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코리아, 부활의 서막을 열었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09.11 12:00
  • 호수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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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아홉 시즌과 다른 플랫폼 통해 4년 만에 귀환
정치·사회 풍자 코드는 옅어졌지만 호스트 캐스팅·현실 반영한 메시지로 주목

‘여의도 텔레토비’는 다시 돌아올까. 새로운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SNL코리아(SNL)의 리즈 시절을 견인했던 여의도 텔레토비와 같은 존재가 등장할지는 시청자들의 관심사였다. 단순히 정치 이슈를 다루는 코너가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닌, 대중의 간지러움을 시원하게 긁어줄 제대로 된 풍자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탄핵 심판 패러디로 시작해 ‘미운우리 프로듀스 101’ 등으로 정치·사회 풍자를 이어나간 SNL 시즌9조차 완전히 해소시키지 못했다는 대중의 갈증을, 새로 리부트된 SNL은 채워줄 수 있을까. OTT라는 플랫폼을 통해 4년 만에 다시 그 서막을 연 SNL 앞에는 ‘19금’으로 회자될 유머 코드를 넘어, 날 선 풍자와 세태 반영을 통해 ‘진짜가 돌아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9월4일 다시 시작된 SNL은 이전 시즌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SNL코리아 제공

신동엽 등 주축은 그대로…OTT로 자리 옮겨

미국 NBC 프로그램인 SNL(Saturday Night Live)의 한국판. 그것이 SNL코리아의 수식어였다. 42년 전통의 간판 코미디쇼 SNL로부터 포맷 라이선스를 받아 시작된 프로그램이기에, 원조와 같이 콩트, 유머, 정치·사회 풍자 등을 정체성으로 담았다. 기존 SNL은 2011년 tvN에서 첫 방송을 시작해 시즌9까지 방영됐다. 이번 SNL은 기존 시즌과 전혀 다른 형태의 ‘리부트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했지만, 그 정체성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SNL코리아 사단’의 존재에서 기인했다.

SNL코리아 시즌1부터 시즌9까지 제작을 이끈 안상휘 CP가 에이스토리로 자리를 옮겨 제작을 맡았다. MC 겸 크루의 수장도 바뀌지 않았다. 신동엽. 그 이름만으로 SNL을 떠올리게 만드는 존재다. 과거 안상휘 CP가 “SNL과 신동엽은 한 몸”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신동엽은 그야말로 SNL의 중추 역할을 했다. ‘드립의 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SNL에 본격적인 색을 입혔고, 대본 리딩과 크루 영입, 호스트 초대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프로그램의 질을 높였다. 이렇게 SNL의 뚜렷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해온 신동엽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제작자 역할로 나섰다.

SNL에 대한 신동엽의 애정은 적극적인 호스트 섭외로도 이어졌다. 세계적인 배우 이병헌이 포문을 여는 첫 회의 호스트로 등장한 것도 신동엽이 직접 설득한 결과다. 리부트된 SNL은 이병헌부터 시작되는 초호화 호스트 섭외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원과 조정석 등 배우들이 등장을 예고했고, 조여정도 긍정적으로 출연을 검토 중이다. 여기에 정상훈, 김민교, 권혁수, 안영미 등 SNL코리아를 든든하게 뒷받침하던 기존 크루들도 다시 합류해 SNL의 제대로 된 부활을 예고했다.

다만 이번에는 tvN이 아니다. 아홉 시즌의 SNL이 tvN에서 방영됐지만, 새로운 SNL이 방영되는 플랫폼은 쿠팡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쿠팡플레이다. 변화하는 방송 소비 패턴과 시청자의 요구에 가장 먼저 반응해 왔던 SNL이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구독자를 확보하며 판세를 넓히기 시작한 OTT 플랫폼을 선택한 것. 로켓와우 회원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OTT이기에, 매월 2900원의 회비를 내는 유료회원만이 새로운 SNL을 볼 수 있다. SNL코리아는 TV 방송사에서 OTT로 터를 옮긴 만큼, 보편적인 콘텐츠보다 충성도 높은 마니아층을 노린 콘텐츠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네이버 캡쳐

Live 아닌 녹화방송…왜?

제재에서 비교적 안전하고 수위가 자유로운 OTT는 19금 유머와 정치 풍자를 과감하게 그려냈던 초반 SNL의 색깔은 물론, TV와 유튜브의 경계에 존재하는 ‘B급 감성’을 그려내기에 적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아직 OTT 플랫폼을 백분 활용했다는 평가는 나오지 않았다. 오랜만의 복귀인 데다 프로그램의 첫 이미지를 결정하는 첫 방송이니만큼 평이하게 접근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지만, 특유의 신랄한 풍자와 기발한 세태 반영이 주축이 됐던 기존 SNL 시즌들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겨주는 1회였다는 평이다.

동시에 SNL이 가지고 있던 ‘라이브’의 성격도 희석됐다. 총 10회 분량의 이번 SNL은 모두 녹화방송으로 진행된다. ‘Saturday Night Live’에서 ‘Live’가 사라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회차별로 콘텐츠가 업데이트되는 OTT 플랫폼의 특성상 녹화방송 형태를 취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또 코로나19 여파로 관객들과 함께 생방송을 진행하기 어려워진 상황. 리부트 SNL은 녹화방송이라는 선택지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녹화방송은 라이브라는 날것 그대로의 묘미는 없지만, 탄탄한 구성과 매끄러운 진행을 만들 수 있는 장치다. SNL은 시즌9 방송 중에도 생방송에서 녹화방송으로 전환을 선언한 바 있는데, 제작진이 밝힌 이유는 ‘프로그램의 완성도’였다. 당시 생방송 특유의 재미가 옅어질 것이라는 시청자들의 우려도 존재했지만, 방청객의 반응을 보고 편집을 할 수 있다는 장점 덕에 방송 자체의 퀄리티가 올라갔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번 SNL이 녹화방송으로 전환되면서, 출연에 대한 욕심과 생방송이라는 부담감 사이에서 고민하던 스타들의 섭외가 더 수월했다는 후문이다.

여러 논란을 겪으며 풍파를 맞아왔던 SNL로서는 녹화방송 자체가 어찌 보면 안전한 장치일 수도 있다. SNL은 욕설이나 성적인 연출로 인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여러 번 받았다. 시즌8에서는 아이돌 성추행 논란, 콩트를 통한 비하 논란 등이 연달아 터지면서 프로그램 폐지 운동이 번진 바 있다. 상대적으로 제약이 덜한 OTT라는 플랫폼을 통해 등장했음에도, 이러한 과거 경험이 지금의 행동을 제약해 최대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배제한 것 같다는 시각도 있다.

SNL 시즌9은 ‘미운우리 프로듀스 101’ 코너를 통해 정치 풍자에 나선 바 있다. 시즌9 마지막회에서는 정치 풍자의 아이콘이었던 ‘여의도 텔레토비’가 재등장했다.ⓒSNL코리아 화면 캡쳐

SNL이 사회에 던지는 분명한 메시지

그럼에도 호스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콩트의 퀄리티, 사회에 던지는 분명한 메시지는 SNL의 부활을 기대하게 한다. 이병헌의 연기력은 첫 회에서 빛을 발하며 ‘호스트의 힘’을 보여줬고, 신동엽을 비롯해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왔던 기존 크루들은 공백기가 무색한 연기를 펼치며 맹활약했다. 이미 ‘밈’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병헌의 ‘건치댄스’는 브레이브걸스 안무 탄생 비화로 재탄생하면서 스타의 흑역사 아닌 흑역사를 부각시켰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명장면을 활용한 콩트의 시점은 2019년 12월. “결혼식은 내년 8월에 하고, 하객은 1000명으로 하라” “주식은 내가 통인데 여행사와 항공사에 몰빵해라” “돈이 남으면 명동에서 외국인들 대상으로 장사를 하라”고 예비 사위에게 조언하는 장인어른의 모습은 코로나19 확산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과거의 상황을 떠올리게 하며 안타까운 ‘웃픔’을 줬다.

이병헌이 출연한 영화 《싱글라이더》는 로맨스에 가까운 우정 콩트로 패러디되면서 웃음을 선사했지만, 그 안에서 짚은 것은 배달 라이더들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들이었다. “나가는 길에 쓰레기를 버려 달라”고 말하는 음식점 주인, ‘배달원 엘리베이터 탑승 금지’ 공지가 붙은 아파트, 음식 냄새가 난다며 승객들이 불쾌해하는 장면은 배달 라이더들이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현실과 처우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제작진은 이 콩트에 “‘코시국(코로나19 시국)’으로 모두가 지쳐 있는 요즘, 집과 직장에서 전해 받는 한 끼의 식사는 일상의 소중한 위로다. 배달 대행 기사님들의 노고에 늘 감사드리며 웃음으로 작은 응원을 보낸다”고 덧붙이며 하나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동안 SNL은 시즌별로 슬로건을 붙였다. 시즌1은 ‘초특급 스타들의 치명적인 코미디쇼’, 시즌2는 ‘뭘 좀 아는 어른들을 위한 라이브 TV쇼’였다. ‘금기를 깨는 이 맛이 SNL’(4회), ‘진화는 계속된다’(5회), ‘선을 넘다’(8회) 등의 슬로건은 해당 시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구이기도 했다. 여러 논란을 딛고 시작했던 시즌9은 ‘초심으로 돌아가다’라는 멘트로 마음을 다잡았다. 리부트된 SNL의 이번 슬로건은 ‘진짜가 돌아왔다’다. SNL 제작진은 프로그램 수위를 서서히 올리고, 정치 풍자도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청년 실업, 부동산 등 이슈도 등장을 예고했다. ‘날 선 코미디 콘텐츠’ ‘풍자의 명가’라 불리던 SNL의 명성은 돌아올 것인가. ‘진짜’ SNL의 귀환을, 팬들은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권혁수, 김민교, 정상훈

SNL이 키웠고, SNL을 키워냈다…연기력 입증해 도약한 스타들

2011년 첫 방송을 시작으로 시즌9 종영까지 시즌제를 이어온 SNL코리아. 원조 프로그램인 미국 NBC의 SNL처럼 ‘당대 최고 톱스타가 시청자를 웃긴다’는 취지를 그대로 가져갔기에, 그 중심에는 ‘호스트’가 있었다. 그러나 호스트를 든든하게 뒷받침하면서 프로그램의 인기를 견인한 이들이 있었으니, SNL은 그들을 ‘크루’라 칭했다. 이들은 단순히 ‘SNL이 키워낸’ 인물들이 아니라, ‘SNL을 키워낸’ 인물로도 평가받으며 방송가와 시청자가 주목하는 인물로 거듭났다. 조명받지 못했던 연예인들을 스타로 탄생시킨 ‘발굴’ 역할을 SNL이 해온 셈이다. 예능이지만 콩트 구성을 취했기에 크루들의 연기력은 부각됐고, 그것이 입증된 스타들은 도약했다.

SNL 초반 인기를 견인한 ‘여의도 텔레토비’에서 떠오른 인물은 김슬기다. 찰진 욕을 뱉는 캐릭터 ‘또’로 등장한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렸고, 뮤지컬·뮤직비디오 등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활약했다.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을 통해 코믹 연기의 진가를 보여줬으며, 드라마 《파수꾼》을 통해 주연배우로 올라섰다. 김민교 역시 SNL을 통해 두각을 나타낸 배우다. 일명 ‘눈알 연기’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다양한 표정 연기를 보여준 그는 이후 영화의 조연 역할을 속속 맡으며 작품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정상훈은 1998년 데뷔해 긴 무명 시절을 거치다, SNL 시즌6에서 엉터리 중국어를 구사하는 특파원 ‘양꼬치앤칭따오’ 역할을 맡으며 도약했다. SNL 이후 10년 만에 《덕혜옹주》로 스크린에 복귀했고,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 영화 《로마의 휴일》 등 다양한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시즌7을 본 사람들이라면 기억할 ‘호박 고구마’의 주인공. 배우 나문희, 박해미를 연기하며 웃음을 선사했던 권혁수다. 시즌2로 데뷔한 그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배우로서의 활동도 이어가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배우 고경표는 SNL ‘위켄드 업데이트’ 코너에 출연한 이후 시트콤과 영화를 통해 연기력을 검증받았고, 《응답하라1988》 《질투의 화신》 《크로스》 등에 출연하며 성장했다. SNL에서 화려한 난타 묘기로 눈길을 끌었던 김원해는 《명량》 《해적》 《타짜: 신의 손》 《검사외전》 《시그널》 등 흥행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신스틸러로 활약했다.

크루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유명해진 인물도 있다. SNL 작가로 합류했던 유병재다. 작가 출신 최초의 방송인이라는 타이틀까지 달았다. ‘극한 직업’ 코너를 통해 신선한 연기력을 보여준 유병재는 《선을 넘는 녀석들》 《대탈출4》등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권혁수, 김민교, 정상훈, 안영미 등 크루들은 이번 시즌에도 귀환해 열연을 펼친다. 여기에 유튜브 ‘피식대학’의 김민수, 레드벨벳 웬디, 배우 차청화, 모델 정혁, 신인 크루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김상협과 주현영, 이소진 등이 새로운 크루로 등장해 새로운 라이징 스타가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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