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나라 넘겨준 건 1300만원 나라빚 때문 [쓴소리 곧은 소리]
  • 안창남 강남대학교 교수(세무학과)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1.05.31 12:00
  • 호수 16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선 예비주자들의 “돈 퍼주자” 경쟁 위험 수준
프랑스는 재정 수반 법안 못 만들게 헌법에 규정

선거철이 다가오나 보다.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돈을 퍼주겠다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해댄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1000만원 청년 해외여행비 지원,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전역자 3000만원 사회출발금 지급, 정세균 전 총리의 1억원 신생아 적립통장 등등(물론 야당 후보도 이와 유사한 공약을 할 개연성이 높다). 자신들 재산이나 저금통장에서 해당 금액을 지급한다면야 누가 뭐랄 것인가. 선거공약이라는 점을 내세워 국민이 피땀으로 납부한 세금에서 막무가내로 지원할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 관계자들이 4월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국가채무 증가와 관련해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스1
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 관계자들이 4월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국가채무 증가와 관련해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스1

‘증세 없이 복지 수준 높이겠다’는 건 사기꾼과 같아

사실 국가재정 정책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기본적으로 수입(국민이 납부한 세금)의 범위 내에서 지출하면 된다(pay go 원칙). 일반 가정도 대부분 그렇게 한다. 국가라고 해서 다를 이유가 없다. 세금으로 300조원을 걷으면 그 범위 내에서 지출하면 된다. 국민의 복지 수준을 더 높이려면 세금을 더 걷으면 되는 일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복지 수준은 높이되 세금 부담을 늘리지 않겠다고 말하는 정치인은 사기꾼과 다를 바 없다.

경계할 점은 현금과 어음의 구별이다. 세금을 줄이면 기업이 살아나서 추후 기업이 내는 세금이 증가해 결국 감세분보다 나중에 세금이 더 들어온다는 주장(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이나 세금을 풀면 국민이 소비를 하므로 기업이 살아나서 결국 재정지출보다 기업이 추가로 납부하는 세금이 더 많을 것이라는 주장(분수효과·Fountain Effect)이 있다.

그러나 세금을 푸는 것은 현금이 나가는 것이고, 추후 기업들이 세금을 더 낸다는 것은 약속어음에 불과하며 검증되지도 않은 학설에 불과하다. 세금이야말로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건강해지고 강건해진다.

 

국가재정 부실이 가져온 참혹한 역사

우리나라는 국가재정 부실로 나라가 크게 흔들렸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일본이 한반도 경제를 예속시키기 위해 물정 모르고 돈이 부족한 대한제국을 꼬드겨 1300만원의 차관을 제공했었다. 뒤늦게 속셈을 알아차린 서상돈 등 애국 선각자들이 1907년 2월 대구에서 이것을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함은 필연적 사실이니…2천만 인민들이 3개월 동안 흡연을 금지하고 그 대금으로 한 사람에게 매달 20전씩 걷는다면 1300만원을 모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대한매일신보 1907년 2월21일). 그러나 사악한 일본제국이 국채보상운동을 와해시켰고 몇 년 뒤 대한제국은 망했다.

그로부터 90년이 지난 1997년 김영삼 정부 시절, 일부 대기업의 무분별한 외국자본 차입이 횡행했다. 아시아 외환시장의 위험을 감지한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이 발생하자 이를 막을 국가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그 결과 기업의 파산과 대량 실직이 이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급전을 구해 와야 하는 IMF 사태가 야기됐고, 민초들의 금 모으기 운동 등으로 이를 가까스로 극복했다.

재정 부실로 나라가 크게 흔들린 뼈아픈 역사가 있음에도 정치권이 이를 망각하고 있는 점은 개탄스럽다. 이명박 정부 시절 기업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감세해 재정수입을 줄이면서도 22조원이 훨씬 넘는 4대 강 개발사업을 강행했다. 이는 국가재정 건전성 유지라는 입장에서 보면 잘못된 정책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는 ‘노인에게 월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한 복지정책의 재원을 비과세나 감면 축소를 통해 충당하겠다고 의지를 밝히긴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비과세나 감면 금액보다 복지 지출이 훨씬 더 크게 늘어나 이전 정부보다 국가채무비율이 높아졌다.

 

문재인 정부 국가채무비율 44% 넘어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2016년 국가채무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GDP 대비 40% 선을 넘었다고 박근혜 정부의 재정정책을 비판했다. 그러던 그가 2019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그 40%의 근거가 무엇이냐며 재정지출에 소극적이었던 정부 경제팀을 몰아세웠다. 코로나19 사태 극복이라는 당위성을 감안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별 국가채무비율을 비교하면 노무현 정부 28.0%, 이명박 정부 32.6%, 박근혜 정부 36.0%이고 문재인 정부는 현재 44%를 넘어서고 있는 중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현재 국가가 갚아야 할 직접 부채는 728조원 정도 된다(2019회계연도 국가 결산보고서). 국민 1인당 1409만원씩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3년 만기 국고채 이자율을 1.5%라고 할 경우, 국가채무에 대한 지급이자액만 2020년 긴급재난지원금 14조원의 80%에 육박하는 11조원이나 된다. 너무나 아까운 금액이다.

국가재정에 대한 정치인들의 참을 수 없이 경박한 발언과 행동을 제어하기 위한 규범은 없는가? 있긴 하다. 국가재정법이 그것이다. 이 법은 국가의 예산 및 국가채무 등 재정에 관한 사항을 정해 건전재정의 기틀을 확립함을 목적(제1조)으로, 정부는 예산을 편성하거나 집행할 때 재정 건전성의 확보 및 국민 부담의 최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고 있다(제16조).

그러나 속빈 강정과도 같다. 최선을 다한다는 선언에 그칠 뿐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선거에서 집단지성으로 이를 심판해야 하는데 이것은 국민의 의식 수준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프랑스는 정치인들이 발의하는 입법안 중 재정을 수반하는 것은 아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도록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제40조).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감세나 선심성 공약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도 이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우선 국가재정법을 손질해 세입 범위 내에서 세출이 이뤄지도록 강제해야 한다. 재정준칙 수준이 아니라 법률로 해야 한다. 현재 여당 의석수로도 이를 개정하는 것은 충분하다. 그래야 나라를 걱정하는 진정성이 읽힐 것이다. 역사를 모르면 미래를 꿈꿀 수 없으며 잘못된 과거를 모르면 미래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명언은 오늘에도 적용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