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타워 부재 드러낸 ‘행정 재난’…거세진 이상민 경질론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11.20 17: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정망 먹통 이유’ 파악 못했나…설명 못 내놓는 정부
공공망 마비 벌써 세번째…이 장관 경질 압박 속 尹 ‘출국’
영국을 국빈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11월20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국에 앞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영국을 국빈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11월20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국에 앞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초유의 먹통 사태로 마비됐던 정부 행정전산망이 20일 가까스로 정상화됐다. '디지털 강국'을 표방해 온 한국 정부의 민원 서비스가 일시에 멈춰서며 국민들은 극도의 혼선을 마주했다. 사태 발생 수 일이 지났지만 정부가 정확한 원인 규명조차 내놓지 못하는 데다 후속 대응까지 '총체적 난국'이라는 점에서 비판 목소리가 커진다. '컨트롤타워 부재' 비판 속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경질론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민 대혼돈 빠졌는데…'먹통 이유'도 설명 못하는 정부

지난 17일을 기점으로 사흘간 멈춰 섰던 정부 행정전산망은 순차 복구 작업이 진행돼 월요일인 20일 현재까지 큰 차질 없이 정상 가동되고 있다. 전국 주민센터를 비롯한 오프라인 현장과 1300종 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24 등 온라인 민원처리 업무도 별다른 문제 없이 작동 중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불안감과 의구심은 수그러들지 않는 모양새다. 행안부는 전산망 마비 사태가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했지만, 아직까지도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행안부는 이번 사태가 행정전산망 '새올지방행정시스템'의 인증시스템 중 하나인 네트워크 장비 이상 때문이라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네트워크 장비 내 정보를 주고받는 'L4 스위치'에 이상이 생기면서 사용자 인증절차에 문제가 생겼고, 이로 인해 접속 장애가 발생해 새올 시스템을 통한 민원서류 발급 업무가 중단됐다는 것이다. 민관 전문가로 구성된 복구팀이 18일 새벽 네트워크 장비를 교체했고, 안정화 작업을 거쳐 행정전산망 복구를 완료했다는 게 행안부 설명이다.

하지만 행안부가 장애 원인으로 지목한 'L4 스위치 이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에서 생겼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서보람 행안부 디지털정부실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L4 장비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발견했는데, 그 안에 어떤 부분이 실제로 문제를 일으켰는지에 대해서는 면밀한 조사를 거쳐서 확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1월19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를 방문해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 복구를 위한 현장점검 후 본인의 등본을 발급받고 있다. 11월17일 공무원 전용 행정전산망인 '새올'에 이어 정부 온라인 민원서비스인 '정부24'도 서비스가 전면 중단돼 공공기관의 민원서류 발급이 올스톱됐다. ⓒ 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1월19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를 방문해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 복구를 위한 현장점검 후 본인의 등본을 발급받고 있다. 11월17일 공무원 전용 행정전산망인 '새올'에 이어 정부 온라인 민원서비스인 '정부24'도 서비스가 전면 중단돼 공공기관의 민원서류 발급이 올스톱됐다. ⓒ 연합뉴스

IT 전문가들은 사고 예방 조치부터 대응까지 총체적 관리·감독 부실로 빚어진 행정 참사라고 입을 모은다. 사용자가 많은 평일 오전에 여러 서비스를 동시다발 업데이트 한 것 자체로 문제인데다 원인 규명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등 '중구난방 수습'으로 국가 행정망 운영에 커다란 구멍이 노출됐다는 것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네트워크 장비 이상을 파악하는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없다"며 "아직 원인 파악이 확실히 안 됐거나 아니면 문제를 축소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이렇게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평일에 국가 행정전산망 업데이트를 시도하고, 복수의 시스템을 동시에 업데이트 한 점이 사태를 더 키웠다고 지적한다. 시스템 충돌 가능성 등을 고려해 이용자가 적은 주말을 이용하고 순차적인 업데이트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어야 하지만 이같은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전자정보 전체 시스템을 관리감독 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나 행정안전부에서 이런 것들에 대한 전체적인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며 "민간 기업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대표가 책임을 진다. 정부도 외주업체나 하급 실무자한테 책임을 미룰 게 아니다"고 꼬집었다. 

행안부가 전산망 사태 발생을 제대로 안내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도 커진다. 행안부는 17일 오전 민원서류 발급 서비스 장애 발생 직후 대국민 안내를 하지 않다가 오후가 돼서야 보도자료를 통해 대응 사실을 전파했다. 

행안부가 지자체 단체 대화방을 통해 전산망 마비 업무지침을 전파한 것을 두고도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정부가 사태 심각성을 파악조차 못했거나 축소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정부 행정전산망 '새올 시스템'이 모두 복구된 11월20일 서울 종로구청 종합민원실에서 민원인들이 업무를 보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 행정전산망 '새올 시스템'이 모두 복구된 11월20일 서울 종로구청 종합민원실에서 민원인들이 업무를 보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또 이상민…'경질론' 속 尹대통령 '출국'

이번 사태로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한 경질 요구는 한층 더 거세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탄핵 위기에 몰렸다 기사회생한 이 장관은 이후에도 자연 재난·재해 부실 대응 논란에 거듭 휩싸였고 새만금 잼버리 파행 사태 책임론도 가시지 않은 상태다. 지난 3월 법원 전산 시스템 마비에 이어 6월에는 교육부의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가 개통 직후 오작동 하는 등 국가가 관리하는 공공 전산망 오류·마비 사태가 올 들어서만 벌써 세번째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무능함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라며 이 장관 경질을 촉구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플랫폼 정부'라는 명성에 크나큰 오점을 남겼다"며 "'재난'이라고 할 비상 상황에서도 윤석열 정부는 무능하고 무책임했다"고 질타했다. 

권 수석대변인은 "하필이면 주무장관인 행안부 장관이 디지털 정부를 홍보하려 해외 출장 중이던 상황에서 디지털 재난이 벌어져 국제적 망신까지 샀다"며 "윤 대통령은 국민께 사과하고 주무장관인 이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영교 최고위원도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정부의 경제 무능, 민주주의 무능, 안전 무능에 이제 세계 1등을 자랑하던 디지털 정부의 무능까지 나타났다"며 "윤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 장관이 책임지고 사퇴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여당은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듯 재빨리 '사과 모드'에 돌입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는 사태"라며 "여당을 대표해 국민들에게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김 대표는 "국민의힘은 이번 오류 사태를 철저히 짚어보고, 유사사례가 다신 없도록 정부와 재발 방지대책 마련에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카카오 먹통 사태 당시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던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 행정망 마비와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은 채 영국 국빈 및 프랑스 방문을 위해 이날 오전 출국했다. 카카오 사태 직후  윤 대통령은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망이지만, 국민 입장에선 국가 기간통신망과 다름 없다"며 거센 질타와 함께 총력 대응을 주문한 바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