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라면업계 찾는 정부 ‘두드리면 내릴 것이다?’…기업들은 난색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11.2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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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안정 협조” 요청하면서 밀 가격 하락 강조
7월 인하에도 업계 3분기 영업이익 100% 이상 증가
“추가 인하 계획 없다”지만 정부 실태조사 변수?

정부가 식품업계와의 간담회 횟수를 늘리고 있다. 물가 안정을 위해서다. 최근 2주 사이엔 ‘애로사항’을 청취한다는 명목 하에 두 차례나 기업을 직접 찾았다. 정부가 찾은 기업은 모두 라면 기업이다. 정부는 그러면서 밀가루 가격 하락세를 꼭 집으면 사실상 인하를 유도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미 지난 2분기에 인하했다는 이유로 묵묵부답이다. 하지만 양을 줄이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 실태조사에 돌입한 정부가 결과를 앞세워 인하 압박 수위를 올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라면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라면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 찾아 “국제 밀 가격 전년 대비 30% 하락”

27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3일 삼양식품을 찾아 물가안정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지난 15일 농심 방문 이후 약 8일 만이다.

정부는 이들 기업을 찾은 자리에서 가격 안정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강조하고 나섰다. 제분업계 지원을 위해 제분용 밀 구매자금을 융자 지원하는 사업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했고, 라면의 원료 중 하나인 식품용 감자·변성전분에 대해서도 할당관세 인하를 내년까지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런 가운데 눈에 띄는 점은 정부가 밀 가격 하락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농심과 삼양식품 방문 보도자료에서 “라면의 주원료인 밀 국제가격(선물)과 제분용 밀 수입가격은 모두 하락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라면 주원료인 밀 국제 선물가격은 지난해 11월 t당 298달러에서 점차 하락세를 보이며 지난 20일 200달러를 기록했다. 1년 만에 33%, 평년 대비 15.3%가 떨어진 것이다. 지난해 10월 t당 454달러에 달하던 제분용 밀 수입가격도 지난달에는 324달러까지 떨어지는 등 전년 대비 28.6% 하락했다.

흡사 지난 6월 모습과 유사하다. 당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9, 10월 (라면값이) 많이 인상됐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1년 전보다 약 50% 내려갔다”며 “기업들이 밀 가격 하락에 맞춰 적정하게 판매가를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라면 업계는 지난 7월부터 일부 품목에 대해 인하를 결정한 바 있다.

업계는 정부의 이번 연쇄 기업 방문에 대해 사실상 가격 인하 압박으로 보고 있다. 이미 한 차례 가격을 내린 상황에서 인상 계획을 밝히지도 않았는데 기업을 찾은 것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라면 ⓒ연합뉴스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라면 ⓒ연합뉴스

가격 내렸는데도 3분기 영업이익 세자릿수 증가

일각에선 지난 7월 가격 인하에도 3분기 호실적을 거둔 라면 업계에 인하 여력이 충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농심은 3분기 매출이 8599억원, 영업이익은 557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했을 때 매출은 5.3%, 영업이익은 103.9%나 증가했다. 삼양식품(434억원)과 오뚜기(830억원)의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24.7%, 87.6%가 뛰었다. 가격 인하에도 충분한 수익을 내고 있고 밀 가격도 떨어진 상황에서 추가 인하 여력이 충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라면 업계는 영업이익 증가의 상당 부분이 해외 매출에서 발생했고,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저조했던 전년도 실적의 기저효과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정부의 추가 인하 압박에는 응하지 않을 방침을 세웠다. 실제로 삼양식품은 “제품 가격 인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고, 농심 역시 현 가격대를 유지하겠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선 ‘슈링크플레이션’ 실태조사가 변수라고 보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을 소비자 기만 행위라고 비판한 정부는 소비자원을 중심으로 관련 73개 품목 조사를 이달 말까지 진행한다. 결과는 12월 초 발표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조사 결과 슈링크플레이션의 정도가 심한 업체에 대해 더욱 인하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라면 업계에선 농심이 지난 9월 양파링 용량을 84g에서 80g으로, 오징어집 용량을 83g에서 78g으로 줄였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한편, 오뚜기는 이날 대표 제품인 분말 카레와 케첩을 비롯해 3분카레 등 가정간편식(HMR)의 편의점 가격을 오는 1일부터 12~17% 인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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