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시론] ‘건국전쟁 신드롬’이 반가운 까닭
  •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3 17:00
  • 호수 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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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정치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21일 누적 관객 수 80만 명을 돌파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영화관 모습 ⓒ 연합뉴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정치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21일 누적 관객 수 80만 명을 돌파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영화관 모습 ⓒ 연합뉴스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있다. 김덕영 감독이 3년 준비 끝에 올린 《건국전쟁》이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면모를 풍부한 자료와 증언에 입각해 깨트리는 내용이다. 전국 모든 극장에서 상영 도중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고 영화가 끝나면 기립박수가 쏟아진다. 관객들은 한동안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반응은 한결같다. “잘못 알고 있었다” “너무 고맙다” “죄송하다”.

1995년 조선일보에 1년 동안 ‘거대한 생애 이승만 90년’이라는 시리즈를 연재했던 필자로서는 이 반응들이 오히려 반갑다. 1995년이면 반(反)이승만 분위기가 극에 달했을 때다. 왜 이승만 대통령은 이처럼 처참하게 역사 속에서 배제된 것일까?

북한은 지속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괴뢰’라 불렀으니 그렇다고 치자. 실은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 있을 때부터 동지회와 국민회 갈등을 빚었다. 대체로 세력은 국민회가 9:1로 압도적 우위를 갖고 있었다. 국민회란 안창호가 중심이 된 교민단체로 본토에서 지속적으로 이승만과 충돌했다. 이 단체의 핵심 인물인 김원용이란 사람이 《재미한인 50년사》라는 책을 썼는데 독립운동 기간 이승만의 모든 부정적 묘사는 이 책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국내에서 흥사단으로 이어졌는데 이승만 집권 기간에 흥사단 세력은 탄압을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자 지식인 사회에 영향력을 가진 흥사단 세력은 줄곧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다음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65년 하와이에서 숨을 거두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승만이라는 이름이 갖는 반일(反日) 상징을 부담스러워했다. 또 박정희 시대는 발전과 효율을 강조하면서 1950년을 ‘가난’과 ‘무능’의 시대로 묘사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불가피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박정희 시대는 이승만 재임기간 12년을 가난과 무능, 두 단어로 요약한 것이다. ‘건국’과 6·25전쟁이라는 ‘국난 극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리고 80년대를 맞았다. 전두환 대통령 등장 과정에서의 비극적 사건들로 인해 젊은 학생들은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려 했다. 대학가에 혁명 구호가 나붙었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승만 혹은 이승만이 이룬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해야 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책이 그 역할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자부심이 너무 커서 대통령이 되고서도 이승만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적이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김대중 대통령은 제2건국을 내세웠다. 앞시대를 부정하는 악순환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대한민국 제1호 대통령은 설 자리가 없었다.

다행히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 견해를 처음으로 표명했다. 기념관 건립사업도 추진 중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나온 《건국전쟁》이 예상과 달리 폭발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 국민 중에 대한민국 탄생이 비극이 아니라 기적이었음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춘추 시대 제나라 재상 관중(管仲)은 자기가 모시던 공자(公子)가 죽었는데도 그 공자를 죽인 제나라 환공 밑에 들어가 제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다. 공자(孔子) 제자들은 관중이 어질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공자는 이렇게 제자들을 비판했다.

“관중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이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했을 것이다.” 오랑캐가 됐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해야 할 때다. “이승만 대통령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이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왕조에서 신음했을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br>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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