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민주당에 승자의 저주, 누가 불러들였나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1.06.07 08:00
  • 호수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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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를 9개월여 앞둔 시점. 민주당은 승자의 저주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반면 국민의힘은 쓰레기 더미에서 라벤더꽃이 피어나고 있다고 할까.

2020년 4월까지 전국 선거에서 네 차례 연속 승리한 민주당의 힘의 원천은 수십만 명 권리당원이었다. 이 가운데 2000명에서 2만 명 전후로 추산되는 이른바 ‘대깨문’ 혹은 ‘강성 문파’라고 불리는 세력이 승자의 저주를 불러왔다. 강성 문파들은 댓글 폭탄 등을 무기로 당의 정신을 잡아끌었다. 문제는 이들의 영혼이 병들었다는 점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월2일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민주당 국민소통·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송 대표는 이날 '조국 사태'와 관련해 "국민과 청년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 연합뉴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월2일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민주당 국민소통·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송 대표는 이날 '조국 사태'와 관련해 "국민과 청년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 연합뉴스

조국씨가 대표적으로 병든 영혼 아닐까

여기서 병든 영혼이란 세상을 온통 내 편과 네 편으로 주관적으로 편 가르는 병을 말한다. 내 편에 유리하면 선이요, 네 편에 유리하면 악이라고 우긴다. 종국에 인간의 보편적 양심이나 그것의 표현인 법치 시스템을 부인하고야 마는 정신 구조다. 병든 영혼이 지배하는 사회는 주관성과 주관성의 충돌만 있을 뿐 객관적인 기준에 입각한 조정과 합의가 없기에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조국의 시간》이라는 책을 써서 자기는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고 오히려 자기를 정죄한 검찰과 재판관이 악이라고 주장한 조국씨가 대표적으로 병든 영혼 아닐까.

민주당 정권은 선거에서 승리를 거듭할수록 ‘조국’류의 요설과 허언, 궤변과 내로남불이 기승을 부렸다. 승리의 비용치고 지불이 너무 컸다. 친여 유권자가 지지를 철회하고 청년들의 반란이 일어나 4·7 서울·부산시장 보선에서 민주당이 참혹하게 패배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현재 민주당 대깨문 계열의 자아 도취와 그들 눈치보기에만 급급한 대권주자라는 사람들한테 흥미를 느낄 유권자는 많지 않을 듯하다. 새로운 당 지도부에 대한 기대도 금세 시들해졌다. 민주당의 대선 무대엔 그 나물에 그 밥인 사람들이 등장한다. 같은 각본, 같은 드라마를 반복 상영하는 TV 채널과 비슷하다. 누가 보겠는가. 실제로 4월26일 송영길, 홍영표, 우원식 등 민주당 대표 선출 TV토론회 시청률은 0.8%였다. 반면 5월31일 있었던 이준석, 나경원, 주호영 등 국민의힘 후보토론회의 시청률은 세 배가 넘는 2.8%.

국민의힘이 2020년 4월 총선(당시 미래통합당)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을 때 부활을 상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쓰레기에서 라벤더꽃이 피겠는가. 기적의 첫 단추는 당 외부에서 수혈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끼웠다. 그는 당 정강정책에서 보수를 삭제하고 중도실용으로 외연을 확대했다. 아예 광주 5·18묘지에서 무릎을 꿇었다. 두 번째 기적의 단추도 외부인이 끼워줬다. 4·7 보선 넉 달 전까지만 해도 후보감이 시원찮아 비관적 전망이 팽배했을 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대권 포기, 소권(小權, 서울시장) 선언을 했다. 국민의힘은 안철수를 희생의 불쏘시개 삼아 오세훈 승리라는 극적 반전을 이뤄냈다.

 

정치 기적의 씨앗은 절망과 간절함에서 싹터 

세 번째 기적의 단추는 비주류 청년 이준석이 끼우고 있다. 우리가 지금 채널을 고정해 실시간으로 국민의힘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있는 바와 같다. 거기에 또 다른 외부 인사 윤석열 대선 예비주자가 국민의힘에 들어가기에 앞서 몸풀기를 하고 있다. 그는 아마 네 번째 기적의 단추가 될 것이다. 국민의힘은 폐허로 무너져 빈터가 되어서야 어디선가 라벤더 꽃씨가 뿌려졌다.

다만 정치에서 기적은 기적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고통과 절망의 끝에 이르러 겸손과 빈 마음이 충만해질 때, 간절함과 하나 됨의 토양이 마련된 뒤에야 기적은 싹이 텄다. 지난 시절 민주당 4연승의 기적도 그 시작은 절망과 간절함이었다. 이렇게 보면 정치 흥행은 조작이나 공학의 기술이 아니다. 정치의 굴곡과 변화에서 인생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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