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륜, 검찰의 양심에 종 울리다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9.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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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발표는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자는 몸부림…검사들 “존경하는 선배의 양심 선언”
지난 2월1일 대검이 수사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신년 벽두에 터져나온 이종기 변호사(47)의 대전 법조 비리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이 날 대검은 검사 25명과 판사 5명이 이변호사로부터 돈이나 향응을 받았다고 발표해, ‘변호사로부터 판검사로 이어지는’ 법조 3륜 비리를 밝히라는 국민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했다.

그러나 검찰의 대전 법조 비리 수사는 1월27일 심재륜 대구고검장(55)이 ‘항명’ 성명을 발표해 예상치 못한 소동을 겪었다. ‘국민 앞에 사죄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심재륜 고검장은, ‘대전 법조 비리 사건에 대해 본인을 포함한 법조인 대부분이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따라서 본인은 물론이고 검찰 수뇌부도 함께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정 검찰총장과 이원성 대검 차장을 중심으로 한 검찰 수뇌부는 심고검장의 성명 발표를 ‘항명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존경하는 선배 검사의 솔직한 대국민 사과문이다’ ‘양심 선언이다’라는 의견이 많았다.

법조 3륜이 한국 법조계의 상부 구조를 형성하는 지배층이라면, 언론사의 법조 담당 기자들은 ‘평생에 한번 판검사와 변호사를 만날까 말까 한’ 국민과 법조계를 이어 주는 핵심 ‘링커’들이다. 법조 기자들은 판검사·변호사와 함께 법조 문화를 형성하는 ‘법조 4륜’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다.

심재륜의 술안주는 멸치와 고추장

법조 기자들은 심재륜 파동 초기 이 사건을 ‘항명’이라고 보도했다. 검찰을 취재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현실’이 이런 결과를 낳았겠지만, 이로 인해 심재륜 파동은 상당 부분 왜곡되어 국민에게 전달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다음과 같은 한 부장검사(47)의 비판에서 확인된다.

“언론이 뭐하는 조직이냐? 사실을 보도하고 나면, 기준을 세워 시비 곡직(是非曲直)을 따져야 할 것 아닌가.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누가 왜곡을 하는지 따질 줄도 모르면서, 무슨 무관(無冠)의 제왕이냐? 한국 기자들은 정치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자기의 학연이나 지연, 자신의 투표 성향에 따라 편 들 쪽을 쉽게 결정한다. 그런데 심재륜 파동처럼 고도의 판단 기준을 세워야 하는 사건이 일어나면 무원칙하고 무책임하게 양쪽 주장을 그대로 내보낸다. 그러니 마녀 사냥을 한다는 비판을 듣는다.”

심재륜 파동에는 법조계에 대한 국민의 맹목적인 적대감과, 법조계 내부의 힘겨루기, 정치 검찰과 여론 정치에 대한 시비 등 여러 문제가 녹아 들어 있다. 이 거대한 파노라마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인간 심재륜에 대한 탐구부터 시작해 보자.공직자 재산 등록 때 밝혀진 심고검장의 재산은 3억1천만원으로 전국 검사장 중에서 꼴찌였다. 그는 대단한 호주가(好酒家)인데, ‘멸치와 고추장’은 호주가 심재륜의 상징어이다. 술은 먹어야겠는데 돈이 없으면 그는 후배 서너 사람과 카페에 가서 양주 1병에 맥주 7∼8병을 시킨 뒤 예닐곱 차례 폭탄주를 돌린다. 이때 안주는 기본으로 나오는 멸치와 고추장. 주인이 고검장님 오셨다고 땅콩이라도 서비스하는 날은 꽤 푸짐한 술상이 된다.

심재륜科 검사들, 성역 도전했다 옷 벗어

심고검장이 성명을 발표한 후 이원성 대검 차장은 이종기 변호사의 진술을 근거로 심고검장이 이변호사를 만나 고주 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셨다고 밝혔다. 이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 이변호사가 술집에서 심고검장을 만난 이상 당연한 관찰일 것이다. 심고검장이 술 마시는 원칙은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에 여자 있는 술집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고검장이 허름한 카페에 갔다는 데 대해 대검은 마땅히 반박할 자료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재륜은 ‘수사의 달인’이다. 다음은 그가 광주지검장이었을 때 산하 지청장을 지낸 한 법조인(41)의 증언. “초도 순시가 끝나면 지검장은 관광하거나 목욕하는 것이 관례다. ‘지검장님 내일은 휴일이니 관내 관광을 하시지요. 아니면 목욕이라도 갈까요’ 하면, 그는 언제나 ‘필요 없어’ 한마디였다. 내가 지청장을 하는 동안 그가 세 번 순시를 왔지만, 순시 기간 내내 수사 이야기만 하다가 돌아갔다.”

역시 ‘수사의 귀재’로 불렸던 함승희 변호사(48)는 저서 <성역은 없다>에서 ‘심재륜 선배는 이러이러한 성격의 피의자를 소환할 때는 저녁에 불러야 하고, 저러저러한 성격의 피의자를 소환할 때는 흐린 날 불러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고 썼다. 함변호사는 “심고검장은 시간과 천기(天氣)까지 보면서 수사할 정도로 수사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라고 말했다.

수사의 달인이라는 명예 뒤에는 ‘온 사방이 적’이라는 현실이 깔려 있다. 한 법조인은 “청탁도, 받아 본 사람이 잘하는 법이다. 심고검장은 남의 청탁을 받지 않으려고 싸구려 술집을 전전했기 때문에, 청탁하는 데 아주 서툴렀다. 그는 실력 하나로만 승진해 왔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인(45)은 “그는 검찰 다수 인맥의 하나인 서울고 출신인데도 ‘심재륜계(系)’를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심재륜과(科)’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함승희·문세영·홍준표·양인석 등 성역에 도전했던 검사들이 심고검장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인데, 이들은 모두 검찰을 떠났다. 97년 의정부 법조 비리 사건을 수사한 노관규 검사가 심재륜과에 속한 유일한 현직 검사일 것이다. 함검사 등이 검찰에 살아 남아 있었다면 심재륜 파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력으로만 승진하다 보니 심고검장은 불이익을 당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사시 7회인 그가 서울지검 3차장이 되었을 때, 1·2차장은 사시 8회였다. 서열을 중시하는 검찰에서 서울지검 차장이 ‘8·8·7’(사시 회수 기준)로 짜이자, 심고검장을 마지못해 승진시켰기 때문에 그런 구도가 만들어졌다는 분석이 떠돌았다.떡값 문제 삼으면 모든 판검사 물러나야 한다?

대검 중수부장은 32개 지검장급 자리 중에서 서울지검장과 함께 고검장 승진이 보장된 요직이다. 93년 지검장에 승진한 심재륜은 대전·광주·인천 지검을 돌았는데, 97년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한보 비리 사건이 터져 대검 중수부가 수사에 나섰는데, 국민은 물론이고 검찰 내부에서도 축소 수사를 한다는 비난이 일었다.

당시 대검 감찰부에 근무했던 한 검사(47)는 “그로 인해 젊은 검사가 기수별 모임을 갖고 검찰 수뇌부를 비판하는 ‘연판장’을 돌린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젊은 검사들이 단체 행동을 벌일까 봐 대검 감찰부가 급히 단속에 나섰다”라고 실토했다. 이렇게 되자 김기수 검찰총장은 급히 심재륜 인천지검장을 대검 중수부장에 임명했다. 전임 중수부장 ㅊ씨는 사시 9회였는데, 후임에 사시 7회가 임명된 것이다. 그러나 ‘평생 소원이 대검 중수부장’이라고 말해 온 심재륜은 이에 구애받지 않았다. 수사 검사 출신답게 ‘입이 건’ 그는, 살다 보니 내가 중수부장이 되는 일도 다 있다며 이런 말을 던졌다. “죽은 ××가 섰다.”

심재륜 중수부장은 김현철씨를 구속하고 한보 사건을 마무리했다. 김현철씨 구속은 심고검장이 성명서에서, ‘한보·김현철 비리 사건 수사 과정을 통해 이미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한 바 있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수사이다. 그러나 젊은 검사들이 격앙되어 있었던 당시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심재륜 아니라 누가 중수부장이 되든 김현철씨를 구속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러한 분석은 심고검장이 ‘김현철씨를 구속한 것에 너무 자만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깔고 있다.

그러나 한 현역 검사는 “심고검장만이 지닌 독특한 수사 기법을 무시할 수 없다. 그가 중수부장을 맡았기에 젊은 검사들이 흥분을 가라앉힌 것을 무시할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토사구팽(兎死狗烹). 한보 수사가 마무리되고 YS의 임기가 남아 있던 97년 말, 심재륜은 수사권은 물론 수사 지휘권도 없는 대구고검장에 임명되었다. 이에 대해 그는 “좌천성 영전이다”라고 자평했다.

그로부터 1년여 후 이종기 변호사 사건이 터지자, 변호사에서 판검사로 이어지는 법조 비리를 척결하라는 국민 여론이 높아졌다. 여론은 대통령을 움직일 만큼 무서운 힘을 발휘했다. 1월20일 국무위원 전원이 참석한 국무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박상천 법무부장관에게 대전 법조 비리를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이런 지시에 대해 한 법조인은 “YS가 국민 여론에 쉬이 편승하다 자멸했는데, 김대통령도 그런 면을 보였다. 이 지시로 인해 옥석을 가리지 않는 마녀 사냥이 시작됐다”라고 지적했다.

<시사저널> 제483호는 대전세무서가 이종기 변호사의 탈세 혐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변호사의 계좌 중 상당수를 이미 파악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자료는 모두 대전지검에 제출되었다. 또 대전지검은 대전세무서가 확보하지 못한 이변호사의 수임 장부를 압수했고, 추적팀을 동원해 이변호사 계좌에서 나온 돈의 행방을 추적했다.

그러나 계좌 추적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뿐더러, 판검사에게 금품을 건넨 사실이 밝혀진다면 상상치 못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게다가 이변호사 구속 만기일(2월1일)이 다가오자, 대검은 계좌 추적보다는 이 변호사 ‘입’에 매달렸다. 이변호사가 떡값이나 전별금을 주었다고 실토한 판검사 리스트를 받아 그들로부터 사표를 받는 ‘편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아무리 썩었다고 해도 판검사들은 사회 엘리트로서 명예를 중시하는 기백이 있다. 더구나 5공 들어 판검사들의 봉급이 많이 올라 변호사로부터 금품을 받고 형량을 낮추는 판검사는 거의 사라졌다. 97년 의정부 사건 이후에는 변호사로부터 수사비나 실비(室費)를 받는 판검사도 많이 줄었다.

검찰 사정을 잘 아는 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변호사의 진술은 97년 의정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전별금·떡값·휴가비를 준 것에 집중되었다고 한다. 이런 진술 때문에 ‘법관·검사 징계법’ 상의 징계 시효(2년)가 지나, 돈을 받은 판검사를 징계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만약 97년 이전에 떡값이나 전별금을 받은 것을 따진다면, 윤 관 대법원장이나 김태정 검찰총장 이하 거의 모든 판검사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특별히 떡값이나 전별금을 ‘밝히거나’ ‘챙긴’ 판검사가 아니라 대전 지역에 근무한 판검사만 처벌된다면, 그리고 그 많은 변호사 중 유독 이변호사로부터 돈을 받은 판검사만 징계된다면, 옥석을 가리지 못했다는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이에 대해 국민은 ‘돈을 받은 주제에 옥석을 따지느냐’고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1월27일 대법원에서는 검찰의 끼워넣기식 수사와 언론의 마녀 사냥식 보도를 제지하려는 판사들의 모임이 추진되었다(18쪽 딸린 기사 참조). 또 떡값이나 전별금을 받은 판검사가 많다면, 검찰과 법원의 조직을 책임진 검찰총장과 대법원장부터 용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1월23일쯤부터 검찰에서는 ‘누가 한방 터뜨릴 것이다’ ‘현역 검사가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할 것이다’라는 소문이 퍼졌다.

검찰, ‘심재륜=부패’로 몰다가 실패

심고검장의 성명 발표는 이러한 법조계 내부 분위기를 그야말로 한꺼번에 분출한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자 검찰 수뇌부는 조직을 해친 항명 사건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조직 조직 하는데 검찰이 무슨 조직 폭력배인가? 검찰은 국민을 위한 조직인데, 국민을 위한 검찰로 거듭나자는 그의 주장이 왜 검찰 조직을 해친 것인가. 검찰 치부를 공개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심고검장이 언론에 글을 쓰면 그 파장이 작아졌겠는가? 검찰 조직을 해쳤다고 떠드는 것에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라고 혹평했다.

대검은 심재륜 고검장이 한 대학 교수 사건을 이변호사에게 의뢰했다고 밝혔으나, 언론이 추적한 결과 사실 무근이었다. 심고검장이 이변호사로부터 받았다는 돈도 전별금 백만원뿐인데, 추적해 보니 심고검장을 모셨던 여직원이 ‘혼수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대검 수뇌부가 당황한 나머지 심고검장을 부패 검사로 만들려다 오히려 망신을 당한 셈이다.

법무부가 직무 정지를 결정한 뒤에도 심고검장이 출근하자 언론은 ‘출근 투쟁’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심고검장은 성명서에 분명히 퇴진 의사를 밝혔다. 다만 그는 검찰이 정치 시녀라는 비판을 받고, 후배 검사들까지도 다치게 되었으니, 검찰 수뇌부도 동반 퇴진하자고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한 변호사는 “모든 것을 버린 심고검장의 진의를 왜곡한다면, 이는 한국 지식인 사회가 졸렬하다는 증거다. 심고검장의 성명은 검찰의 양심을 때린 웅장한 울림이다”라고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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