 더 싸다고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한 학생은 “논문 심사 과정에서 받는 압박감을 생각하면 그 당시에는 영혼까지도 팔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대의 한 특수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다른 학생은 “솔직히 동기 중 몇 명이나 논문을 100% 자기 힘으로 썼는지 모르겠다”며 “통계 분석 의뢰를 어디서, 얼마에 하는지 정보를 암암리에 공유했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인터뷰에 응한 상당수는 지금의 논문 심사 시스템으로는 이런 부정한 방법을 학교와 교수들이 걸러낼 방법이 없다고 했다. 한 학생은 “그래도 되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라면서 “학교도 모르지 않는다고 본다”고 했다. 

교수들은 상대적으로 말을 아꼈다. 인터뷰에 응한 교수들은 매우 신중했다. 하지만 나온 말들은 적었지만 대부분 대학의 구조적 문제를 꼬집고 있었다. 교수들은 부실 논문과 그 과정에서의 비윤리성의 심각성은 대부분 인지하고 있었다. 

교수들이 꼽은 구조적 문제의 원인 중 하나는 사실상의 등록금 동결이다. 등록금 동결과 논문 심사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고려대의 한 교수는 “몇 년간 사실상 학부 등록금은 동결되다시피 했다. 그 풍선효과로 대학원 등록금을 상대적으로 많이 올렸고, 논문 쓸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특수대학원 과정 등을 비대하게 운영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면서 “특수대학원은 학업보다 네트워크나 인맥 등을 쌓기 위해 오는 이들이 상당수인데, 이들을 졸업시키지 않으면 신입생을 유치할 수가 없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부실한 논문을 눈감아주는 면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교수들도 비슷한 의견을 많이 내놓았다. 

교수들이 논문 심사를 성실히 할 유인이 떨어진다는 솔직한 토로도 있었다. 한양대의 한 교수는 “개인 논문 실적과 수업은 다 교수 평가에 중요한 요소인데 상대적으로 논문 심사는 그런 인센티브가 적다”면서 “논문 심사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투입돼야 하는데 그럴 유인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소속 대학명도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교수 입장에서 보면 논문 심사는 리스크는 있는데 인센티브는 없는 가욋일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라면서 “학생들의 반발이 있겠지만 논문 심사비를 현실화하는 방안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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