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수사 의혹’의 예고된 결말…박범계 노림수는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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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절차적 정의 의심받게 돼 유감” 작심 비판
강도높은 감찰과 검찰개혁 위한 대대적 손질 예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월18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 ⓒ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한명숙 전 총리 재판의 모해위증 의혹'에 대한 검찰의 최종 결정을 비판하며 강도높은 감찰을 예고했다. 박 장관은 수사지휘권 발동을 불러 온 검찰의 낡은 수사 관행과 절차적 공정성이 이번 의혹을 두고 또 한번 드러났다고 직격했다. 

검찰에 '재심의' 공을 던지며 승부수를 띄웠던 박 장관의 비토에는 일련의 사태를 발판으로 검찰개혁 당위성을 강화하고, 직접 수사권 폐지·조정에 힘을 싣겠다는 전략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여권은 윤석열 전 총장이 물러난 후 공석인 검찰 수장 임명에도 이번 결정을 투영, 개혁 성향 인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더욱 키워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박범계, 검찰 작심 비판…"절차적 정의 의심받게 돼 유감"

박 장관은 22일 한 전 총리 재판의 모해위증 의혹을 최종 무혐의 처분키로 한 대검찰청을 향해 "검찰 고위직 회의에서 절차적 정의를 기하라는 수사지휘권 행사 취지가 제대로 반영된 것인지 의문"이라며 "절차적 정의가 문제됐던 의혹사건에 대한 수사지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절차적 정의가 의심받게 돼 크게 유감"이라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박 장관은 "이번 회의는 한명숙 전 총리의 유·무죄가 아니라 재소자의 위증 여부를 심의하는 것"이라면서 "사건 담당 검사의 모해위증 인지보고와 기소 의견에 대해 무혐의 취지로 결정한 것이 타당한지를 판단하는 것이지 최초 재소자들을 수사했던 검사의 징계절차를 다루는 회의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당시 한 전 총리 사건에서 재소자에 증언연습을 시킨 의혹을 받는 엄희준 부장검사가 사전 협의없이 대검 부장·고검장 회의에 참석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위증교사 의혹을 받는 검사의 출석은 장관의 수사지휘에는 포함돼 있지 않은 내용"이라며 직접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박 장관은 "회의 당일 보고서·문답에 의존해 내린 결론이라면, 조직 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검사에 대한 편견,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임에도 재소자라는 이유만으로 믿을 수 없다는 선입견, 제 식구 감싸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검찰을 압박했다.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왼쪽)과 류혁 법무부 감찰관이 3월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의정관에서 한명숙 모해위증 불기소 관련 법무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왼쪽)과 류혁 법무부 감찰관이 3월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의정관에서 한명숙 모해위증 불기소 관련 법무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변없던 檢 결정…'감찰'로 반격나선 朴   

박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서 검찰의 이같은 결정을 어느정도 예견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휘권 발동과 감찰 카드를 동시에 꺼내 들었던 것도 최종 불기소 결정을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된다. 특히 박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검찰과 대립각을 세우며 조직 특성을 파악하고 있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시절 검찰개혁을 둘러싼 극심한 진통을 확인했던 터라 이를 예상하지 못한 채 무리수를 뒀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만일 재논의를 통해 검찰이 재소자를 전격 기소하기로 결정하면, 그동안 한 전 총리 관련 수사에 대한 정당성은 물론 조직 전체가 뒤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 반전있는 결과를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란 뜻이다. 검찰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움직임으로 정권과 대립 구도를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박 장관이 앞서 검찰의 재심의 결정이 나오면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한 점, 윤 전 총장 때처럼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직무배제 조치하지 않은 점, 대검 부장단 회의에 고검장까지 참여토록 하자는 검찰 측 제안을 받아들인 점 등 최대한 조직을 자극하지 않은 점도 '자정 능력'을 시험해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결국 검찰이 동일한 결론을 내고, 그 과정에서도 절차적 공정성에 흠집을 내자 박 장관으로서는 다시 칼을 빼들 명분을 갖게 됐다. 공소시효 만료로 형사처벌 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막혔지만, 감찰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와 불법·부당한 수사관행을 모두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직접 수사' 폐해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려 검찰 반발을 물리칠 명분을 강화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낙점할 새 검찰총장 임명에도 개혁 성향을 비중있게 반영하겠다는 터를 닦은 셈이다. 

박 장관은 예고했던 대로 ▲검찰 측 증인의 과도한 반복 소환 ▲사건 관계인 가족과의 부적절한 접촉 ▲재소자에게 각종 편의 제공 후 정보원으로 활용 ▲기록 없는 조사 등 예고한 대로 한 전 총리 사건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문제에 대한 합동감찰로 진상 규명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또 대검 부장·고검장단 회의 내용의 유출 경위에 대해서도 추가 감찰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이번 대검 부장회의가 참석자들의 보안 서약을 받았음에도 종료 직후 언론에 결과가 노출된 것과 관련해 "검찰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을 누군가 어떤 의도를 갖고 외부로 유출했다면 이는 검찰이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 형사사법작용을 왜곡시키는 심각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더불어 중요사건의 수사착수와 사건배당, 수사팀 구성에 있어 적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합리적 절차와 기준을 마련하고, 시민통제 방안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검찰 직접 수사와 관련한 각종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실효적 제도 개선 방안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법·검 갈등' 2라운드에 불씨를 지폈다. 

대검찰청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재판에서의 모해위증 의혹이 제기된 재소자를 무혐의 처분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힌 2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연합뉴스
대검찰청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재판에서의 모해위증 의혹이 제기된 재소자를 무혐의 처분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힌 2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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