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교 자금으로 한국 기업 북한 간다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0.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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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일본 수교 배 상금-북한 SOC 건설’ 삼각 고리에 얽힌 막후 스 토리 심층 추적
총선을 3일 앞둔 지난 4월10일 남북 양측이 정상회담 합의 사실을 전격 발표함으로써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결전을 앞둔 야당에게는 ‘악몽’일 수 있겠지만, 분단 반 세기의 단절을 뛰어넘을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민족사적 사건이라 할 것이다.

이 날 세종로 종합청사에서 박재규 통일부장관과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은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6월12∼14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시사저널>은 올해 초부터 시작된 남북 간의 비공식 접촉 과정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남북 경협사에 일대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해온 흔적을 포착했다. 올해 신년사에서 나온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경제공동체 발언과 베를린 선언, 북한 특수 발언 등은 이같은 물밑 구상에 토대를 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제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됨으로써 이같은 구상이 현실화할 날도 멀지 않게 되었다. 전격적인 남북 정상회담 발표에 맞추어 그동안의 물밑 구상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를 조망해 보았다.
“총선 후에는 중동 특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북한 특수가 있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내 한 언론과의 회견에서 언급한 ‘북한 특수’ 발언의 파장이 한풀 수그러들 무렵인 지난 4월5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일본을 방문했다. 2박3일간 진행된 정명예회장의 갑작스런 일본 방문에 대해 현대그룹측이 설명한 방문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일본어판 출판 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일본 재계 및 금융계 인사들과 양국간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룹측의 두루뭉수리한 설명을 재계나 언론계가 곧이곧대로 들을 리 만무했다. 특히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김윤규 현대건설 및 현대아산 사장 등 그룹내 대북 사업 주역들이 대거 따라나선 점을 들어 ‘현대의 대북 사업에 일본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정주영 명예회장 방일의 비밀

그러나 이런 해석으로도 여전히 미진하기는 마찬가지다.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사업이기에 거동조차 불편한 정명예회장이 직접 나섰어야 했을까. 물론 짚이는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 흐름을 고려하면 서해공단 사업을 떠올릴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최근 그룹 내부 동향까지 감안한다면 서울~신의주 경의선 복원 사업을 떠올릴 수도 있다.

‘북한이 현대그룹에 경의선 복원을 요청해 왔다’는 <시사저널>의 보도가 나간 직후 현대그룹 고위 관계자는 이 사실을 확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이 있다. 즉 북한이 현대에 경의선 복원을 요청해온 것은 몇 개월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북측이 요구해온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현재의 단선 구간에서 남북 사이에 단절되어 있는 부분을 연결하는 사업이다. 남측 구간에서는 문산~장단 12㎞, 북측 구간에서 장단~봉동 8㎞, 남북 20㎞가 현재 단절되어 있다. 북측이 당시 제안한 프로젝트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철로를 아예 하나 더 깔자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다시 말해 현재 단선으로 되어 있는 경의선을 복선화하자는 것이다.

철로 1㎞를 새로 놓는 데 드는 비용이 어림잡아 35억원 정도 소요된다고 하는데, 이런 계산에 따르면 약 4백89㎞에 이르는 경의선 전구간을 새로 놓는 데 1조 7천억원 정도가 필요하다.

현대측은 경의선 복선화라는 이 대역사를 북한 사회간접자본(SOC)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있는 듯하다. 물론 정부가 건설 비용을 대고 현대가 수주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천문학적인 비용 마련을 거들려는 현대측의 간접 지원 노력도 상정해볼 수 있다. 정명예회장의 갑작스런 방일을 이해하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일본의 아시아통화기금이 ‘종자돈’

그러나 정명예회장 방일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그림’을 눈여겨보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는 김대중 정부 이후 과거 어느 때보다 돈독한 관계가 되었다는 ‘한·일 글로벌 파트너십‘, 그리고 최근 김대통령의 ‘북한 특수론’의 실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담겨 있다. 기자에게 이 얘기를 전해 준 사람은 최근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러 서울을 방문한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이다. 그는 한·일 간의 경제 협력 관계 및 일본의 북한 정책에 해박한 인물로 김대통령의 북한 특수론과 일본의 대북 배상금 상관 관계에 대한 기자의 거듭된 질문에 어렵사리 다음과 같은 비화를 털어놓았다. 얘기는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본과의 월드컵 공동 개최가 확정된 이후 국내의 주요 도시가 월드컵 경기장 건설 붐에 휩싸였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이 IMF 구제 금융 상황에 빠지게 되면서 한때 경기장 건설 자금 마련이 난관에 부닥쳤다. 이때 일본은 ‘월스트리트 금융 자본이 주도’하는 IMF 체제에 반기를 들면서 AMF(아시아통화기금) 창설을 주창하고 나섰다. 결국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당시 일본은 AMF 기금으로 3백억 달러를 조성했고, 경제 위기에 허덕이던 한국 지원용으로 약 40억 달러 정도를 할당했다.

때마침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한국의 월드컵 경기장 건설을 위해 이 기금을 사용하자는 얘기가 한·일 양국 사이에 자연스럽게 오갔다. 하지만 일본 수출입은행이 언제든 사용이 가능하도록 별도 보관해온 월드컵 경기장 건설 자금은 이후 한국 경제가 회생하면서 그냥 묵히는 돈이 되고 말았다. ‘수교 자금 50억 달러+α’ 어떻게 쓰이나

1998년 박태준 당시 자민련 총재의 일본 방문 때 한·일 양국 사이에 이 자금의 새로운 활용 방안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남북 월드컵 분산 개최에 대비해 북한에 월드컵 경기장을 짓는 데 이 자금을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합의 과정에 월드컵 분산 개최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던 정몽준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이 깊이 관여했음은 불문가지이다.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는 AMF 자금으로 북한에 월드컵 경기장을 건설하자는 한·일 양국의 내부 합의에 바로 현재의 남북한과 일본 간의 3각 협력 구도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북·일 간에 국교 정상화 교섭이 본격 추진되고 있고, 교섭 타결 시점에 상당한 액수의 수교 배상금이 북한에 제공될 예정이다. 배상금 액수와 관련해 그동안은 백억 달러 전후가 될 것이라는 논의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지난해 9월 미·북한 베를린 회담을 전후한 시기에 대략 ‘50억 달러+α’ 선으로 조정이 된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자금이 지급되려면 양국이 수교에 합의해야 하고, 그러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하루빨리 경제 지원이 필요한 형편이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측으로부터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요청받고 있는’ 우리 정부도 당장 자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본으로서는 국내 여론 때문에 수교 이전에 북한을 지원하는 것은 명분이 없어 불가능하다.

바로 이때 북한 내에 월드컵 경기장 건설을 위해 준비된 이 자금이 3자 모두의 고민을 해결해줄 묘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이 자금은 원래 한국 지원용으로 조성된 것이었고,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내 여론을 설득할 수 있다. 북한 월드컵 경기장 건설은 사실 단순한 경기장 건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경기장이 건설되려면 그에 앞서 사회간접자본 건설이 필수이다. 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면 또 다른 사회간접자본 건설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고, 결국 AMF 자금 중 한국에 할당되었던 40억 달러 한도에서 한국 기업의 북한 사회간접자본 건설 진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주영 명예회장의 갑작스런 방일을 5월 말로 예정되어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앞선 재계 차원의 사전 정지 작업이라고 보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닐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5월 방일은 명목상으로는 7월에 오키나와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는 ‘G8 정상회담‘에 앞서 한·일간 의견 조율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북한과 정상회담 일정까지 합의한 김대통령이 일본과 나눌 대화의 핵심은 바로 대북 경협에 대한 한·일 양국 정부 간의 협력 체제 구축과 관련한 것일 수밖에 없다.

현재 남북한과 일본의 정계 및 외교 채널 사이에는 일본이 수교배상금을 북한에 지급하는 방식을 둘러싸고 치열한 ‘암중 모색’이 전개되고 있다. 현재 나오고 있는 얘기들의 진원지도 가지각색이다. 개중에는 ‘평양발’로 짐작되는 얘기도 있다. 최근 <한국경제신문>이 베이징발로 보도한 기사가 한 예이다. 이 신문은 지난 4월4일자 기사에서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지난 2월15일 권병현 주중 한국대사를 통해 우리 정부에 3년간 약 30억 달러 규모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요청하는 제안서를 보내왔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의 내용 중에는 북측이 요구한 사회간접자본 건설 내역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관심을 끌기도 했는데, 특히 눈길을 끈 부분은 한국의 사회간접자본 투자비에 대한 북한의 대금 지급 방식이다. 즉 ‘현재 일본과 교섭 중인 대일 청구권 자금 50억 달러로 (남측의) 투자비를 지급 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일본의 대북 배상금을 가지고 한국이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진출하는 구도가 성립하게 된다. 일본측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측이 이같은 요구를 먼저 했다’는 내용이 얼마 전 일본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보도된 바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신문>의 보도는 한반도 전문가들의 눈길을 크게 끌지는 못했다. 이 제안서를 보낸 북측 당사자가 조평통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조평통은 북한의 대표적 대남 공작기관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고, 따라서 국내 전문가들로부터 ‘제안의 신뢰성이 의심스럽다’는 혹평을 받게 되었다.그런데 최근 한·일 양국 사이에 이와 비슷한 논의가 진행 중임이 확인되었다. 이 논의의 핵심 역시 50억 달러에 이르는 수교배상금으로 한국의 대북 사회간접자본 투자비를 충당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의 한 대북 소식통은 ‘일본의 수교배상금 50억 달러가 현금으로 북한에 지급되는 게 아니라 이 비용을 담보로 한국이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담당하는 방안이 한·일 양국 간에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 등 안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한에 현금을 지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수교배상금을 제3국 은행에 공탁해 두고, 한국 기업의 북한 사회간접자본 건설 비용을 이 돈으로 변제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북한 소식통의 이같은 제보 내용은 앞의 일본측 전문가로부터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일본 전문가는 자금 지급 방식과 관련해 더 상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즉 북한과 수교 협상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일본측이 싱가포르나 홍콩의 은행에 50억 달러를 예치한다. 그러면 북한의 대외 무역을 담당하는 은행, 예를 들어 조선무역은행(대외 금융 업무를 전담하는 해외 담당 금융기관)이나 조선대성은행(권력기관의 무역 결제 업무 담당)이 이 제3국 은행과 ‘레뽀 관계’(Response의 일본식 표기. 송금 및 신용장 개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은행 간에 맺는 협정)를 체결해 비용을 결제하게 된다. 은행 간의 레뽀 설정은 비수교국 은행 사이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한·중 간에도 수교 이전에 이런 방식이 이용되었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하나는 과연 북한이 이런 방식을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북한으로서는 당연히 수교배상금을 현금으로 받아 자신들의 재량으로 사용하기를 희망할 것이고, 배상금이 남한 기업의 수익으로 흘러들어가는 것 또한 용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논의가 한·일 간에 존재한다 해도 북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에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어차피 일본이 배상금을 현금으로 지급하기는 국내외 여건 때문에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이 점에 대해서는 미국측 입장이 완강하다.

수교 배상금이 현금이 아니라 일본 기업에 의해 프로젝트 베이스로 지급될 예정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 기업에 비해 건설 단가를 훨씬 낮출 수 있는 한국 기업이 북한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맡는 것이 북측으로서도 이익이다. 또 정부 당국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북측은 이미 여러 경로로’ 우리 정부에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요청해 놓은 상태이다.

두 번째 의문은 일본의 태도이다. 과연 일본 정부가 수교배상금의 혜택을 한국 기업에 나누어주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대중 정부 이후 한·일 간에 형성되고 있는 우호적 분위기를 먼저 떠올릴 필요가 있다. 김대중 정부 들어 한·일 관계는 ‘역대 최상’이라는 평가가 일본에서도 나온다. 어업협정 문제 등 일부 삐걱댄 사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1998년 10월 김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과거사 문제가 일단 매듭지어졌고 문화 개방 등 양국간 현안이 거의 해소되어 가고 있다. 일본은 일본대로 ‘김대중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IMF 극복보다 한·일 관계의 실마리를 푼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김대중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분위기이다. 말 그대로 한·일 양국이 ‘글로벌 파트너십‘을 실험하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다.

한·일 관계의 새로운 양상이 수교배상금과 연동한 일본의 대북 진출 전략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그동안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는 일본 기업들이 대북 프로젝트를 제출하면 북한과 일본 정부가 이를 심사해 배상금에서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6년 ‘나진·선봉 국제 투자 설명회’에서 일본의 도요엔지니어링 사가 발표한 ‘가시마형 공단 개발 계획’이다. 나진·선봉의 우암공업지구에 일본 도쿄 연안에 있는 가시마 공단 형태의 공업단지를 건설하겠다는 이 계획은 철저하게 일본의 대형 종합상사들이 주도해 일본 기업 중심으로 추진된 것이다. 가시마형 공업단지 계획이 일본 기업 독자 진출 방식이었다면, 김대중 정부 이후 최근까지 이루어진 논의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한·일 분업형 진출 방안’이라고 할 수도 있다.
건설 분야 ‘북한 특수’ 가능할 수도

우선 수교 자금 규모는 정확하게 표현하면 50억 달러 +α이다. 여기서 50억 달러는 거의 확정된 금액이고 +α는 북한의 상황 변화에 따라 엔 차관이나 무역 금융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가 지급이 가능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액수도 상당할 것이다.

우선 지급되는 50억 달러 중 10억 달러 정도는 주로 인도적 문제 해결에 사용될 것이다. 즉 식량 문제 해결이나 농업 구조 개선, 비료 생산 등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것이다. 사회간접자본 건설은 주로 나머지 40억 달러로 하게 된다. 일본측이 생각하는 대북 사회간접자본 진출 방안은 1차적으로는 북한에 경공업 위주의 수출 주도형 공업단지 건설을 염두에 둔 것이다. 수출공단 조성과 유지에 필요한 사회간접자본 시설로는 통신 시설·도로·화력발전소 분야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이 단계에서 한국과 일본 기업은 컨소시엄형 분업 관계를 형성한다.

이미 한국과 일본은 일본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이 제3 세계에 진출할 때 다양한 형태로 협력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대북 진출에서도 이 모델이 적용될 것이라고 한다. 즉 일본 기업이 주로 설계나 엔지니어링 분야를 담당하고 나머지 토목 공사나 건설 등은 한국의 건설 업체가 맡게 된다. 토목 공사나 일반 건설에서는 한국이 비교 우위가 있을 뿐더러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일본 건설 회사들이 진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계산대로라면 한국 기업들, 특히 건설 회사들은 수교 배상금 50억 달러 중 거의 ‘40억 달러를 수주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구도가 성립한다. IMF 극복 과정에서 국내 경제 분야 중 유독 건설 분야가 아직껏 침체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감안하면, 중동 특수에는 못미치겠지만 ‘건설 분야의 북한 특수’는 가능한 일이다.

북한의 기간 산업에 대한 일본 종합상사의 본격적인 진출은 주로 +α자금을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이 경우 북한이 과연 어떠한 국가로 남으려 하는지가 관건이다. 북한이 국제 사회의 기대에 부응해 합리적인 국가 발전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α의 규모와 기간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 진출할 한국의 경협 자금으로 주로 일본측 자금을 언급한 것은 규모가 가장 크고 확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1998년 10월 김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김종필 전 총리나 박태준 총리 등 고위 정치인 그리고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재계 인사들의 대일 외교가 바로 이 점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김대통령의 방일 메시지인 ‘한·일 간의 글로벌 파트너십‘이란 사실 ‘대북 진출에서의 한·일 협력’을 의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 직후 이루어진 김종필 총리 방일에서 일본의 AMF 구상을 지지한다는 돌출 발언이 나온 것이나,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전경련과 일본 게이단롄(經團聯)간의 도쿄회의에서 ‘엔의 국제화와 AMF 구상 지지’ 및 ‘한·일 자유무역 지대 설정에 대한 공동 연구’ 등이 언급된 것도 바로 이때부터 한·일 간에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겠다는 막후 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한가지 빼놓아서는 안되는 것이 미국의 태도이다. 지난 4월10일 남북정상회담 발표 직후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는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 역시 지원하는 분위기였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미국은 일본의 배상금이나 국제 기관 공적 자금의 대북 진출에서 한국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측면에서 지원했다”라고 밝혔다. 앞으로 북한에 외국 원조 자금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북한 역시 남북 정상회담을 통과해야 서방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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