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분열, 윤석열의 오만 [쓴소리곧은소리]
  • 김택환 경기대 교수, 《넥스트 프레지던트》 저자 (twkim1127@gmail.com)
  • 승인 2022.02.05 10:00
  • 호수 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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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단일화 무용론’은 오만으로 비쳐질 대표적인 사례
강성 문파의 ‘이재명 낙선운동’은 '분열 필패의 법칙'에 해당

대선이 한 달 남았다. 짙은 안개에 싸였던 승패의 시계(視界)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정권은 윤석열로 교체될 것인가, 이재명으로 재창출될 것인가. ‘다이내믹 코리아’-.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여론의 흐름은 또다시 출렁일 수 있다. 마지막까지 가봐야 누가 될지 알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8번의 대선을 분석하면 모든 선거를 관통하는 대선 승패의 법칙이 있다. 먼저 ‘뭉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는 것이다. 1987년 대선 때 김영삼·김대중(합계 유효득표율 55%)의 분열로 노태우 후보(36.6%)가 당선되었다. 이후 김영삼은 3당 합당을 통해 승리했다. 김영삼한테 패한 김대중은 그다음 대선에서 김영삼 방식을 따라 ‘유신세력’과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구성해 승리했다.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 역시 ‘재벌 2세’ 정몽준 후보(국민통합21)와 ‘러브 샷’ 단일화를 통해 이회창을 이겼다. 세력이 뭉치는 캠프는 승리했다. 진영이 분열하면 패배했다.

반면 정치 아마추어 이회창은 과거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분열을 거듭해 패배했다. 이회창의 패배는 ‘오만하는 캠프는 진다’는 대선 승패의 또 다른 법칙을 만들어냈다. 그는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를 1997년과 2002년 두 차례 연속 말아먹었다. 그는 ‘대쪽 대법관’으로서 자존심이 너무 강했는데, 그것이 상당수 국민에게 자만심으로 비춰졌다. 1997년 이인제의 출마를 막기 위한 정성스러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1997년과 2002년 두 번 모두 김종필을 캠프로 끌어들이기 위한 협상을 거부했다. 정치 파트너에게 정성을 기울이거나 협상에 나서지 않아도 승리할 수 있다는 오만함 때문이었다.

 

왼쪽부터 이재명과 윤석열 후보ⓒ
왼쪽부터 이재명과 윤석열 후보ⓒ시사저널 이종현

한국 선거사를 관통하는 패배의 법칙

자만에 젖은 권력자는 설사 대선에서 승리한다 해도 비참한 결과를 맞을 수 있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은 정동영 후보에게 530만 표 차이로 압승한 데다 2008년 총선에서 범여권 세력이 국회 180석을 차지하게 되자 야당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승자의 저주라고 할까,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그런 배경에서 일어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당선했지만 집권당 지도부조차 부하 부리듯 하는 오만한 태도 때문에 자멸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선거에선 승리했으나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 즉 국정운영 능력이 결핍된 후보였던 셈이다.

한국은 지금 경제 10대 강국, K문화의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세계 최악의 자살률, 초저출산, 양극화, 세대·성 갈등, 지역소멸, 저성장 등으로 미래가 암울하다. 청년들에게선 ‘3포’(일, 연애, 결혼) 문제 등으로 자포자기적 용어가 유행한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의 30%인 2030세대의 선택이 승부처일 수밖에 없다.

대선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전과 정책의 대결이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유권자들은 선택의 축제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는 네거티브와 포퓰리즘이 판친다. 대선후보들의 비호감도가 역대 선거 중 가장 높아 최악의 선거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대통령감이 없다’ ‘ 찍을 후보가 없다’면서 기권하겠다는 목소리도 커져 간다. 이재명 후보는 기본소득과 311만 호 건설 등 퍼주기와 포퓰리즘, 윤석열 후보는 정권심판 외에 다른 비전과 콘텐츠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설 연휴를 전후해 발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이재명과 윤석열 간 박빙 혹은 윤 후보가 오차범위 안에서 앞서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재명 후보에게 악재는 강성 문파들이 ‘이재명 낙선, 윤석열 당선’ 운동에 나선 것이다. 송영길 대표와 이해찬 전 대표의 이재명을 무조건 감싸는 언행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이에 따라 민주당의 분열은 깊어가고 이재명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는 높아지고 있다. 이 후보 측은 반전 카드로, 측근 의원 7명이 ‘어떤 임명직 자리도 맡지 않겠다’에서, 송영길 대표의 586 퇴진과 자기 총선 불출마, 그리고 국회의원 3선 제한까지 정치개혁 이슈 선점에 나섰다. 

윤석열 후보 측은 정권심판론에 기대어 이미 승리를 거머쥔 것 같은 오만의 파열음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안철수와의 후보 단일화가 없어도 윤석열 후보가 승리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윤 후보는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고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현 정권과 차별화에 나섰다.

 

이인제 “더욱 겸손하게, 더욱 절박하게, 더욱 치열하게”

박빙의 승부처에서 대선후보와 캠프가 ‘3慢(만)’, 즉 후보 스스로 자만하고, 당 대표 등 캠프가 거만하고, 진영이 오만하면 ‘자멸’(自滅)로 이어지는 것은 역사의 철칙이다.

중도를 품지 못하고, 20·30대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 영국의 위대한 리더 처칠이나 단재 신채호 선생이 말한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집단은 미래가 없다’는 교훈이 와닿는 시점이다.

분열로 자멸의 길을 걸었던 이인제 전 대표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패하고 나서 땅을 쳐도 이미 늦다. 승패는 지금 결정되고 있는 중”이라면서 “더욱 겸손하게, 더욱 절박하게, 더욱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내부의 역량을 통합하고, 외부 세력을 연합하는 것이 승리의 길”이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이재명·윤석열 후보와 캠프 모두에 해당되는 말이다.

한국인은 국내외에서 몰려오는 ‘퍼펙트 스톰’인 기후위기, 에너지 전환, 4차 산업혁명, 미·중 패권전쟁, 양극화 파고를 넘을 수 있는 담대한 비전과 희망을 주는 리더를 원한다. 또한 증오·대결로 치닫는 진영 전쟁을 넘어 상생·통합으로 미래로 전진할 수 있는 ‘통 큰’ 정치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새 시대 ‘맏형’을 기대한다.

위해 남은 선거 기간 동안 후보들은 절차탁마(切磋琢磨)를 거듭해야 한다. 국정운영 역량을 키우고, 제왕적으로 군림하지 않고 국민에 ‘복무’하는 섬김의 리더십를 보여줘야 한다. 이와 함께 미·중 강대국 리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후보로 도약하길 기대해 본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택환 경기대 교수
김택환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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