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창조한 ‘창조적 파괴자' 박정인 현대모비스 회장
  • 이철현 (leon@sisapress.com)
  • 승인 200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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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인 현대모비스 회장/국내 유일의 자동차부품 전문업체 ‘도약’ 일궈
박정인 현대모비스 회장은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그림자다. 1977년 현대정공(현대모비스 전신) 창업 때부터 정회장 곁을 떠나지 않고 보좌했다. 현대자동차로 말을 갈아탄 정회장은 과거 영지를 가장 믿는 심복에게 맡겼다. 그 때문인지 박회장은 전면에 나서지 않으려 한다. 자기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정회장에게 누가 될까 염려해서이다. 따라서 업무상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언론과의 인터뷰는 사양한다. <시사저널> 취재진도 회사 경영과 관련한 질문만 하기로 거듭 약속하고 나서야 지난 9월17일 박회장을 인터뷰할 수 있었다.

박회장은 2000년 11월 현대정공을 현대모비스로 개칭하면서 ‘창조적 파괴’를 단행했다. 현대정공은 당시 중공업 회사였다. 사업 영역도 고속철도 차량·방위산업·공작기계·자동차 등 여덟 가지나 되었다. “방만한 구조를 정리하고 회사 역량을 집중할 사업 영역을 찾아야 살아 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고속철도 차량 사업은 로템에, ‘갤로퍼’ 생산은 현대자동차에 넘겼다. 나머지 사업 영역은 분사하거나 관련 업체에 이양했다.

핵심 사업으로 정한 업종은 자동차 부품이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 애프터서비스 부품을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국내 최대 자동차 생산업체 두 곳에 부품을 납품하다 보니 사업 개시부터 눈에 띄는 경영 실적을 냈다. 현대모비스는 지금 현대차와 기아차에 자동차 부품과 모듈을 공급한다.
박회장 현대모비스를 국내 유일의 자동차 부품 전문업체로 키워냈다. 취임 이후 시가총액은 3조원 이상 증가했다. 또 1천4백억원 적자였던 경제적 부가가치는 지난해 2천1백억원까지 늘어났다. 괄목할 만한 경영 실적을 내면서 현대모비스의 위상도 올라갔다. 지금은 현대·기아차 납품 업체에서 탈피해 자립 성장을 모색할 정도로 컸다.

박회장은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 경영 효율을 높일 방법이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받아들이고 배운다. IT(정보기술) 열풍이 불자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화상회의 시스템을 도입해 정착시켰다. 박회장은 인터뷰 도중 따로 설치된 모니터 2대를 켜고 화상회의를 시연하면서, 시스템의 우수성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현대모비스 본사 직원들은 대부분 회장실에서 박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갖고 있다. 직원이 생일을 맞을 때마다 회장실로 불러 함께 사진을 찍어 선물로 준다. 결혼기념일을 맞이한 직원에게는 축하 엽서를 보낸다.

올해 12월 환갑을 맞는 박회장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전세계 자동차 제조업체에 현대모비스 부품과 모듈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관건은 기술이다. 지금까지 보쉬나 일렉트론 등에서 들여왔던 첨단 기술을 스스로 개발해 기술 자립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세계 자동차 기술의 메카인 미국 디트로이트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기술연구소를 세웠다.” 박회장은 또 첨단 기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가끔 문전박대를 당할 때도 있다. 하지만 박회장은 회사의 미래가 기술에 걸렸으므로 체면을 따질 계제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또 하나의 꿈은 현대모비스로 하여금 2010년 매출 13조원을 올리게 해 전세계 자동차 부품 업계 ‘톱10’에 올려놓겠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2010년 세계 자동차 업계 ‘톱5’에 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금까지 뛰어난 부품업체 없이 초우량 자동차 제조업체로 성장한 회사는 없다. 그런 면에서도 박회장은 정회장의 그림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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