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와 기회 함께 안은 국세청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1999.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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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자 과표 현실화 ‘숙제’ 풀 기회… “세무 조사 고삐 죄라”
안정남 국세청장은 최근 자신의 좌우 측근인 국세청 차장과 서울지방국세청장을 내정했다. 행시 기수가 늦은 이들이 1급 자리에 발탁되면서 행시 8∼10회 출신 국장급 7명이 용퇴했다. 이에 따라 고질적인 인사 적체로 신음하던 국세청에는 실로 오랜만에 연쇄 승진 바람이 불어닥칠 판이다. 이만하면 분위기가 뜰 만한데도 정작 국세청 내부에서는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국세청 밖에서 세금과 사회 보험의 형평성 시비를 둘러싸고 국세청 ‘원죄론’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소득 자영자들이 소득에 비해 세금을 적게 내고 있다는 월급쟁이들의 끊임없는 원성에 대해 국세청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원죄론의 요지이다. 국세청으로서는 정치권의 선심성 공세와 이에 맞장구친 재경부 탓에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납세자의 소득을 파악해야 할 책임은 국세청에 있다는 것이다.

윤건영 교수(연세대·경제학)는 국세청이 세무 조사를 해 탈세를 잡아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건춘 전 청장(현 건설교통부장관)은 98년에 97년보다 7배 이상 세무 조사를 많이 해 음성 탈루 소득 1조5천억원을 추징했다고 ‘자랑’했지만, 이것은 뒤집어보면 97년까지 세무 조사가 탈세자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무 조사야말로 조세 형평 이룰 효과적 수단"

조세연구원 현진권 연구위원은 “세제 결함을 개혁하는 일 못지 않게 세무 조사가 조세 형평성을 보장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는 것도 틀림없다”라고 지적했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 세무 조사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전체 납세자 가운데 소득세의 경우 0.2∼0.3%, 부가세는 0.1%의 납세자만이 세무 조사를 받고 있다. 선진국의 1∼5% 수준과 하늘과 땅의 차이인 것이다.

탈세 사실이 적발되어도 국민에게 알리는 경우는 드물다. 작년 7월 국세청이 탈루 사범 명단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고 평가한 것도 그동안 워낙 비밀리에 처리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일단 신고 소득을 100% 인정하고, 이 가운데 일정 퍼센트의 납세자만을 무작위로 뽑아 세무 조사를 하고, 탈세 사실이 적발되어도 사회에서 매장하다시피 하는 무거운 형벌을 내리지 않는다. 세무 조사 횟수 자체가 적은 데다 매우 죄질이 좋지 않은 경우에만 검찰에 고발해온 국세청의 ‘관대한’ 처분 행태 때문에 납세자들은 탈세가 얼마나 위험하고 반사회적인 행위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오히려 상당수 국민에게는 세무 조사가 표적 사정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세무 조사가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온 ‘전과’탓에 국세청 스스로 움츠러드는 구석도 있다”라고 시인했다.

국세청이 세무 조사에 역점을 두지 않았던 데에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한마디로 조세 수입 제일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장과 일선 세무서장 처지에서는 세수 목표 달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내내 세무 조사를 무자비하게 벌여 보아도 더 거둘 수 있는 세금은 1조원을 크게 넘기기 어렵다. 성실 납세를 유도해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는 세무 조사의 기대 효과를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서울의 한 일선 세무서장은 “일선 인력이 세금 신고를 받고 사후 관리를 하기에도 일손이 빠듯해 세무 조사에 크게 신경을 쓰기 어렵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국세청이 올 9월부터 기능 별로 조직을 개편해 세무 조사 인력을 2배 늘리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국세청은 사회 보험 제도를 뿌리 내리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도 받고 있다. 납세자들의 행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정책 수단을 가진 기관이 국세청이기 때문이다. 사회 보험료 부과 및 징수 업무까지 국세청이 맡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국세청은 67년 개청 이래 그들을 가장 괴롭혀온 문제가 자영자 과표 현실화였다고 말해 왔다. 국세청 처지에서 보자면 사회 보험을 둘러싼 최근의 갈등 국면은 해묵은 숙제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국세청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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