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 검사 "노씨는 지금도 돈 걱정만 한다"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3.11.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뇌물 저축왕’ 등 공무원 6명 구속한 유 혁 검사/“상납 증거는 발견 못해”
‘뇌물 저축왕’ 노씨 등 현직 공무원 6명을 구속 기소하고 공사업자 6명을 불구속 기소한 울산지검 특수부 유 혁 검사(35)는 검사 생활 '3학년'째인 특수통이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의 취미는 망원경으로 별자리를 관측하는 것이다.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편지 글에 썼던 ‘눈사람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듯한 소장 검사다.

유검사는 미국 연수 1년을 마치고 특수부에 복귀한 뒤 이번 사건의 주임 검사를 맡아 대박을 터뜨렸다. 유검사는 2001년 12월에도 울산교육청 발주 공사 비리를 수사해 교육 공무원을 무려 11명이나 구속했다. 유검사가 칼을 휘두르면 해당 기관은 쑥대밭이 된다는 말이 울산 관가에 나돌 정도이다. 11월21일 울산지검 401호 검사실에서 유검사를 만났다.

수사에 착수한 계기는?

‘울산광역시 종합건설본부’는 업자들 사이에서 ‘울산종건’이라고 불릴 정도로 건설업체 못지않게 돈이 많고, 잡음과 비리가 심했다. 2001년 6월에는 부산지검이 정 아무개씨(뇌물수수죄로 징역 10년 확정) 등 전·현직 건설본부장을 구속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금품 수수 관행이 여전해 업자들로부터 원성이 높았다.

공무원이 받은 뇌물 전액을 몰수한 것은 처음이라는데.

통장에 뇌물 입금 금액이 그대로 나왔고, 노씨도 인정했기 때문에 증거가 확실했다. 노씨 자신과 차명 계좌 등 통장 7개에 분산해 예금해 놓은 3억4천여 만원에 대해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과 ‘범죄 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적용했다. 기소하기 전 몰수·추징 보전 절차를 거쳐 법원에 전액 몰수를 청구한 것은 처음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3년 동안 뇌물을 꼬박꼬박 저축하다니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울산종건 건축과 설비계장 자리는 몇 안되는 노른자위다. 관행으로 업자들이 뇌물을 갖다 바치니까 노계장이 뇌물을 재산 증식 수단으로 여긴 것 같다. 노계장이 나에게 ‘직장 잃고 가진 것 없는 신세가 되었는데 돈을 다 빼앗지는 말아달라’고 하더라. 노씨는 죄를 뉘우치지 않고 여전히 돈 걱정만 하고 있다.

노계장이 받은 돈을 고위층에 상납했거나 또 다른 계좌에 숨겼을 가능성은 없나?

뇌물 상납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노씨의 친인척 계좌를 다 뒤질 수도 없었다. 기술직 6급 계장 직책이 돈 받기 딱 좋은 조건이다. 공무원이 사무관급 이상 되면 남의 눈도 있고 해서 돈 받기를 꺼리는데, 계장들은 승진이 잘 안되니까 돈이라도 벌어보자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

업자와 공무원이 어떻게 돈거래를 하는가?

업자들은 보통 공사 금액의 3∼10%를 뇌물로 책정하고 세 차례에 걸쳐 나누어 준다. 한꺼번에 주지 않는 것은, 갑작스럽게 담당 공무원이 옮겨가 버리면 새로 온 직원에게 돈을 또 줘야하기 때문이다. 돈은 공무원이 설계도면이나 입찰 정보를 빼내주고 난 뒤 처음 준다. 실제 계약 체결 때 중도금을, 납품 완료 때 마지막으로 뇌물을 건넨다. 이런 뇌물 수수 때문에 관급 공사에서 불량 자재와 ‘삼류 KS 제품’으로 공공 건축물이 지어진다.

구조적인 관급 공사 비리를 막을 수는 없는가?

오죽하면 수사관들 사이에서 검찰이 아예 울산종건에 상주하자는 얘기까지 나왔겠는가? 울산만이 아니다. 서울 인근인 하남·일산·분당·부평도 공무원과 업자의 유착이나 공사 비리가 극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속적인 수사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