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진 금융당국의 ‘숙제검사’에도 은행권은 좌불안석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11.1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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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수장-지주 회장단 회동, 전격 연기…오는 20일로
‘1000억원’ 상생 방안에 “어떤 혁신 했기에 60조 이익?” 일침
날로 거세지는 관치금융…배당 재원 줄면 투자자 반발 우려

윤석열 대통령의 ‘종노릇’ 발언 이후 은행권의 속앓이가 계속되고 있다. 일부 금융그룹에서 10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 계획을 발표했지만 당국에선 “혁신을 해서 60조원 이자수익을 거뒀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여서다. 최근엔 횡재세 관련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어 금융권을 향한 압박은 거세지고 있다. 당초 오는 16일로 예정됐던 금융당국 수장들과 주요 금융지주 회장단의 회동은 20일로 연기됐다. 그 사이 각 금융그룹은 당국의 요구 수위를 파악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6월15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6월15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1000억으론 어림 없다?’…선제적 상생안에 냉담한 당국

15일 금융위원회는 당초 16일에 열기로 했던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5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및 지방은행지주 3곳(BNK·DGB·JB)의 회장 간 회동을 나흘 뒤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간담회가 연기된 이유는 김 위원장의 코로나19 확진 판정이다. 김 위원장은 전일 오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으며 대외 일정을 취소했다.

회동이 나흘 늦춰졌지만 은행권의 마음이 불편한 건 변함이 없다. 20일로 연기된 간담회에서는 최근 금융 당국에서 강조하고 있는 상생금융 관련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주 은행권은 상생금융 방안을 당국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계부채 부담 절감 및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한 금리 인하 등의 금융지원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달 초 윤석열 대통령이 “소상공인이 은행의 종노릇하고 있다”며 강하게 은행권을 질타하자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은 각각 1050억원, 1000억원 규모의 상생금융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당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지난 7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은행권의 지원 방안에 “제 판단이 중요한 게 아니다. 국민 공감대를 만족하는 방안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평가를 자제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더 나아가 날을 제대로 세웠다. 그는 “3·4분기 영업이익 비교해 보자면 삼성전자·LG전자·현대차를 다 합친 것보다도 영업이익이 크다”며 “과연 (은행들이) 반도체, 자동차와 비교해 어떤 혁신을 했기에 60조원의 이자 이익을 거둘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은행권을 강하게 압박했다.

예상과는 다른 당국 반응에 추가 상생 방안을 공개하려던 다른 금융그룹들은 발표를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과의 회동에 앞서 은행연합회와 상생금융방안을 사전 논의하려던 계획도 취소했다. 자칫 지원 규모를 비슷한 수준에서 맞추려고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에 일각에선 이자 수익의 일정 비율을 서민금융진흥원과 같은 기관에 기부 형식으로 출연하는 방안도 거론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는 횡재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는 취지로 읽힌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년 동안 평균 순이자수익과 비교해 120%를 초과하는 순이자수익을 얻을 경우, 해당 초과이익의 40%까지 ‘상생금융 기여금’으로 내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지난 7월5일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행 지주회장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5일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행 지주회장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이자 수익 손대나…배당 재원 줄어들 경우 투자자 반발도

은행권 관계자는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 금융지원은 당국이 원하는 상생안이 아닌 듯 하다”면서 “더 많은 금융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으라는 것인데 어느 수준까지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결국 논란이 되는 이자 수익을 건드리는 방식 정도는 돼야 당국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은행권에서 번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의 관치금융이 온당한 것이냐의 비판은 계속해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융권은 올 초 윤대통령의 ‘돈 잔치’ 발언 이후 상생금융 명분으로 7000억원을 출연 혹은 내놓을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당국이 은행권의 자발적 행동을 추가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당국 압박에 은행권이 이자 수익의 일정 비율을 떼어 내 출연한다면 주주들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국이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대손충당금 적립 수준을 강화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생출연 기금이 확대될 경우 배당 재원이 줄어들 수도 있어서다.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약 60~70%에 이른다는 점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당국의 행보가 앞뒤가 다르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 8월 런던에서 열린 ‘인베스트 K-파이낸스 런던 IR 2023’ 행사에 직접 참석한 이 원장은 국내 금융사의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배당 자율성을 높일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금융지주의 주주환원 자율성을 보장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행보는 금융지주의 주주환원 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원장도 이를 의식한 듯 ‘60조 이자수익’ 발언이 나온 자리에서 관련 내용을 언급했다. 그는 “배당 자율성과 관련해서도 금융회사가 기업으로서 적정한 가치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노력해 온 것을 (은행권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은 해줄 만큼 해줬으니 이에 상응하는 대책을 내놓으라는 얘기”라며 “당국과의 회동은 늦춰졌지만 고민의 시간만 더 늘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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