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도 한동훈도 ‘신속 조사’ 사활…난감해진 공수처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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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사, 입국과 동시에 공수처에 ‘추가 조사’ 압박
‘때’ 아니라며 선 그은 공수처, 소환해도 안해도 곤혹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으로 수사받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3월21일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으로 수사받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3월21일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출국 11일 만에 전격 귀국했다. 공식 명분은 방산회의 참석이지만 4·10 총선을 앞두고 돌출한 대형 악재를 의식한 조치라는 평가다. 피의자와 여당으로부터 이례적인 '신속 소환'을 요구받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소환해도 문제, 안해도 문제'인 곤혹스런 상황이 됐다.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이 대사는 귀국 일성으로 혐의 부인과 동시에 '신속한 추가 소환'을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 대사는 일시 귀국 목적이 '방산협력 관련 주요국 공관장 회의'인 점을 강조하며 "체류하는 동안 공수처와 일정 조율이 잘 돼 조사받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수처가 수사 중인 직권남용과 관련해 "저와 관련해 제기됐던 여러 가지 의혹들에 대해서는 이미 수 차례에 걸쳐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렸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 대사는 입국을 앞두고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조사기일 지정 촉구서를 제출했고, 입국 직후에도 자신을 빨리 재소환 해 달라는 메시지를 내며 압박을 이어갔다. 

'피의자 이종섭'을 출국금지 했던 공수처는 예상을 깬 그의 호주대사 임명에 이어 자진 귀국, 신속 수사 요구까지 받아들며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공수처 관계자는 지난 19일 이 대사 소환과 관련해 "(소환 시기는) 수사팀이 제반 일정을 감안하면서 사건 관계인과 협의해 결정할 일"이라며 "수사라는 게 '속도를 높이자' 해서 100m 질주하듯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을 비롯해 공개적으로 이 대사에 대한 신속 소환을 압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수사 절차상 현재로서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공수처는 지난 1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과 국방부 조사본부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의 포렌식 작업을 아직 마무리짓지 못했다. 압수물 분석 이후 당시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들을 차례로 부른 뒤 윗선이자 핵심 피의자인 이 대사를 소환할 계획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그를 호주 대사로 임명하면서 순서가 꼬였다. 

이 대사 출국 직전인 지난 7일 공수처는 결국 그를 소환해 약 4시간 가량 약식 조사했다. 공수처가 이 대사를 1차 조사하면서 법무부는 그를 출국금지 해제 조치했고, 결국 공수처의 실익 없는 조사가 피의자 출국과 수사회피 명분만 안겼다는 비판이 커졌다.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3월21일 대구 달서구 윤재옥 대구 달서구을 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을 찾아 축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3월21일 대구 달서구 윤재옥 대구 달서구을 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을 찾아 축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대사가 입국하면서 한 위원장을 비롯한 국민의힘은 '즉각 조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워터게이트'에 버금가는 사안이라며 '즉각 구속'을 압박하고 있다. 

'키'를 쥔 공수처는 그러나 만성적인 수사 인력 부족에 지휘부 공백으로 인한 '대행 체제' 장기화까지 엎친 데 덮친 상황이어서 혼란 속 고심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총선까지 국내에 체류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대사를 소환한다 하더라도 현재로선 조사 실익을 기대하기 어렵고, 소환하지 않을 경우 수사 지연에 대한 공세를 불러들일 수 있다. 

만일 이 대사가 '자진 사퇴' 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되면 공수처도 조기 소환 부담을 덜 수 있지만, 이 대사가 입국과 동시에 쏟아낸 일성으로 볼 때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위원장은 이 대사 입국 당일인 21일 거듭 공수처를 압박하며 조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그는 "우리는 외교 결례를 무릅쓰고 대사를 귀국하게 했다"며 "정말 문제가 있었으면 빨리 조사하고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직 (이 대사 조사) 준비가 안 됐다면, 이건 공수처와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정치질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시끄럽게 언론플레이하고, 직접 입장문을 내는 수사기관을 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3월21일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이종섭 주호주 대사를 향해 사퇴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3월21일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이종섭 주호주 대사를 향해 사퇴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은 오는 25일부터 호주를 비롯한 6개국 주재 대사가 참석하는 방산 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가 급조된 정황과 특이한 현안이 없는 데도 작년과 달리 대면으로 진행되는 점 등을 지적하며 이 대사 입국이 정권 차원의 또 다른 '거짓·은폐' 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재명 대표는 "채상병 사건은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범죄가 범죄를 낳고 있다"며 "핵심 피의자를 권력을 이용해 대사로 임명해 빼돌리는 또 다른 범죄 혐의가 추가됐다"며 "해병대원 순직 사건 외압에 더해 이종섭 도주 사태, 또 하나의 중대 사건에 대해 의혹을 명확하게 밝히고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채상병 국조, 채상병 특검, 이종섭 특검, '쌍특검·1국조' 처리를 국민의힘에 강력히 요구한다"며 "민주당은 총선 전 본회의에 의원 전원이 참석해 '쌍특검·1국조'를 처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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