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 배아도 사람” 판결에…美 ‘대혼란’
  • 김민지 디지털팀 기자 (kimminj2028@gmail.com)
  • 승인 2024.02.2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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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 “냉동 배아 폐기 사실상 불가능해져”
생식권 논쟁에 ‘새로운 장’…백악관 “예상된 혼란” 비판
난임치료병원에 보관 중인 냉동 배아 ⓒAP=연합뉴스
난임치료병원에 보관 중인 냉동 배아 ⓒAP=연합뉴스

냉동 배아도 ‘사람’이라는 미국 주(州)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체외 인공수정(IVF)을 둘러싼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21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는 앨라배마주 대법원에서 지난 16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냉동 배아도 어린이에 해당하며, 이를 폐기할 경우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판결 영향으로 앨라배마주의 난임치료병원들은 난임 부부가 받는 IVF 시술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심을 하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일반적으로 IVF 시술은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다수 난자를 채취해 인공 수정한다. 이렇게 만든 배아 여러 개 가운데 일부만 자궁에 이식하고 나머지는 첫 시도가 실패할 가능성에 대비해 냉동 보존한다.

문제는 임신에 성공한 뒤 남은 냉동 배아의 처리 방안인데 앨라배마주 법원이 냉동 배아의 폐기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WP는 전했다.

앨라배마주 최대 난임치료병원의 의사인 매미 매클레인은 “지금 앨라배마 판결대로라면 환자도 의사도 난임치료센터도 배아를 냉동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병원들이 앨라배마주에서 IVF 시술을 지속하더라도 환자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할 수 있다.

의사가 한 번에 여러 배아를 만들어 냉동 보관하면 IVF 시술이 실패해도 냉동 배아를 이용해 재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냉동 배아가 없을 경우 IVF 시술을 할 때마다 새로 난자를 채취해 수정해야하기 때문이다.

이 판결은 현재 앨라배마주에만 해당하지만 앞으로 다른 주에까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1년 미국에서 9만7128명이 IVF를 통해 태어났으며 자국 내 IVF 시술병원은 453개가 있다.

전국여성법률센터에서 연방정부의 낙태 정책을 담당하는 케이티 오코너는 “병원과 의사들이 앨라배마에서 난임 치료를 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할 것”이라며 “낙태 반대단체들이 다른 주에서도 유사한 판결을 끌어내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낙태 반대단체들은 이번 판결을 지지하고 있다.

낙태 반대단체 ‘라이브 액션’을 설립한 릴라 로즈는 “페트리 접시에서 아이들을 마음대로 만들고 다시 마음대로 파괴하는 실험에 사용하고 있다”면서 “인간을 얼음 속에 계속 둬서도, 파괴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로 2022년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뒤 불거진 낙태권에 대한 논쟁이 더 확대될 소지가 있다.

WP는 “이번 판결이 생식권을 둘러싼 논쟁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며 “낙태할 권리를 주장하는 단체들이 또 타격을 입었다”고 평가했다. 생식권은 여성이 낙태를 포함한 출산 관련 결정을 자유롭게 내릴 권리를 뜻한다.

공약으로 낙태권 보호를 제시한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판결에 반발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전날 기자들에게 “우리는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를 뒤집어서 가족들이 내려야 할 가장 사적인 결정들을 정치인들이 명령하도록 했을 때 이런 종류의 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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