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반구대 계곡 암각화 찾아 떠나는 과거로의 여행
  • 이정희 영남본부 기자 (sisa529@sisajournal.com)
  • 승인 2022.02.0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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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년 전 신석기 시대 고래사냥 모습 암각화에 새겨져
천정리 각석 맞은편 돌 위에 130여 개 공룡발자국 화석 존재
문화재청, 유네스코 우선 등재 목록에 올려
대곡리 암각화 전경사진 Ⓒ 이정희 기자
대곡리 암각화 전경 Ⓒ 시사저널 이정희 

울산반구대 계곡은 병풍처럼 펼쳐져 한 폭의 그림 같다. 이곳에는 공룡발자국등 선사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계곡 위 천정리 각석에는 신라 법흥왕시대 명문과 세선화가 새겨져 있다. 계곡 아래 대곡리 암각화에는 거북이·고래와 같은 바다동물과 호랑이·사슴과 같은 육지동물 등 다양한 그림이 새겨져 있다.

임인년 설날 연휴 둘째 날인 지난달 31일 기자는 선사시대 유적인 울산 반구대 계곡 암각화를 찾아 나섰다. 이곳은 1971년 12 25일 동국대학교 불교유적 조사단에 의해 최초로 발견됐다. 승용차로 반구대 입구 주차장에 오후 3시쯤 도달했다. 주차 안내원이 오후 4시부터 승용차를 직접 몰고 들어가도 된다고 했다. 입구 주차장에서 암각화 박물관까지 도보로 20분 거리다. 또 다른 교통수단은 몇 분 간격으로 유리창 없는 전기차 셔틀버스가 있다. 얼마 후 셔틀버스가 왔다. 오후 4시까지 기다릴 수 없어 셔틀버스를 타고 암각화 박물관으로 향했다. 주차 안내원과 셔틀버스 운전기사는 이곳 원주민이다.

이 박물관에는 울산시가 암각화를 뚜렷하게 재현했다. 최초로 고래사냥한 도구와 각종 유물이 전시돼 있다. 늑대와 여우, 사슴 등이 박재돼 있다.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생활 모습도 있다. 암각화 앞에서 선사인이 동물 잡는 모습과 암각화에 그림을 새기는 모습도 있다. 

박물관을 돌아보고 암각화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곡리 암각화는 울산 암각화 박물관에서 남쪽으로 반구대를 지나 1.2km 지점에 있다. 천정리 각석은 반대 방향으로 위쪽 1.2km에 위치한다.

암각화 박물관에서 대곡리 암각화까지 도보로 20분 거리다. 산속임에도 아이들이 걷기 좋게 길은 완만하다. 잿빛으로 펼쳐진 암벽은 상상보다 더 황홀하다. 암벽은 자연 그대로다. 고요하지만 생생함이 살아 있다. 한 발짝 한 발짝 옮길 때마다 반구대의 형체가 파도에 밀려오듯 눈앞에 차오른다.

겸재선생이 화폭에 실은 전경사진 Ⓒ 이정희 기자
겸재선생이 화폭에 실은 전경 Ⓒ 시사저널 이정희

어느 덧 겸재선생이 화폭에 옮겨 놓았다는 반구대 절벽과 너럭바위를 마주했다. 집정청 앞에 서서 이를 바라보는 풍경이 빼어나다. 자연습지에 가로 놓인 다리를 건넌다. 대숲을 지나니 확 트인 하늘이 나타나고 암각화 전망대 끝으로 다가섰다.

건너편에 대곡리 암각화가 펼쳐진다. 암각화는 위로 대곡댐과 아래 사연댐 중간에 있다.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 대곡댐에서 물을 방류하면 지난 1965년에 만든 사연댐은 수문이 없어 수위조절이 되지 않는다. 암각화는 이 탓에 물에 잠긴다. 암석은 점도가 굳어서 된 세일이라 물에 취약하다. 물에 잠겼다 하면서 몇 군데 귀한 그림이 떨어져 나갔다. 이곳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보면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이 암각화는 약 7000년 전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너비 약 8m, 높이 약 4m 규모의 중심 암면 10곳에 약 300여 점의 다양한 그림이 있다. 거북이·고래와 같은 바다동물과 호랑이·사슴과 같은 육지동물 등 약 20여 종이 새겨져 있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고래를 잡거나 활을 이용해 동물을 사냥하는 모습 등도 있다. 그림이 새겨진 판판한 암면의 위쪽은 처마처럼 튀어나와 비·바람으로부터 지켜 주고 있다. 이곳은 고래 그림이 대표적이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고래와 새끼를 등에 업은 귀신고래, 물위를 뛰어 오르는 혹등고래 등이 세밀하게 표현돼 있다. 고래를 사냥하고 해체하는 모습도 새겨져 있다.

하루 단 한번 햇살을 품는다는 암각화. 오후 4시가 지나면서 암벽 내 드리운 어두운 빛은 밝은 회색으로 바뀐다. 특히 3월에서 9월까지 이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천정리 각석이 위치한 전경사진 Ⓒ 이정희 기자
천정리 각석이 위치한 전경 Ⓒ 시사저널 이정희

암각화를 감상하고 천정리 각석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느 틈엔가, 날라 온 학 한 마리가 하얀 날개 짓으로 유유히 허공을 그리다 절벽으로 감춘다. 암벽에는 ‘반구대라는 글과 학 두마리가 새겨져 있다’고 전한다. 나머지 학 한마리를 보지 못해 아쉽다.

어느 덧 천정리 1.2k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천정리로 가는 길은 대곡리와 사뭇 다르다. 굴곡이 심하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민가 몇 채를 지나자 포장되지 않은 산길이 나타난다. 겨우 한사람 다닐 수 있는 좁은 길옆은 낭떠러지다. 드디어 천정리 각석에 도착했다. 이정표로부터 걸어서 30분 거리다. 

대곡리 암각화가 고요와 평온을 위한 기도였다면, 천정리 각석은 엄숙하고 웅장하다. 천정리에 위치한 이 암각화를 각석이라 부르는 것은 암각화 뿐 아니라 신라 법흥왕시대 명문과 세선화가 함께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바위면은 너비 약 10m, 높이 약 3m로 15도 정도 경사져 있다. 상반부는 청동기시대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 문양과 동심원, 나선형, 물결, 마름모 등이 새겨져 있다. 하반부는 신라시대의 행렬과 돛단배, 말, 용 등이 새겨져 있다. 선사시대부터 오랜 기간 사람들이 찾아와 어떠한 의식이나 행사 치룬 성스러운 공간이다. 잘 보존된 이곳은 후세에 문화유산으로 물려 줘야 할 곳임에 틀림없다.

어릴 적 근처 마을에 살았다는 60대 여인은 “천정리 각석 맞은편 편편한 돌 위에서 뛰놀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잔치도 했다”는데 이곳은 약 130여 개의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용각류와 조각류, 수각류 발자국 위에서 마을 잔치라니.

반구대 계곡 암각화는 지난해 4월 명승지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심의해 유네스코 우선 등재 목록에 올렸다. 무엇보다 이 곳은 경관이 빼어남에도 자연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70여명 마을 주민과 문화 유적지로 보존하려는 지자체가 협력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모으고 있다. 꼭 한번쯤 가보고 싶은곳, 울산 반구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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