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사태가 내년 대선까지 관통할 세 가지 이유
  • 김종일·구민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3 07:30
  • 호수 16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칙과 특권’ 불공정에 분노…공공(公共) 신뢰 추락
누적된 ‘불평등·양극화’ 구조적 불공정 심각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LH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이 ‘사태’로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 LH 사태가 지금 우리 시대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과연 어느 지점일까. 모두가 ‘공정’이라는 답안을 가리킨다. 그런데 LH 사태는 사실 부정부패와 반칙의 문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지금 ‘공정’을 말하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LH 사태에 분노하고 좌절하는 민심의 근저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 걸까. 

LH 사태는 리트머스시험지가 되고 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어느 지점에 가장 분노하고 좌절하는지를 가장 날카롭게 포착할 수 있게 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를 시험대에 올린다. LH 사태는 한국 사회에, 우리에게 묻는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살아왔던 방식을 바꿀 수 있느냐고. 혈연과 학연, 지연 등으로 얽히고설켜 밀어주고 끌어주던 방식을 포기할 수 있느냐고. 내일로 전진할 것인지, 과거로 회귀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LH 사태가 4월 재보선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틀렸다. LH 사태는 다음 대선은 물론 그 이후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란 게 중론이다. LH 사태가 던지는 질문에 지금의 시대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매듭짓고 넘어가느냐에 따라 LH 사태는 그저 그런 부패 사건으로 잊힐 수도 있고, 세상을 바꾼 역사적 분기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 당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이른바 ‘조국 사태’ 당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민심의 역린’ 보여준 LH 사태

국민들은 LH 사태에 왜 이토록 분노하는 걸까. 은행권 취업 비리가 터졌을 때도 이 정도 수준의 국민적 공분은 표출되지 않았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렇게 진단했다.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급등한 집값 문제에 절망하는 가운데 LH라는 공공기관에서 부패와 반칙이 벌어졌다는 데 분노하는 것이라고.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더 이상 내 집 마련이 어렵다는 박탈감이 최고조인 상황에서 짐작만 하던 부패와 반칙이 현실에서 증명된 것이 바로 LH 사태”라고 했다. 이어 “국민들은 최소한 공직은 다르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왜 ‘공정’에 대한 논란이 계속 공공기관에서 불거졌겠나. 국민 입장에선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져 내린 셈”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대선에서 부동산 안정 문제는 승패를 가릴 핵심 이슈가 될 게 틀림없다. 집값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지속 가능한 안정적 주거정책은 무엇인지 등이 주요 정책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당장 이번 4월 선거에서도 부동산 공급 대책은 여야 후보 모두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분야다. 물론 LH 사태와 같은 문제의 근본적 재발 방지책도 다음 대선에서 주목받게 될 전망이다. 반칙과 부패라는 고리를 끊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LH 사태에서 진정 주목해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왜 부패 문제인 LH 사태를 국민들은 공정의 문제로 인식할까. 이 질문이 중요하다. LH 사태라는 표출된 빙산의 일각 아래에 있는 거대한 민심의 빙산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냐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는 지금 우리가 가장 목말라 하는 그 무엇, 즉 바로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다음 대선이 무엇으로 채워질지를 미리 엿볼 수 있다. 왜 국민들은 지금 ‘공정’을 화두로 끌어올렸을까. 

몇 가지 가설이 있다. 먼저 우리 경제 영역과 사회 분야의 ‘미스매치(불일치)’ 문제다. 이원재 LAB2050 대표는 “젊은 세대일수록 우리 스스로를 선진국으로 여긴다. 문제는 경제에선 그런데 사회문화적으로는 영 아니라는 점이다. 평등·연대·신뢰 등으로 대변되는 사회문화의 정체 현상은 젊은 세대가 보기에 심각하다. 공공부문의 비윤리성이 대표적이다. 이 간극을 청년들은 ‘공정’이란 두 글자로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의 진단은 사실 섬뜩하다. 더 많은 ‘공정의 역습’이 예고됐다는 분석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에겐 문제가 아니었지만 젊은 세대에겐 문제일 수 있는 이슈가 우리 사회엔 과연 얼마나 될까. 

 

불평등과 양극화가 키운 공정의 역습

임계점에 도달한 불평등·양극화 문제가 공정이 화두로 떠오른 배경이란 분석도 많았다. 김석호 서울대 교수의 설명이다. “외환위기 이후 이른바 ‘발전 열차’에 올라탄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으로 우리 사회가 나뉘었다. 즉 2000년 이후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가 쌓여왔다. 그런데 이를 해소할 제도 도입과 발전은 더뎠다. 이제는 그 격차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인식이 만연해졌다. 그런 와중에 LH 사태가 터졌다. LH 사태는 분명 부패 문제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선 이는 부패 문제를 뛰어넘는 공정의 문제다.”

마지막 기대와 희망이 꺾인 점이 “불공정하다”는 목소리를 터져나오게 했다는 설명도 있다. 강정한 연세대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매우 심하다. 사람들에게 마지막 남은 사회적 가치가 공정이다. 평등처럼 다른 가치가 삶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다면 공정이란 가치가 덜 부각될 텐데 그렇지도 않으니 마지막 선택지로 ‘공정’을 말하고 있다”고 했다. 강 교수는 “최근 모든 사안을 다 법정으로 가져가는 사법 만능주의 현상도 이런 맥락”이라면서 “법이 공정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도 강하지 않지만 이외에는 기댈 곳이 없어 사법으로의 쏠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 역시 “공정에 민감해지는 이유는 사실 희망이 꺾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박 대표는 “세계화와 기술혁신이 낳은 극단적 양극화와 반복되는 금융위기로 상황이 절망적이다 보니 흔치 않은 기회를 잡으려는 반칙과 특권이 작동한다”면서 “그 반칙과 특권을 바로잡는 게 바로 공정이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모든 정권이 공정을 강조했는데, 정작 체감적으로 개선된 것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공정의 문제가 지금 시대정신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LH 사태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되고 있다. 과연 LH 사태에서 드러난 부정부패와 반칙이 LH에만 존재할까. 슬픈 자화상인 셈이다. 이는 동시에 LH 사태가 향후 대선과 그 너머까지를 관통할 핵심 이유가 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잊지 말아야 할 점도 있다. LH 사태는 우리 사회가 가진 최소한의 자정 능력을 증명했다. 먼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내부 고발이 나왔다. 시민단체는 정무적 판단 없이 이 제보를 있는 그대로 세상에 알렸다(언론이 아니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국민은 주권자로서의 분노를 표출했다. 더 이상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리트머스시험지가 된 LH 사태. 문재인 정부만 시험대에 오른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시험대에 올라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