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9백만원이면 누구나 ''미인''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0.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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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계층 뛰어넘어 급속 대중화 3천9백만원이면 ‘초특급 미인’ 변신
3천9백만원이면 당신도 초특급 미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시사저널>은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가 제시한 수술 비용을 토대로 평균 시세를 추가 취재한 결과 이같은 계산을 얻어냈다. 물론 성형수술은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서울이냐 지방이냐, 강북이냐 강남이냐, 이름난 의사냐 햇병아리 개업의냐, 환자 개인의 신체 특성이 어떠냐에 따라 코 하나를 수술하는 데도 몇백만원씩 편차가 나는 것이 성형수술의 특징이다.

이에 따라 <시사저널>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격의 최저선을 기준으로 하여 성형 비용을 뽑아 보았다(아래 그림 참조). 곧 이목구비를 고치는 데 4백50만원, 얼굴형을 갸름하게 만드는 데 9백만원, 가슴을 확대하는 데 4백만원, 아랫배·허벅지·엉덩이 따위 전신의 지방을 빼는 데 천만원, 종아리를 날씬하게 만드는 데 2백만원, 주름을 없애고 피부를 곱게 다듬는 데 7백만원, 이밖에 옵션으로 보조개나 배꼽을 예쁘게 성형하거나 겨드랑이 또는 ‘비키니 라인’의 털을 제거하는 데 2백50만원 가량이 든다고 예상하고 이를 합산한 결과 3천9백만원이라는 비용을 산출해냈다. 평균 시세의 최대치로 계산하면 이 비용은 5천만원대로 뛰어오른다.

그러나 이는 전신을 손본다고 가정했을 때 드는 비용이다. 성형외과 의사들은, 특수한 용모를 제외하면 2천만원 안팎으로도 ‘드라마틱한’ 효과를 맛볼 수 있다고 장담한다. 젊은 여성들이 가장 많이 수술하고 또 수술하기 원하는 부위 ‘빅4’인 쌍꺼풀·코·얼굴 윤곽·가슴을 성형하고, 아랫배·허벅지 지방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형 미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번에 두 가지 이상 부위를 복합 성형할 경우에는 성형외과 대부분이 할인 혜택을 준다.

바야흐로 전국민 성형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한국에서 ‘미용 성형’이 대중화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성형은 교통 사고로 인한 상처나 선천적 기형을 바로잡기 위한 ‘재건 성형’과 아름다워지기 위한 ‘미용 성형’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 그로부터 불과 20년 남짓한 사이에 성형은 대중화를 넘어 일상화의 영역으로 바짝 다가서고 있다.
성형외과 전문의 이강원씨(이강원성형회과 원장) 말마따나, 성형은 이제 나이·성별·계층을 뛰어넘어 온 국민의 관심사이다. 신뢰할 만한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여러 표본 조사를 토대로 성형학계는 전체 국민 가운데 성형 수술을 경험한 비율이 10%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재건 성형 포함). 이런 상황에서 공중파 텔레비전 3사는 ‘텔레비전이 성형외과 영업사원이냐’는 비판 여론에 굴하지 않고 <성형수술에 대해 궁금한 것 다섯 가지> 같은 코너를 연일 내보내고 있다.

연예인이 데뷔하기 전 사진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네티즌 사이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올해 초 폐쇄되었지만 한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공포의 빨간 양말>을 필두로 수십 개 사이트가 오늘날 반듯한 용모로는 추측하기 어려운 연예인의 옛날 사진을 올려 놓고 ‘아무개가 성형을 했느냐 아니냐’ 논쟁을 부추기고 있다. 개중에는 ‘엽기방·쇼킹방·화들짝방·오마이갓방·뜨아아방’으로 연예인의 용모가 달라진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겨 놓은 사이트도 있다.

이들 사이트가 어느 정도 인기를 누리고 있는지는 한 운영자(대학원생)의 증언에서 드러난다. “새로 생긴 사이트가 네티즌의 눈길을 끌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연예인들의 옛날 사진을 이용하는 것이다. 나도 이 방법으로 개설한 지 1주일 만에 회원(단순한 방문자가 아니다) 1천5백 명을 확보했다.”

그렇다고 일반인이 연예인을 상대로 ‘관음증’만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 또한 욕망의 수술대 위에 거리낌없이 자신을 내던진다. 성형수술은 더 이상 젊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얼굴 윤곽 전문 클리닉’을 표방하는 성형외과를 찾아간 9월5일. 취재진은 얼굴 전체를 압박 붕대로 감싼 채 수술을 마치고 나온 한 남자와 마주쳤다. 벤처 기업을 경영하는 20대 ‘사장님’이라고 했다. 그는 억센 사각턱 때문에 상대방에게 쉽게 호감을 얻지 못하는 것을 고민하던 차에 추석 연휴를 앞두고 턱 축소 수술을 결심했다고 한다.

‘털 전문 병원’이라고 내세운 한 성형외과 진료 대기실에는 여자 친구와 함께 온 남자 대학생이 앉아 있었다. 반바지 아래 드러나는 무성한 다리 털을 여자 친구가 너무 싫어해 부분 제모술을 받으러 온 것이라 했다. 가슴 털을 심어 달라는 남성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성형외과 전문의 조성덕씨(조성덕성형외과 원장)의 말이다. ‘야성적인 남자’보다 ‘깔끔한 남자’를 좋아하는 신세대 여성의 취향에 따라 오히려 있는 가슴 털도 없애려 든다는 것이다.

나이 파괴 양상도 두드러진다.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단발머리 여성은 진료실에 앉자마자 ‘한 시간 뒤에 동창들과 약속이 있으니 빨리 (시술을) 끝내 달라’고 의사를 재촉했다. 그는 얼굴 주름을 펴 준다는 보톡스(Botox) 주사를 맞았다.

5분 뒤 그 여성은 양뺨에 주사 15대를 맞고 진료실을 떠났다. 그를 배웅하고 온 담당 의사의 말이 뒤통수를 친다. “환갑을 앞둔 할머니에요. 6개월 전 이마·미간·입가에 한바탕 보톡스 주사를 맞았죠.”

2∼3년 전부터 국내에 본격 보급된 보톡스 주사는 성형외과 문턱을 낮춘 일등공신이라는 평까지 받고 있다. 198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공인을 받음으로써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했다는 이 주사는 본래 통조림이 부패할 때 나오는 보툴리눔 균을 이용한 것. 곧 독소를 주입함으로써 얼굴 표정 근육을 선택적으로 마비시키는 것이, 이 주사가 주름을 펴는 원리이다. 보톡스 주사는 얼굴에 칼을 대지 않고도 ‘커피 한 잔 마실 짧은 시간 동안’ 간단하게 주름을 펼 수 있다는 강점 때문에 중년 이상의 남녀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고가(부위별 40만∼50만 원)인 데다 3∼6개월이면 효력이 사라진다는 제약도 젊어지려는 욕망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신세대는 신세대대로 새로운 성형 유행을 쫓고 있다. 이지함 성형외과&피부과가 1999년 초 전국의 10∼20대 여성 천 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성형수술을 하고 싶다는 응답자가 60%에 달했다. 이들이 가장 하고 싶은 성형수술은 안면 윤곽술(24%), 아랫배 지방 흡입술(22%), 쌍꺼풀 수술(17%) 순이었다. ‘얼큰이(얼굴이 큰 사람)’와 ‘뚱녀’를 가장 모욕적인 별명으로 생각하는 신세대에게 절대적인 미의 기준은 ‘CD롬만한 얼굴 크기’와 ‘슈퍼 모델처럼 깡마른 몸매’이다.
그러나 이른바 ‘얼굴을 작게 만들어 주는 수술’로 통하는 안면윤곽술은, 광대뼈나 턱뼈 일부를 잘라냄으로써 얼굴이 갸름해 보이도록 착시를 유도하는 것일 뿐 실제로 얼굴 크기 자체를 작게 만드는 수술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갸름한성형외과 박종범 원장의 말이다. 단 이들 뼈를 불과 1mm씩 잘라내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완전히 달라 보이는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흡입술 또한 ‘뚱녀’를 ‘슈퍼 모델’로 둔갑시키는 신통술이 아니라고 이강원 원장은 지적한다. 한 번에 빼낼 수 있는 지방의 양은 2천∼3천cc로 한정되어 있으므로 지방흡입술은 비만 치료술이라기보다 근본적으로 몸의 선을 잡아주는 수술이라는 것이다. 이 수술은 아랫배·허벅지·팔뚝처럼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해도 살이 잘 빠지지 않는 부위에 선택 적용할 때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성형이 이처럼 보편화한 데는 공급과 수요 양측이 맞아떨어진 측면이 크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처음으로 배출된 것은 1975년. 당시 23명이던 전문의 숫자는, 25년이 지난 2000년 현재 9백30여 명으로 불어났다. 특히 1990년대 중반부터는 전국의 의과대학이 해마다 100 명이 넘는 성형외과 전문의를 배출하고 있다. 전문의 아닌 일반의가 성형외과를 개업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성형 1번지’로 통하는 서울 강남구의 경우 1999년 현재 이곳에서 개업한 전문의가 93명에 이른다. 강남구에 사는 사람이 약 55만 명이니까 인구 6천 명당 1명꼴로 성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셈이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성형외과 사회에서도 대형화·전문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쌍꺼풀에서 유방 성형까지, 의사 한 사람이 온갖 수술을 백화점 식으로 도맡던 시대는 지나고 쌍꺼풀·털·얼굴 윤곽 전문 클리닉 식으로 수술 과목을 특화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고전적인 통념에서 벗어나 피부과·에스테틱·모발 관리 등을 겸하며 ‘미용 전문 종합 클리닉’을 표방하는 성형외과가 늘고 있는 것도 새로운 흐름이다.

성형을 대하는 소비자의 의식 또한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올 3월 결혼 정보 회사인 (주)듀오가 서울 및 6대 도시에 거주하는 20∼30대 남성 6백여 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미팅이나 맞선에 나가 만난 여성이 성형 미인임을 알았을 때 어떻게 반응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미혼 남성의 무려 79.8%가 ‘예전 모습에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는 응답자는 8.5%에 불과했다. “예쁘냐 아니냐라는 결과가 중요할 뿐, 맞선 상대방이 성형수술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는 남성은 거의 보지 못했다”라는 것이 이 회사 홍보팀 이상호씨의 말이다.

SBS가 방영하는 인기 오락 프로그램 <진실 게임>(연출 최영인PD)은 지난 8월4일 미인 4명을 등장시키고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 중 누가 ‘자연 미인’인지 알아맞히도록 했다. 당시 섭외를 맡았던 방송 작가 조명진씨는 이렇게 말한다. “신기할 만큼 성형 미인들은 당당했다. 성형한 사실을 한사코 감추려 했던 것은 옛날 얘기일 뿐 신세대들은 성형했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러움이든 자신감이든 그 어떤 감정조차 없는 듯이 보였다. 오히려 섭외하기 힘들었던 것은 자연 미인이었다.”
지난 8월20일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는 신종 지방흡입술을 시술할 여성을 인터넷으로 공모한 일이 있다. 천만 원에 이르는 수술비는 공짜이되, 수술 이전과 이후 바뀐 몸매를 수영복 차림으로 공개하고 수술 장면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한다는 조건이 붙은 공모였다. 이벤트를 주최한 고운세상성형외과도 처음에는 ‘어떤 여성이 자기의 살진 모습을 실명으로 공개하려 할까’ 고심했다고 한다. 결과는? 2주일 동안 무려 3백32명이 여기에 지원했다.

이들의 지원서를 살펴보면, 여성들이 왜 그토록 성형수술을 열망하는지 실마리가 드러난다. 점쟁이 충고에 따라 ‘살 빠지는 이름’으로 개명까지 했건만 다이어트에 연속 실패하고 취업에도 계속 낙방하고 있다는 20대 여성, 본래 낙천적인 성격이었는데 사춘기 시절 급격하게 살이 찐 뒤 대인 기피증에 자기 혐오 증세까지 생겼다는 여대생, 대학 교수가 되고 싶은데 살이 찌면서 슬럼프에 빠져 버렸다는 미용사.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외쳤다. “수술로 나의 삶을 바꾸고 싶다.”

조성덕씨(조성덕성형외과 원장)는 이같은 생각이 망상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뿌리 깊은 사람에게 이같은 열등감은 암과 같은 불치병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다이어트 경험을 토대로 박사 논문을 쓴 한설아씨(이화여대·여성학과)에 따르면, 여성이 이상적인 외모를 꿈꾸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 때문만은 아니다. 성별의 차이가 뚜렷한 사회에서 자기의 성별 정체성과 성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해서이다(<섹슈얼리티 강의> 동녘 펴냄). ‘아름답지 않으면, 날씬하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는 여자가 아닌 것이다.

앞서의 공모에서 뽑혀 지방흡입술을 시술받은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김미정씨(22·울산 거주 여대생)는 ‘예전에는 거울도 안 보는 여자였는데 요즘은 거울 소녀가 되었다’며, 수술 이후 몸매가 점차 자리를 잡아갈 뿐 아니라 자신감이 되살아나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물론 성형수술 범람이 외모 지상주의를 확대 재생산한다는 비판에도 일리는 있다. 더욱이 성형수술은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아 의료 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진료 과목 가운데 하나이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하지만 ‘돈만 있으면 예뻐지고 젊어지고 성공할 수 있다’는 대중 매체의 선동 앞에 초연할 수 있는 선남선녀란 많지 않다.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성형 미인임을 밝힌 김미소씨(연세대 학생)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 친구를 고를 때도 솔직히 외모가 맘에 들어야 성격도 알고 싶지, 외모가 별볼일 없으면 성격도 궁금하지 않다. 게으른 사람은 미남미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외모가 능력이자 자산이자 계급인 시대. 남녀노소 누구도 이같은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 문화 평론가 김미현씨는 ‘맘에 안 들면 고치면 된다’는 성형만능론에서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코드를 발견한다. ‘원래 내 것이란 없다. 단 무엇이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은 가상 현실에서 벌어지는 머드 게임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게놈 프로젝트로 상징되는 기술의 진보는 신성성에 대한 인간의 저항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성형에 도전하는 것은 제로섬 게임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김미현씨는 지적한다.‘절대적인 추(醜)’는 무너졌건만 미의 기준은 끊임없이 상향 조정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역설이다. 성형 미인은 또다시 결핍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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