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드라이브…의협, 尹정부에도 총파업으로 맞설까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11.2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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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 수요조사’ 발표 후 의협-정부 첫 회의 파행
의협, ‘총파업’ 강경 대응 경고했지만…실행 두고 ‘고심’
2020년 8월 대한의사협회가 문재인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하며 전국의사 총파업에 나선 가운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에서 한 전임의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2020년 8월 대한의사협회가 문재인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하며 전국의사 총파업에 나선 가운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에서 한 전임의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정부가 의과대학 증원 수요 조사 발표 후 정책 추진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면서 의료계가 들끓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총파업'을 예고하며 강력 반발했고, 정부는 의사 인력 확충 방안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며 맞불을 놨다. 

23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전날 의대 증원 수요 조사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 정부와 의협은 의대정원 문제를 놓고 마주 앉았지만 회의는 10분 만에 파행됐다. 

 

의협 "최후 수단 돌입…모든 책임 정부에"

양동호 의협 협상단장(광주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협상 테이블에서 "논리적이지도 않고 비과학적인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건 여론몰이"라며 "정부가 의대 정원 정책을 강행하려 한다면 의료계는 최후의 수단을 동반한 강경 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향후 발생할 필수·지역 의료 붕괴와 의료 공백에 따른 국민 피해의 모든 책임은 오롯이 정부에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와의 입장 차만 확인한 채 회의장을 빠져 나온 의협 대표단은 정부를 강하게 성토했다. 의협 측은 의료 접근성 등 세부 지표에 기반해 의사 수 부족 여부를 따져야 하는데, 정부가 기초 데이터도 없이 대학에 '희망 증원 규모'를 묻는 것 자체가 비과학적인 정책 추진을 인정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11월15일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열린 17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 양동호 대한의사협회 협상단장(광주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11월15일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열린 17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 양동호 대한의사협회 협상단장(광주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양 단장은 회의 시작 전에도 작심 발언을 쏟아내며 "(정부에서) '핵폭탄'을 날려 우리 협상단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다"며 "(대학을 상대로 한 증원 수요) 조사는 고양이(대학)한테 생선이 몇 마리씩 필요하냐고 묻는 것과 똑같다"고 날을 세웠다.

복지부는 지난 21일 전국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증원 수요'를 공개했다. 대학들은 오는 2025년까지 최대 2847명, 2030년까지 최대 3953명을 의대 정원을 늘리길 희망했다. 현재 의대 정원이 3058명인 점을 감안하면 대학들은 10년 내 두 배 가까운 의대 증원을 원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해당 데이터가 의대 정원 확대의 주요 명분이 된다는 입장이다. 대학이 늘어난 의사 인력 교육을 감당할 수 있고, 현장의 증원 요구 목소리 역시 수치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협은 대학을 상대로 경쟁적으로 '희망 정원'을 제출토록 한 뒤 나열해 놓은 숫자를 의대 정원 확대 근거로 활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전국의사 2차 집단휴진 첫날인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전공의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오전 8시를 기해 수도권 전공의·전임의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 연합뉴스
2020년 8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전공의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오전 8시를 기해 수도권 전공의·전임의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 연합뉴스

처벌 우려·2020년 총파업 선례에 '고심'   

의협은 더 이상 정부와의 대화가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지만, 대응 방식을 놓고는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가 의대 증원 논의 포문을 열었을 당시에도 의협은 '총파업'을 거론했지만 추가 협상 가능성과 함께 강력 투쟁시 실제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현장 목소리가 커지면서 실행 카드를 뽑진 않았다. 직전 총파업의 최대 명분이었던 공공의대 설립이 빠진 점도 동력 확보에 변수로 거론된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셌던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벌인 총파업 상흔이 의사와 의대생들의 참여를 머뭇거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 정부가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400명 증원'을 추진했을 때 80% 넘는 전공의가 총파업에 참여, 집단 휴진에 들어갔고 의대생들은 국가고시 거부로 단체행동에 동참했다.

그러나 이후 의협이 현장 복귀 협의서를 체결하면서 총파업에 앞장섰던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극도의 혼란과 갈등을 겪어야했고, 내부에서도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는 자조가 터져 나왔다. 현 정부가 의대 증원 의제를 꺼냈을 때도 전공의를 비롯한 의사들은 '처벌 가능성'과 2020년 선례를 거론하며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를 냈다. 

일단 양 단장은 오는 26일로 예정된 전국의사대표자 회의에서 총파업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양 단장은 "장기적으로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면 현재 국민들이 불편을 겪더라도 (파업을) 강행해야 하지 않냐는 의견이 의료계 내부에 많다"고 전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의대정원 수요 조사 결과 발표 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부동산 투기' 방식으로 의사 수 확대를 강행하고 있다며 총파업을 포함해 2020년을 넘어서는 강경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이후 처음으로 공식 비판 성명을 발표하면서 실제 총파업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전협은 지난 22일  정부가 발표한 의대 증원 수요조사 결과에 대해 "터무니없는 근거로 독단적인 결정을 강행할 경우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한 11월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필수 의협 회장이 정부를 강력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한 11월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필수 의협 회장이 정부를 강력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의료계의 강력 반발에 "이제 막 의대정원 증원의 첫발을 뗀 상황에서 벌써 의료계에서는 총파업과 강경 투쟁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고 있어서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병원의 인력이 부족하고, 수억원 연봉으로도 의사를 구하기 어렵다고 호소하면서도 의대 정원을 늘리는 데 반대하는 모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직격했다.

이어 "언제 다시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의사들이 실력행사에 나설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국민들이 걱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단체행동 자제를 촉구했다.

복지부는 의협의 반발이 이어지자 전날 오후 참고자료를 내고 재차 유감을 표하며 "정부는 앞으로도 의협과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정책 패키지 마련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사인력 확충 방안을 계속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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