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사람들] 이한주 “기본소득은 가난 증명 안 해도 되는 가장 예의 있는 복지”
  • 김종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10 16:15
  • 호수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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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캠프 정책본부장 이한주 가천대 석좌교수 인터뷰
“기본소득, 송파 세 모녀 같은 비극 막을 복지 방수포”
“1주택자에겐 자산증식 기회를, 투기세력엔 단호한 대처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정책 브레인’인 이한주 가천대 석좌교수는 “기본소득은 복지라는 텐트의 가장 밑자락에 깔리는 ‘방수포’ 역할을 한다. 송파 세 모녀 사건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기본소득은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예의 있는 복지”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캠프의 정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자세한 구상·계획과 함께 우려와 비판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기본소득·기본주택 등 이 후보 대표 공약의 이론적 토대가 된 ‘전환적 공정성장론’을 설계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제1호 정책공약으로 ‘전환적 공정성장’을 내걸었다. 어떤 의미인가.

“지금은 대전환의 시대다. 위기이자 기회다. 우선 코로나19 시대에 우리 삶과 사회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변혁은 엄청난 사회 불안을 가져온다. 아울러 성장의 위기다. 한국 경제는 지난 20년간 잠재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씩 곤두박질쳐 왔다. 저성장의 바닥은 늪과 같아서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 ‘떨어지는 칼날’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걸 손으로 잡아서라도 다시 반전시켜야 한다. 대전환의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공정성장’이란 의미는 무엇인가.

“공정성 확보로 성장의 토대를 재구축하는 전략이다. 분배와 성장 사이에는 오랜 논쟁이 있었는데, 최근엔 공정한 분배가 더 많은 성장을 가져온다는 이론이 주목받고 있다. 분배를 더 잘해야 불평등이 해소돼 성장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불평등의 개선은 총수요 확대도 가져온다.”

이재명 하면 ‘기본소득’이 떠오른다. 단도직입적으로 ‘왜 지금 기본소득인가’라고 묻는다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기본소득은 복지라는 ‘텐트’의 가장 밑자락에 까는 ‘방수포’ 역할을 할 수 있다. 여러 층위로 구성된 복지체계를 텐트라고 해보자. 지금 한국 사회는 사회 보장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다. 저성장 속 불평등이 가속화하면서 어떤 개인들은 정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텐트에서 그냥 이불 깔고 자면 축축해져서 안 된다. 당장은 얇은 방수포지만, 절박한 상황을 막을 수 있다. 기본소득이라는 방수포를 한 겹 깔면 최소한의 삶을 지켜줄 수 있다.”

기본소득이 송파 세 모녀 사건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나머지 한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사람들은 정말 자존심이 강하다. 돈을 줘도 툭 던져주면 싫어한다. 기본소득은 돈을 주는 방식 중 가장 예의 바른 방법이다. 지금 시스템에서는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 기본소득 시스템에선 가난을 증명하지 않고 나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 기본소득은 바로 지급 가능한가.

“‘2023년에는 19~29세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으로 시작한다. 국민의 공감을 얻어 임기 말까지 ‘청년 200만원, 전 국민 100만원’으로 단계적으로 늘려 가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기본소득위원회와 기본소득 공론화도 공약으로 내세웠다.”

월 8만원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가성비 논란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굴러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내 삶이 큰 위험에 처했을 때 국가가 나를 지원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세상이 무너져도 살아낼 수 있다. 월 8만원이라는 액수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서있다고 생각하면 작은 금액이 아니다.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또 지금은 방수포지만 나중엔 두터운 에어 매트리스가 될 수도 있다.” 

‘재벌 회장 자식도 받아야 하나’라는 비판도 있다.

“이 논쟁은 거의 마무리됐다고 본다. 기본소득은 사람들을 돕는 가장 예의 바른 방식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공화’는 어울려서 화목하게 산다는 뜻이다. 국가가 돈을 지급할 때 누군가의 인격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사람 있고 돈이 있다. 또 이번 재난지원금 지급을 보면, 88% 기준을 어떤 방식으로 설정할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 상위 12%도 지원 배제 비율이 지역마다 다르다. 기본소득은 공화주의를 실현하는 가장 예의 바른 방식이다.”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 수급체계를 흔들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한국의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2018년 11.1%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20%는 돼야 복지국가 문턱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을 해도 13~14% 수준이다. 당분간 기존 복지체계와 기본소득은 병행돼야 한다.”

재원 문제는 어떻게 하나. 증세가 필요하다고 보나.

“‘중부담 중복지’라는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증세는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이제 솔직히 말해야 한다. 공짜가 어디 있나. 물론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주권자의 분명한 동의가 있어야 한다.”

기본주택 공약도 내놨다. 이재명 정부에선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부동산 시장은 주거 서비스 측면과 자산증식이라는 두 가지 면을 다 봐야 한다. 우선 기본주택 100만 호를 포함해 250만 호 이상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기본주택은 역세권 등 좋은 입지의 주거지를 건설 원가 수준의 저렴한 임대료로 30년 이상 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주거 서비스 측면을 개선하려면 장기 공공임대주택 공급 외에는 답이 없다. 기본주택이 100만 호 이상 공급되면 현재 전체 주택의 5%가 채 안 되는 장기공공임대주택 비율이 토지임대부 분양분까지 포함해 10%까지 늘어날 수 있다. 그다음 정부에서 이 비율을 15% 수준까지 높이면 주거 서비스 부문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될 거라 본다.”

자산증식 부문은 어떻게 안정화시킬 수 있을까.

“1가구 1주택자에게는 마음껏 재산증식 기회를 줘야 한다. 대출도 풀어줘야 한다. 다만 전문적 투기세력은 안 된다는 게 저희의 확고한 철학이다. 부동산 정책에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에 고위 공직자 부동산 백지신탁을 포함해 부동산 공무원 및 공공기관 임직원에 대한 부동산 취득심사제 등 공직자들의 부동산 보유 여부를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떡 만지는 사람의 손을 깨끗이 안 하면 부동산 불신 문제를 깰 수 없다. ‘LH 사태’에서 드러난 도덕적 해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것이다.”

‘기본소득토지세’ 도입은 정말 가능할까.

“할 수 있다. 세금은 정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는 여론이 중요하다. 보유세 강화로 투기를 차단하고 이를 소득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기본소득 재원으로 선순환시키겠다는 구상인데, 토지 보유에 따라 세금을 내더라도 국민의 90%에겐 기본소득으로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조세 저항을 누그러뜨리겠다는 계산이다. 정책은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시행해야 한다. 그래서 정책 시행 1년 전에 예비고지를 할 생각이다. 충분한 시뮬레이션을 거치고 공론화 작업을 하면 불안감의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 그렇게 국민 10명 중 9명은 동의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이재명 정부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어떨까.

“지금 논의 과정은 너무 소모적이다. 최저임금 결정에 준칙주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 등에 맞춰 결정하는 준칙이 필요하다. 동시에 이런 기준이 잡히면 권한을 지자체로 넘겨 지역별·사업별로 탄력성을 줄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정책은 어떤가.

“세계적 컨센서스(합의)인 탈원전이라는 기조는 가져가야 한다. 소형모듈원전(SMR)은 좀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삼되 갈 거라면 좀 더 빠르게 가는 게 바람직하다. 남들보다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따라가는 게 아니라 앞서가야 한다. 기후에너지부 신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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