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한국 선박 억류…韓은행 ‘동결자금’ 탓?
  • 서지민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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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2018년 이란 제재 일환으로 ‘이란중앙은행’과 제3국 거래 막아
한국 은행에 이란 원유 수출대금 7조원 동결 상태
1월4일 이란의 한국 민간 선박을 억류에 대응하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에 급파한 최영함(4400t)이 5일 새벽 인근 해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2019년 최영함의 임무수행 모습 ⓒ연합뉴스
1월4일 이란의 한국 민간 선박을 억류에 대응하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에 급파한 최영함(4400t)이 5일 새벽 인근 해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2019년 최영함의 임무수행 모습 ⓒ연합뉴스

이란의 한국 민간 선박 억류는 사실상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미국 우방국들을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한국 은행 내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발 차원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란혁명수비대는 4일 새벽 걸프 해역의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회사 소유의 민간 선박을 억류했다. 해당 선박에는 선장과 1~3등 항해사, 기관장 등 5명의 한국 선원을 포함해 미얀마인 11명, 인도네시아인 2명, 베트남인 2명 등 모두 20명이 승선했다. 현재 국방부는 5일 새벽 호르무즈 해협에 청해부대 최영함을 급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측은 한국 선박 압류의 이유를 ‘해양 오염’이라고 밝혔다. 이란혁명수비대는 선박을 압류한 직후 “이 조치는 해당 선박이 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한 데 따른 것”이라며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 이유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한국 선박 압류가 사실 한국 은행 2곳에 동결돼 있는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 때문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약 70억 달러(7조6000억원) 규모로 알려진 이 자금은 이란중앙은행 명의로 한국 내 은행에 개설된 원화 계좌에 예치돼 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이란, 한국 은행 예치금 못 빼

현재 이란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인해 해당 자금을 인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동참하면서, 한국 내 은행이 이 계좌를 통한 양국 기업의 상품 거래 결제를 거부하며 사실상 계좌가 동결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2018년 이란핵협정(JCPOA)를 탈퇴하면서 대이란 제재를 복원했는데, 이때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고 이란중앙은행과 거래를 하는 제3국에 대해서도 제재하겠다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선언한 바 있다.

현재 이란은 미국의 제재와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외화난이 심각한 상태다. 이에 한국 정부에 꾸준히 계좌 예치 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해 왔다. 한국 정부 역시 미국 정부에 동결자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진전을 보지 못했다.

김혁 한·이란협의 사무국장은 “이번 한국 선박 억류는 미국과 직접적 대화를 거부하는 이란이 한국 내 동결 자금을 사용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여 달라’는 압박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란의 경제난은 심각한 상황이고, 70억 달러는 매우 긴요한 자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친미 동맹국에 ‘경고 신호’ 효과도 노렸나 

이란의 한국 선박 압류가 미국과 대이란 제재에 동참하는 친미 동맹국에 경고 신호를 보내는 효과를 노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의 부당함을 강조하며, 친미 동맹국에 미국의 이란 제재에 동참하지 말라고 압박하는 것이다. 

이란혁명수비대는 2019년에도 미국이 걸프 해역에 항공모함 전단을 배치하자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제3국의 민간 선박을 해양오염, 불법 조업 등의 이유로 잇따라 나포했다.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에서 제3국의 선박을 억류함으로써 ‘제해권’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공급량의 30%가 지나가는 통로로 이란·쿠웨이트 등의 원유 수급을 위해서는 꼭 지나가야 하는 통로다. 이란으로서는 호르무즈 해협이 가장 큰 무기가 되는 셈이다. 

한편 정부는 한국 선박 압류 원인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외교부 청사에서 이란의 한국 은행 내 동결자금이 원인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지금 그런 것을 섣불리 얘기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일단 사실관계를 먼저 파악하고 우리 선원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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