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덕분’에 ‘윤석열 때문’에 화약고 ‘관리’한 한동훈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3 14:00
  • 호수 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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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공천 화약고 65석 영남권은? “물갈이 대신 안정”
경선 주호영·김기현 귀환할까…윤두현-최경환, 홍석준-유영하 대결 주목
윤석열·한동훈, 또 다시 공천 내전 벌어지면 공멸이라는 인식 공유

“조용하다.” ‘한동훈표’ 22대 총선에 대한 국민의힘 공천에 지금까지의 정치권 평가는 대체로 일치한다. “노이즈(잡음)를 최소화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잘하고 있다”(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는 말처럼 무리수가 없으니 갈등도 없다는 데 방점이 찍힌 호평도 있고, “밋밋하고 맹물 같은 공천”(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과 같이 혁신공천을 위한 갈등이 없으니 감동도 없다는 비판도 있지만, 순탄하게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데는 평가가 일치한다. 여권 내부에서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 국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방점을 찍고 ‘관리’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월23일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만나고 있다. ⓒ 연합뉴스
1월23일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만나고 있다. ⓒ 연합뉴스

“감동 없는 공천” 비판해도 무난한 공천이 더 효과적 판단

한 위원장의 ‘관리의 공천’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곳이 바로 영남권이라는 평가가 많다. 당선에 유리한 보수의 텃밭이니만큼 본선보다 예선이 치열한 지역이 바로 영남 지역이다. 그래서 영남권 공천은 늘 ‘화약고’로 불렸다. 정치 신인들을 통한 세대 교체를 하려는 당 지도부와 탈당은 물론 무소속 출마라는 배수의 진을 친 현역 의원들 간 극심한 갈등이 총선 때마다 반복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부산·울산·경남(PK)과 대구·경북(TK) 모두에서 예상만큼 내홍은 심하게 터져 나오고 있지 않다. 거물급 정치인들의 이탈과 반발은 아직까지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무난한 공천이 진행 중이다. 지역 정가가 숨죽이며 지켜보던 중진 주호영 의원과 김기현 의원은 모두 자신이 출마한 지역구에서 경선을 치른다. 

한 위원장은 ‘무난한 공천’, 특히 영남권의 조용한 공천 관리를 위해 몇 가지 정치적 기술을 사용했다. 우선 윤석열 대통령의 40년 지기로 알려진 석동현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컷오프(공천 배제)시킨다는 내용을 첫 공천 결과로 발표하면서 이번 총선 공천에서 ‘윤심(윤 대통령 의중·尹心) 논란’을 사전 차단했다. ‘용산(대통령실)의 후광’이 ‘한동훈표 공천’에서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초반에 갖게 했다. 여기에 김경율 비대위원과 김성태 전 의원의 불출마는 물론 부산에 출마하려던 김무성 전 대표 등의 불출마를 이끌어냈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 외에도 나눠줄 자리가 많다는 집권여당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평가다. 

이후 PK에서는 서병수(5선)·김태호(3선)·조해진 의원(3선) 등 ‘중진들의 험지 차출’, TK에서는 ‘시스템 공천(경쟁력)에 근거한 경선 원칙’이라는 수를 활용하면서 내부 반발과 커지는 원심력을 제어했다. 현역들의 교체 비율이 떨어지면서 ‘세대 교체’ ‘정치 교체’라는 당초의 기조와는 멀어졌지만, 물갈이라는 반작용이 클 수밖에 없는 방법 대신 갈등을 줄일 정치적 공간을 찾았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023년 7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75주년 제헌절 경축식에 참석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023년 7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75주년 제헌절 경축식에 참석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野 공천보다 낫다는 ‘비교우위’ 노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한 위원장은 물갈이 비율이 높은 ‘혁신공천’ 대신 잡음을 최소화하는 ‘무난한 공천’에 방점을 찍고 있다. 특히 화약고 TK에서 그렇다. 의도됐고 계산된 결과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이재명 덕분’이다. 정치, 특히 선거는 상대적이다. ‘비교 우위’가 중요하다. 내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보다 못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게임이 바로 선거다. 더불어민주당 공천 양상이 계파 갈등 등으로 심각한 내홍을 빚자 한 위원장은 당초 예상됐던 ‘용산과 각을 세우는 공천’ 대신 ‘민주당보다 우위에 서는 공천’으로 방향을 틀었다. 민주당은 친명(親이재명)계와 친문(親문재인)계가 정면충돌 내전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만큼 텃밭이자 화약고일 수 있는 영남권 공천을 안정적으로 관리만 하면 총선 판세에 무엇보다 중요한 공천 국면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실제 최근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은 오르고, 민주당은 하락하는 추세가 포착되고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 위원장이 연일 ‘시스템 공천’을 강조하고 있는 데도 다중 포석이 깔려있다고 한다. 이재명 대표의 사천(私薦) 공천 논란을 계속 환기시키는 동시에 내부적으로 컷오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비주류 세력 등에게도 ‘이탈’ 대신 본선 경쟁력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시스템 공천 안에서 ‘경선’에 임하라는 신호를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설사 공천을 받지 못한 일부가 반발하더라도 시스템 공천이라는 기준점만큼은 흔들리지 않게 해 당 안팎의 여론이 출렁이지 않게 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고 한다. 한 위원장과 가까운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 위원장은 국민의힘의 시스템 공천이 민주당보다 우위에 있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게 총선 승리 전략”이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이 공천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는 또 하나 이유는 ‘윤석열 때문’이다. 한 위원장이 등판해 ‘이재명 대 한동훈’ 구도가 만들어졌지만, ‘정권 심판론’이라는 절대적인 구도는 여전히 이번 총선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여전히 30%대에 갇혀있다. 만약 공천 국면에서 파열음이 크게 터져 나온다면 한 위원장은 사실상 당 안팎 모두에서 전쟁을 치러야 한다. ‘초유의 ‘윤석열-한동훈 대충돌’로 매를 먼저 맞은 효과’(김민하 정치평론가)로 충돌 대신 서로 조율하는 공천 국면이 연출되고 있다는 풀이도 나왔다. 

여기에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50억 클럽 특검) 재표결을 의식해 공천 국면을 관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쌍특검법 재표결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 공천에서 탈락한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이 ‘반란표’를 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여전히 한 위원장은 ‘김건희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총선을 치르고 있다. 또 컷오프돼 탈당하는 의원들을 상대로 ‘이삭줍기’를 노리는 개혁신당 등 제3지대 신당의 존재도 의식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 “감동 없는 공천”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공천 파동’보다는 ‘무난한 공천’이 현재 상황을 돌파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내부적으로 영남권 판세를 절대적 우위로 본다. 25석이 걸린 전통의 텃밭 TK는 물론 40석의 PK에서도 ‘싹쓸이’에 가까운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TK에서는 무소속 최경환 후보의 강세를 제외하면 변수는 없다. PK 중에는 전통적으로 공단 노동자가 많이 거주해 진보정당이 강세를 보이는 울산 북구와 민주당 현역 의원이 있는 부산 3개 지역구를 빼고는 확실한 우세라고 본다”고 영남권 판세를 분석했다. 반면 민주당의 분석은 다르다. 부산에서만 지금의 두 배인 6석 이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엑스포 유치 참패로 여론이 여권에 좋지 않고, 장제원 의원(사상·3선)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하태경 의원(해운대갑·3선)도 떠나 해볼 만하다는 게 주요 근거다.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연합뉴스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연합뉴스

“영남 싹쓸이 노려” vs “부산에서 3석 더”

TK에서 국민의힘의 고민은 ‘옛 친박 좌장’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무소속으로 출마한 경북 경산이다. 최 전 부총리가 여론조사 등에서 연일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만큼 경쟁력 있는 여당 후보를 서둘러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중량감 있는 최경환 전 부총리를 상대하려면 결국 현역인 윤두현 의원을 등판시켜 집권여당 프리미엄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역과 중앙 모두에서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여권 내부적으로 TK 공천에서 가장 긴장도가 높았던 지역은 주호영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대구 수성갑이었다. 만약 수도권 험지 차출 여론이 높았던 주 의원에 대해 컷오프라는 결과가 나오면, 지역에선 “무소속 출마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만큼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상환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과의 경선이었다. TK에서 주목도가 높은 또 하나의 지역은 재선 도전에 나선 홍석준 의원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리는 유영하 변호사가 맞붙는 대구 달서갑이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최경환 전 부총리에 대해서는 어떠한 직간접적인 지원에도 나설 뜻이 없지만 유 변호사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엄호와 지원에 나선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PK에서는 울산 남구을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울산시장 출신의 대결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울산 남구을에서는 김기현 전 대표와 박맹우 전 의원이 붙는다. 두 사람은 모두 지역구 국회의원과 울산시장을 지냈다. 4년 전에도 두 사람은 경선을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전직 대표도 경선을 치르는 시스템 공천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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