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갑을 두른 7인의 무법자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r)
  • 승인 2004.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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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억울하다” “무죄를 자신한다” “정치 검찰의 추태이다” <시사저널>이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의원 7명에게 입장 표명을 요청하자 돌아온 답이다. ‘차떼기’를 공모했다는 의원도, 공금을 횡령했
한결같이 제 눈의 대들보는 보지 않았다. 남의 눈의 티끌만 문제 삼았다. 억울하다고 했고, 무죄를 자신했으며, 정치 검찰의 추태라고 반발했다. 누구 하나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2004년 1월2일부터 5일까지 <시사저널>은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의원 7명에게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요청했다. 그 결과 돌아온 반응은 한결같이 위와 같았다.

세밑 12월30일, 대한민국 국회는 헌정사에 기록될 만한 또 하나의 획을 그었다. 100억원대 불법 자금 차떼기를 공모했다는 의원도, 자신이 설립한 대학에서 공금 100억원을 횡령했다는 의원도 불사조처럼 살아났다. 동료 의원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의원에게 든든한 동아줄을 내려주며 연대를 과시했다. 하지만 국회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범죄자의 ‘소도(蘇塗)’로 전락했다. 16대 국회는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통과율 제로를 기록했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7인의 불사조 가운데 최돈웅 의원(한나라당)이 단연 눈에 띈다. 최의원은 한나라당 불법 대선 자금의 드러난 주모자 격이다. 그는 SK를 비롯해 삼성 LG 등 대기업에 직접 전화를 걸어 4백2억원에 달하는 불법 대선 자금을 수금한 장본인이다. 검찰에 따르면, 최의원의 전화를 받은 한 기업체 간부는 그의 전화 목소리에서 고압적 분위기를 느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 조사에서 자신의 혐의 내용을 인정하고도 그는 두 달 가까이 잠적해 검찰 수사를 피했다. 대검 안대희 중수부장은 “수사 협조나 하고 편파 수사라고 비난하라”며 최의원이 속한 한나라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검찰이 12월12일 체포영장을 청구하자, 최의원은 부랴부랴 다시 검찰에 출두했다. 12월23일 검찰은 최의원이 현역 국회의원 신분임을 감안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찬성 99표, 반대 1백33표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었다. 동일 사안을 두고 행동대장 격인 서정우 변호사가 구속 기소된 반면, 주모자 격인 최돈웅 의원은 금배지의 위력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최의원측에 공식 답변을 요구했지만, 노코멘트했다. 보좌관도 자리를 비운 채 의원실은 개점 휴업 상태였다.

정대철 의원은 표결 결과를 예견했는지, 자신의 운명이 결정될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해 7월18일 뇌물 수수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정의원은 체포동의안이 처리되는 날 지구당 행사에 참여하는 ‘통 큰 행보’를 보였다. 검찰에 따르면, 정의원은 2002년 4월과 12월 굿모닝시티 윤창렬 대표로부터 인허가 및 한양 인수와 관련된 로비자금 명목으로 두 차례에 걸쳐 2억원씩 현금 4억원을 받은 혐의다. 검찰은 정의원에게 전화로 소환을 통보했고, 세 차례에 걸쳐 서면으로 추가 소환장을 보냈다. 그러나 정의원은 ‘관행대로’ 바쁘다며 검찰 수사에 응하지 않았다. 관행을 거부한 쪽은 검찰이었다. 검찰은 곧장 정공법을 택해 칼을 뺐다. 정의원의 진술 없이도 소명 자료가 충분하다며 조사를 위한 체포영장 대신 사전 구속영장이라는 초강수를 내밀었다. 이례적으로 검찰의 입장도 발표했다. “굿모닝시티 수사의 주체는 검찰이 아니라 법이다.” 당황한 쪽은 정의원이었다. 정의원은 이에 대해 ‘검찰과 청와대 386 측근들의 음모’라며 반발했다. 뚝심 있게 버틴 정의원은 8월5일 검찰에 출두했다. 조사를 받을 때도 그는 금배지 프리미엄을 누렸다. 변호인이 조사 내내 입회했다. 송두율 교수의 경우, 검찰이 변호인 입회를 불허하다 대법원 판결이 나자 나중에야 허락한 경우와 대조된다. 정의원은 굿모닝시티로부터 받은 돈은 대가성 없는 정치 자금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민주당 박주선 의원은 친정(검찰)보다는 시집(정치권)이 든든한 후원자다. 지난해 6월20일 뇌물수수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그는 검찰권 행사를 당동벌이(黨同伐異:무조건 다른 파의 사람을 배격함) 수사라고 비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권으로 신당 띄우기를 일삼는다는 것이다. 박의원은 지난해 대검의 단골 손님이었다. 체포동의안은 나라종금 사건으로 제출되었지만, 현대 비자금 사건에도 그는 연루되었다. 검찰에 따르면, 박의원은 2000년 1∼4월 같은 고향 출신인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에게서 세 차례에 걸쳐 모두 2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2000년 9월에는 현대 정몽헌 회장의 국회 증인 출석 무마 대가로 3천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이 건은 불구속 기소되었다.
박주선 의원은 처음에는 나라종금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가, 나중에는 동생이 받았다고 해명했다. 동생이 받은 것도 그는 지난해 4월에야 알았다고 밝혔다. 현대로부터 받은 돈도 영수증 처리가 된 합법적인 정치 자금이라고 주장했다. 박의원은 현재 민주당 정치개혁특위 간사를 맡고 있다.

한나라당 박명환 의원은 지난해 6월20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2002년 11∼12월 자동차부품업체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6천만원을 받은 혐의다. 박의원은 47년 지인인 대학 동창으로부터 정치 자금을 받았고 영수증 처리를 했다고 주장하며 청탁 사실은 부인했다. 하지만 무엇이 당당하지 못했던지, 검찰에 소환된 박의원은 예정 시각보다 한 시간 먼저 출두해 취재진을 따돌렸다. 검찰이 예정된 시간에 들어오라며 되돌려보내 박의원은 포토라인에 서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박재욱 의원은 개인 비리 혐의다. 검찰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01년까지 1백40회에 걸쳐 자신이 설립한 ㄱ대에서 학교 공사비와 물품 구입 대금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교비 1백7억원을 자신의 친인척 계좌 등으로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뒤 개인 용도로 쓴 혐의를 받고 있다. 박의원도 의혹이 제기되자 처음에는 “검찰 조사에 당당히 응해 진실을 밝히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번번이 소환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대구지검이 3월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체포에 나섰지만 8월에야 자진 출두했다. 현역 국회의원 프리미엄이었다. 박의원은 12월30일 국회 신상발언을 통해, “대학에 돈을 갚고 있다. 지방 대학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호소했다. 16대 출마 당시 20억5천만원대의 갑부인 그는 재산세가 0원이었다. 당시 박의원은 “재산을 학교나 종교단체에 기부해 재산세가 없다”라고 해명했다. 검찰에 따르면, 그에게 학교는 사금고나 다름없었다. 박의원은 현재 한나라당 교육정상화대책특별위원이다. 한나라당 박주천 의원과 민주당 이훈평 의원은 현대그룹으로부터 국감 로비를 받은 혐의로 걸렸다. 박주천 의원은 2000년 9월 당시 정몽헌 회장을 국감 증인에서 제외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대로부터 5천만원을 받은 혐의다. 박의원측은 정상으로 영수증 처리를 한 적법한 정치 자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영수증 처리되었다 하더라도 ‘대가성이 있는 뇌물’이라고 못박았다.

민주당 이훈평 의원 역시 현대로부터 국감 로비를 받은 혐의다. 검찰에 따르면, 이의원은 2000년 9월 민주당 정무위 간사로 있을 때 정몽헌 회장 증인 출석을 제외한 대가로 자신과 친분이 있는 두 건설업체가 현대건설로부터 하도급 공사를 수주토록 도운 혐의다. 이의원은 “돈이라도 받았다면 억울하지 않겠다. 수사에도 성실하게 임했는데 갑자기 사전 구속영장 청구냐”라며 반발했다. 국민들의 비난에 대해 불사조 의원 들은 당혹해 하고 있다. 개중에는 억울한 이도 있을 수 있다. 잠자던 체포동의안에 불씨를 당긴 이도 있기 때문이다. 이훈평 의원이 그런 경우다. 이의원은 12월8일 어머니상을 당했다. 상중에도 그는 12월9일 본회의 신상 발언을 통해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며 조속한 체포동의안 처리를 요구했다. 박주선·박주천 의원도 이런 요구에 동참했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었지만, 불사조 의원들의 ‘잔여 수명’은 10일 천하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1월8일 임시국회가 끝나면 1월9일부터 31일까지 임시국회가 열리지 않는 비회기이다. 비회기 기간에는 불체포 특권이라는 방탄복이 제거된다.

검찰은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국회의원 7명에 대해 선별해서 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이다. 최돈웅 의원과 정대철 의원은 영장 재청구 0순위다.

의원 7인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은 국민들의 물갈이 욕구에 부채질을 했다. 물갈이 욕구가 강하면 현역 의원은 긴장하기 마련이다. 1월 첫째주 7인의 불사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주말을 이용해 지역 표밭을 누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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