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차, 누구에게 넘어가나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9.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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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일부 채권단 ‘대우’ 낙점…전문가들 “절대 반대”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산업연구원(KIET). 한국의 대표적 국책 연구기관인 이들은 삼성자동차와 관련해 처음부터 끝까지 상반된 입장을 취해 왔다. 5년 전 삼성의 자동차 시장 진입과 관련해서는, 한국개발연구원이 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산업연구원이 중복·과잉 투자 문제를 내세워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5년이 흐른 지금 두 기관은 삼성자동차 처리 방향을 두고 또다시 정반대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삼성자동차 부산 공장이 경제성이 없다며 당장 폐쇄하라고 주장하는 반면, 산업연구원은 폐쇄하는 데 반대한다고 밝힌 것이다. 폐쇄에 반대하는 이유는 공장 설비가 최신식인데다, 내수만 따져도 2001년에는 과잉 생산 문제가 해소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5년 전 한국개발연구원 손을 들어준 정부가 이번에는 산업연구원 쪽으로 기울고 있다. 공장을 폐쇄하고 벤처 단지를 조성하자는 주장을 무시하고, 제 3자 매각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대우는 ‘SM5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인수 의향을 밝힌 상태이고, GM·포드도 유력한 인수 참여자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SM5, 지금도 생산하면 흑자 낼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이 사재를 출연하기 전만 해도 삼성자동차 부산 공장은 전문가들 사이에 ‘구제 불능 회사’로 통했다. 그 동안의 실적은 이를 뒷받침하고도 남았다. 지난해 삼성자동차 적자액은 6천7백71억원으로 매출액(6천1백38억원)보다 많았다. 올해 초 부산 공장을 실사한 세동회계법인은 부산 공장의 자산 가치가 1조5천억원이고, 10년간 가동했을 경우 1조원 이상 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런데 이회장의 사재 출연으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부채 4조3천억원을 털고, 부산 공장의 자산 가치에 해당하는 1조∼1조5천억 원의 부채만 떠안는 ‘클린 컴퍼니(clean company)’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동차 업계 원로인 강명한 삼성자동차 전 고문은 “이런 조건이라면 한 번 해볼 만하다. 외자 유치도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가 내세우는 논거는 이렇다. 매출액이 자산(자본+부채)의 1.2배에 불과한 일본의 도요타와 혼다도 해마다 엄청난 이익을 남긴다. 삼성자동차는 자산이 1조∼1조5천억 원이므로, 매출액이 1조8천억원만 넘어서면 흑자 회사로 거듭날 수 있다. 이미 우수한 성능을 인정받는 SM5를 15만대 정도만 만들어 팔면 되는 것이다. 부산 공장은 24만대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어서 당분간 추가 투자비도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는 “지금은 20만대만 만들어 팔아도 충분히 이익을 남길 수 있다. 2백만대를 넘어서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자동차산업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리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렇지만 그의 주장에도 단서가 붙는다. 우선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는 업체 경영진이 자동차산업에 대해 충분한 노하우를 갖고 있어야 하고, 추가 투자를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자금 여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현재 추진되는 삼성자동차의 제3자 매각과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현재 정부와 채권단은 삼성자동차를 대우에 넘기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 6월30일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사재 출연과 법정관리 방침을 밝힌 직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대우가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자이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후에도 비슷한 말이 정부 관계자 입을 통해 여러 차례 흘러 나왔다.

이에 대해 전문가와 채권 금융기관이 보인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찬성 입장을 밝히고 있는 쪽은 정부와 일부 채권 금융기관이다. 이들은 대우자동차에 삼성자동차를 넘김으로써 △국내 자동차산업을 현대·대우 양사 체제로 재편하고 △대우의 자금난을 간접적으로 덜어주며 △삼성자동차와 관련한 채권을 일찍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보호하겠다는 의지도 깔려 있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대우 인수안’에 반대한다. 가뜩이나 재정이 부실한 대우에 어떻게 삼성자동차를 넘기느냐는 것이다. 일부 채권 금융기관은 대우에 넘기면 계속해서 대출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우려하기도 한다.

이제 공은 채권단으로 넘어갔다. 이들이 삼성자동차를 외국 업체에 넘기면 현대·대우 자동차는 당장 국내 시장에서 외국 업체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이를 우려해 대우에 넘기더라도 국내 업체들은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을 뿐, 외국 업체와의 한판 대결은 피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채권단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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