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레지던트들을 병원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쓴소리 곧은소리]
  • 박기영 순천대학교 교수, 전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3 16:00
  • 호수 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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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이후 19년간 동결된 의대 정원 이번에는 반드시 늘려야
소아청소년·산부인과·심뇌혈관 분야에 특별예산 투입 조치를

지금 한국은 의료대란을 겪고 있다.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연 2000명씩 증원하겠다는 정부 정책에 반발해 전국의 병원에서 수련 중이던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집단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정부 자료에 의하면 2월21일 기준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가 9275명으로 전체의 74.4%다.

정부는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했다. 업무개시명령에 불복하는 불법 집단행동 주동자는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재판에 회부하겠다고 강조했다.

우리 모두는 인간다운 삶의 상당 부분을 의료에 의존하고 있다. 그만큼 의료정책은 매우 중요한 국가의 핵심 정책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헌법 제36조 제3항에서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국가의 보건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누가 전공의들을 병원에서 벗어나게 했는가? 이는 지난 20년간 의료개혁 정책을 제대로 논의하지도 못한 채 방치한 정부, 의료계, 시민사회단체, 학계 모두에 책임이 있다.

첫째로 의과대학 입학 정원은 반드시 증원되어야 한다. 20년 전에 비해 인구 증가. 국민소득 및 생활 수준 향상, 의료기술 발전 및 고령화 추세 등 의료 수요가 급격히 팽창한 것에 비해 의대 정원은 2006년부터 19년간 3058명 그대로 멈췄다. 1998년 3507명에 비해 449명이 오히려 감소했다.

2월19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가 사직서를 들고 있다. ⓒ 연합뉴스
2월19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가 사직서를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응급실 뺑뺑이’ 막는 별도 정책 필요

그 결과 소아청소년과의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 의료 공백 현상과 부실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지방에서 서울로 향하는 새벽 KTX는 환자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의료의 진료 분야별 불균형과 지역별 불균형은 매우 심각하다. 헌법에서 규정하는 보건의무이기에 의료인 수를 국가가 면허로 관리하고 있다. 국가의 관리제도인 의사면허가 집단의 인원 확대를 차단하는 방패막이로 사용되거나 기득권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 적절한 인원을 공급할 수 있도록 국가는 관리 의무가 있다. 국민의 의료 수요 확장에 따른 의과대학 정원 확대는 국가의 책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통해 의료인 양성을 확대하려는 정부의 정책과 역할을 적극 환영한다.

두 번째로는 의료의 불균형과 지역 소외를 해소하기 위한 세부적이며 정교한 장·단기 정책이 병행되어야 했다. 의료 불균형의 심각성을 지적하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불균형이 지적될수록 의료는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 일부 인기 분야와 수도권에 더욱 집중되고 있다. 특히 수도권 대형병원을 비롯해 국립의과대학조차도 대형 분원 만들기와 병원의 영리 확대에 몰두하면서 의료인과 의료시설의 불균형은 더욱 심각해졌다.

우후죽순으로 확대되고 있는 대형병원 분원은 지방에서 양성된 의료 인력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의료 수요가 수도권으로 몰릴수록 지방의 의료 상황은 더욱 열악해지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 지방 병원은 환자 수가 감소하면서 경영의 압박을 받기도 한다.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심뇌혈관 등 수익성이 낮은 진료 분야를 폐쇄하기도 한다. 이러면서 지역의 중증진료, 필수의료 분야가 점차 무너지고 있었다.

헌법에서 정한 국민에 대한 국가의 보건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무너져가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려내기 위해 정부는 필수적인 단기 처방을 취해야 한다. 일부에 편중된 의료 인력과 인프라를 전국 지역과 필수 분야로 분산시킬 수 있는 단기적인 투자를 시급히 실시해야 한다. 합리적인 의료체계를 유지하고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은 국가의 지속 가능한 인구구조를 유지하는 것과 지역균형발전에 필수적이다.

한국은 2023년 합계출산율이 0.72명이다. 이는 전 세계에서 상상 불가능한 수치라고 한다. 합계출산율은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될수록 더욱 낮아진다. 미국의 인구학자조차도 한국이 없어질 것 같다고 걱정했다. 한국의 미래를 지켜내는 특단의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증원된 지방의료 인력, 계속 남아있게 해야

막연하게 몇 년 후에 예상되는 수십조원 단위의 금액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당장 시행할 수 있는 국가의 재원을 동원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의료수가 조정 및 지원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패키지 법안과 의대 정원 증원을 같은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했다면 지금의 이러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공의들은 병원으로 돌아오고 관계자들의 합리적인 논의가 다시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총선 공약으로 ‘저출생대응특별회계’를 발표했다. 정부는 현재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기금과 특별회계를 활용해 현재 배출되거나 혹은 불균형하게 집중되어 있는 의료 인력을 분야별, 지역별로 적절하게 분산배치하도록 단기 처방을 통해 예산 투자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은 의료 불균형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2000명 증원의 적절성을 재검토해야 한다. 정부도 밝혔듯이 의사 인력을 2000명씩 늘린다 하더라도 필요인력으로 산정한 1만 명이 채워지는 것은 2035년이다. 이렇게 인력을 증원해 1만5000명 이상이 증원된 일정 시기 이후에는 의사 인력이 초과될 텐데 이를 대비해 정교하게 증원 계획을 수립했어야 한다.

또한 증원된 의료 인력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역의료 정책을 통해 지금부터 정립해 나가야 한다. 대입의 지역균형인재 전형제도를 면허 요건이나 근무연한 제한 등과 연동시켜 필수의료 인력이 지역에 남도록 해야 한다. 졸업 후 많은 의료인이 수도권으로 몰린다면 의료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또한 교육 여건도 고려해야 한다. 의과대학 교육은 다른 어떤 교육보다 실습이 중요하다. 예전에 졸업 정원제가 갑자기 시행되면서 정원 30%가 늘었을 때 의대 교육에 어려움이 매우 컸다고 한다. 현 교육 여건으로는 2000명 증원을 갑자기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넷째로는 마치 의료의 지상과제가 영리성 확대인 것처럼 일부에서 왜곡되기도 했다. 국민 부담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의료보험 수가 시스템도 점진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또한 중증진료와 상급종합병원 이용 등 의료전달체계도 점진적으로 정립하면서 의료의 공공성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다섯째로는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대정부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단체가 아니다. 전문성과 현장성을 살려 정부 정책에 대해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협의하는 대의기구가 되어야 한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기영 순천대학교 교수·전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
박기영 순천대학교 교수·전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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