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조장하는 대한민국 상위 10%의 ‘사랑 쟁탈전’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3.11.28 13:00
  • 호수 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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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로》 1~17기 출연진 207명 학교∙직업 분석해 보니 SKY 8%, 대기업∙공기업∙전문직 31%
현실에서 보기 힘든 ‘고스펙’ 몰린 짝짓기 예능…"시청률 고려한 선택, 결혼 기피 초래할 것"

최근 TV 프로그램 중 주목도가 높은 것을 꼽자면 ENA·SBS PLUS 《나는 솔로》를 빼놓고 논하기 힘들다. 일명 ‘짝짓기 예능’의 선두주자인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 면에서 독보적이다. 방영 중인 3년 동안 시청률이 점점 증가하더니 올해 들어 매회 평균 4%대로 올라섰다. 지난 9월에는 역대 최고 시청률인 6.5%(수도권 유료방송가구 기준 닐슨코리아 집계 수치)를 기록해 프로그램 종류 불문 케이블 1위를 차지했다.

방송가에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다. 하지만 대중 사이에서는 “뒷맛이 씁쓸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고스펙’의 일반인이 매회 방송에 대거 출연하면서 생긴 괴리감이 주된 이유로 풀이된다. 특히 《나는 솔로》가 리얼리티 예능을 표방하는 데다 짝을 맺은 출연자가 실제 결혼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에 더욱 현실과 떼어놓고 보기 힘들다는 시각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학계에서도 《나는 솔로》가 다른 짝짓기 예능에 비해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 대해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일러스트 오상민

전문직 중 최다 출연 직종은 ‘의사’

그렇다면 실제 《나는 솔로》 출연자 중 흔히 고스펙으로 통하는 사람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시사저널은 2021년 7월 방영된 《나는 솔로》 1기부터 올 11월 현재 방영 중인 17기까지 나온 모든 일반인 207명이 방송에서 밝힌 출신 학교와 직업을 전수 분석했다. 이 가운데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본교 출신 및 대기업, 공기업·공공기관, 의사·변호사·회계사 등 고소득 전문직 또는 채용 인원이 제한적인 직장인 등을 추렸다. 방송에서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S전자’ ‘L백화점’ 등 소속 기업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경우는 포함했다.

우선 대기업 직장인은 외국계 대기업을 포함해 총 32명이 출연했다. 전체 출연자의 15.5%로 가장 비중이 높다. 다만 실제 비중은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황상 소속 기업을 유추할 수 있지만 당사자가 ‘외국계’ ‘글로벌’ 등이라고만 언급한 경우는 제외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직장인 다음으로 치과의사와 한의사를 포함한 의사가 12명(5.8%) 출연해 두 번째로 많았다. 공기업 또는 공공기관 근무자는 10명(4.8%)이었다. 또 미국 변호사를 포함한 변호사는 5명(2.4%)이었다. 그 외에 회계사 3명(1.4%), 변리사 2명(1.0%), 노무사 1명(0.5%), 약사 1명(0.5%) 등 순으로 나타났다. 모두 합하면 총 출연자의 31.8%인 66명이다.

이들의 출연 빈도를 기수별로 나눠보면 1기부터 17기까지 기수마다 평균 3.8명이 출연했다. 매 기수 평균 총 출연자가 12.1명이니 대략 3명 중 1명은 고스펙의 일반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지난 2~4월 방영된 13기는 모든 기수 통틀어 직업이 가장 두드러졌다. 출연자 12명 중 대기업·공기업·의사·약사 등 고소득 직장인 또는 전문직 8명이 얼굴을 비쳤다.

한편 출신 학교별로 살펴보면 서울대 3명, 고려대 7명, 연세대 8명이다. 모두 합하면 총 출연자의 8.6%다. 또 2023학년도 수능 응시인원 대비 SKY 입학정원 비율은 2.5%다. 최근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로 SKY 입학문이 넓어졌다고 하지만, 《나는 솔로》의 SKY 출연자 비율과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게다가 SKY 출신인데 방송에서 공개하지 않은 사람까지 고려하면 실제 차이는 더 벌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유튜브 캡처
《나는 솔로》 17기 영수가 자기소개 시간에 본인을 삼성전자 반도체 개발 연구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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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에서 외과 전문의로 근무한다는 11기 영수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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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한다는 15기 광수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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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기 ‘돌싱특집’에 나온 영자. 삼성전자에 근무 중이라고 밝혔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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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로》 여성 출연자 중 유일한 회계사로 나온 17기 현숙 ⓒ유튜브 캡처

대기업 직원 비율, 현실 10%… 《나솔》 15%

“보통 사람을 우대한다.” 《나는 솔로》 연출을 맡고 있는 남규홍 PD는 출연자 섭외 기준에 대해 지난 10월 다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러나 근로자의 대다수가 종사하는 직역을 ‘보통 사람’으로 본다면, 《나는 솔로》 출연자는 그보다 상위권에 있다. 지난해 종사자 300인 이상 대기업 취업자는 약 300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10.7%를 차지했다. 수치와 비중 모두 역대 최대치다. 그럼에도 여전히 절대 다수는 중소기업에 몸담고 있다. 중소기업 취업자는 전체의 89.3%인 약 2509만 명으로 조사됐다.

전문직의 문턱은 더 높다. 《나는 솔로》 최다 출연 전문직인 의사의 경우, 2021년 그 숫자가 11만 명이다. 치과의사(2만7000명)와 한의사(2만3000명)까지 포함하면 총 16만 명이다. 2021년 생산가능인구(15~64세) 수인 3546만 명과 비교하면 그 비중은 0.4%다. 의사 숫자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인구 1000명 중 4명이라는 뜻이다. 전체 인구와 비교하면 그 희소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2021년 OECD 기준 한국의 평균 의사 수는 인구 1000명 당 2.6명으로 나타났다. OECD 전체 회원국 중 멕시코(2.5명) 다음으로 낮은 수준으로, OECD 전체 평균인 3.7명보다 적다.

의사의 희소성은 결혼시장에서도 단연 최상위권이다. 의사 숫자 16만 명을 결혼 적령기 미혼자와 견주어 보면 이를 추정해볼 수 있다. 통계청이 지난 7월 내놓은 분석 결과를 토대로 25~49세 미혼 남성·여성의 수를 추산하면 약 723만 명(2020년)이다. 의사 수는 이 중 2.2%다. 반면 《나는 솔로》의 모든 출연자 중 의사 비중은 그 2배가 넘는 5.8%다. 통계만 놓고 보면 TV에서 미혼 의사를 볼 확률이 더 높은 셈이다. 의사의 위상은 소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세청이 밝힌 2021년 의료업 종사자 1인당 연평균 사업소득은 3억4200만원으로 조사됐다. 모든 전문직 통틀어 가장 높다.

의사 다음으로 출연이 잦았던 전문직인 변호사는 전국에서 3만3000여 명이 활동 중이다. 지난 3월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수다. 의사 수의 5분의 1 규모로 생산가능인구 대비 0.02%에 불과하다. 로스쿨 도입으로 변호사 수가 급증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접근성이 크다고 하기 힘들다. 민사소송 1심에서 변호사 없이 ‘나홀로 소송’을 하는 비중이 72%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 외에 《나는 솔로》에 등장한 회계사와 변리사는 모두 변호사와 함께 1인당 연평균 사업소득이 9000만~1억원 이상을 기록한 고소득자다. 그 밖에도 프로그램에는 “난초 10만 분 이상 재배” “소 1000마리 양육” “매출 300억대 기업 운영” 등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사업가와 농장주 등이 다수 출연한 바 있다.

《나는 솔로》에서 펼쳐지는 고스펙 일반인들의 쟁탈전을 두고 일각에서는 회의적 반응을 내놓았다. 자신을 ‘수습 변호사’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지난 7월 인터넷 게시판에 “《나는 솔로》 출연자들의 스펙 하향 평준화를 요청한다”란 글을 남겼다. 그는 “(이성을 선택하는) 상대적 기준을 높이는 데 《나는 솔로》가 꽤나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4년제 대학 나와 대기업만 다녀도 상위 5% 내의 스펙일 텐데 《나는 솔로》에서는 전문직, 그중에서도 상위 전문직이 아니면 ‘그닥’이라는 반응이 심심찮게 보인다”고 주장했다.

《나솔》 출연자도 비판…“상대적 박탈감 자극”

제작진이 주장하는 프로그램의 역할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나는 솔로》 MC인 가수 데프콘은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진정성 있는 프로”라고 소개했다. 반면 《나는 솔로》 4기에 ‘정수’로 출연했던 김현민씨는 지난 8월 블로그를 통해 “연애 예능은 비혼·비출산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고 직격했다. 김씨는 유복한 가정의 아이들이 나오는 육아 예능이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연애 예능과 비교했다.

김씨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대기업 종사자라면 삼성전자 정도는 다녀야 평범하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다니는 제약회사의 경우 무시할 정도는 아닌데 비하하는 표현을 듣기도 했다”며 “우리나라의 ‘평균 올려치기’ 문화가 점점 더 심해지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는 연애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심리학과 교수 아브라함 분크 등에 따르면, 시청자는 연애 프로그램을 볼 때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즉각적으로 사회적 비교 과정에 들어간다. 특히 《나는 솔로》처럼 일반인이 주축인 프로그램은 등장인물과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살펴보는 유사 비교 행위를 주로 발생시킨다고 한다. 인천대 연구진은 지난 8월 논문을 통해 “《나는 솔로》 시청은 사회적 비교를 증가시켜 결혼 기대감을 높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정반대의 해석도 나온다.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을 지낸 손숙미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시사저널에 “《나는 솔로》 출연자 구성은 대중에게 환상을 심어줘 상승혼을 부추기거나 결혼 기피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아무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도 현실에서 보기 힘든 일반인을 출연시켜야 시청률이 올라간다”며 “인구 비례로 따지면 극소수인 대기업 직장인과 전문직을 출연자에 포함시킨 건 제작진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나는 솔로》의 남규홍 PD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방송에서 지나치게 평범한 사람들만 나오면 주목도가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신분이 불확실하거나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 일반인을 출연시키면 방송에서 사고를 치거나 사전 합의하지 않은 언행을 할 확률이 높지 않겠나”라고 반문하며 “이런 사람들은 방송 출연 이력을 사기 등 위법 행위에 악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주장했다.

남 PD는 “대기업이나 전문직 종사자는 신원이 확실한데다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조심하는 경향이 있다. 제작진도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평균이라는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특수한 경우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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