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밥그릇’을 위해 파업하는 게 아니다”
  • 류옥하다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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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놀음에 묻혀 한국 의료의 구조적 문제와 논의 가려져”
“나와 동료들은 사태가 끝나도 전공의로 돌아가지 않을 것”

나는 필수의료 사직 전공의다. 먼저 ‘의대 증원’이 찬반 논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 싶다. 숫자놀음에 묻혀 한국 의료의 구조적 문제와 논의가 가려지고 있다. ‘정말 의사 수는 부족한지’ ‘왜 전공의들은 사직밖에 방법이 없었는지’를 짚어보는 것이야말로 이 문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창이라 생각한다.

정부의 주장대로 의사 수가 정말 부족한가? 소아청소년과를 예로 들어보자. 2000년에서 2022년까지 소아과 환자 수는 990만에서 590만으로 감소했다. 반면 소아과 전문의 수는 3375명에서 6222명으로 늘어났다. 의사 ‘숫자’는 부족하지 않았다. 숫자에 묻혀 이들이 소아 응급, 소아 외과에서 일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는 외면되었다.

의사들이 3월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정부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의대 증원은 총선을 노린 ‘포퓰리즘’

의료에 대한 이해도 문제 해결 의지도 없다

예로, 영국은 한 해 의사에 대한 ‘기소’가 1~2건에 이르지만, 한국은 하루 1~2건에 달한다.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 법원에서 배상액이 10억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10년을 열심히 일해도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구조다.

정부는 ‘필수의료 패키지’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문제 해결책은 없었다. 패키지는 설익은 과일로 채운 번지르르한 선물 세트에 불과했다. ‘지역의료 강화’에 10조를 쓰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하며 특례법을 만들겠다 말했지만, 허점이 가득했다. ‘공제 보험’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부담은 필수과 의사들에게 지우며, 사망사고나 성형 등에 대한 면책도 빠져있었다. 무엇보다 아무리 좋은 법안을 설계한들 입법부에서 통과시켜준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단순히 숫자를 늘리면 필수의료로 ‘낙수’하리라는 발상은 터무니없다. 의사들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바이탈’이라 불리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등에 남는 이유는 ‘사명감’과 ‘자부심’이 전부다. 그 자부심이 밟히고, 사명감마저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10만 의사를 양성한들 아무도 필수의료로 ‘낙수’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110대 국정 과제에도 없던 일방적이고 성급한 ‘2000명 증원’을 외쳤을 때,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에 의료에 대한 어떠한 이해도, 문제 해결 의지도 없다는 것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근시안적으로 ‘총선’을 노린 ‘포퓰리즘’ 정책이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인 류옥하다씨가 2월29일 오후 1시께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는 모습 ⓒ시사저널 정윤경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인 류옥하다씨가 2월29일 오후 1시께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는 모습 ⓒ시사저널 정윤경

주위 동료들은 이 사건이 끝나도 전공의로, 필수의료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부로부터 모멸감을, 또 이 정책의 결과가 될 의료 영리화를 예견하지 못하고 정부 논리를 좇아 마구잡이로 화살을 쏘는 여론에 깊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나와 친구들은 ‘밥그릇’을 위한 ‘파업’을 하는 게 아니다. 주 120시간 노동하며 200만원을 받는 의료 노예만 배출하려는 암담한 현실에 좌절했다. 의료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은 사라진 채, ‘숫자’로 모든 것을 메우려는 착상에 크게 충격받았다. ‘사직’ 말고는 그 어떤 선택지도 없기에 나는 병원을 떠났다.

류옥하다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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