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부리다 재앙 부른 ‘2000년 쇼크’
  • 崔寧宰 기자 ()
  • 승인 1999.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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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드 야거 등 ‘양치기 소년’ 경고 무시… 속도 쫓긴 인간의 업보
캐나다 출신 수학도인 피터 드 야거는 77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IBM사에 들어갔다. 입사 초기 그는 미국 전역의 은행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맡았다. 이 작업을 하면서 그는 해당 연도를 표기할 때마다 무심결에 ‘77’을 쳐 넣곤 했다.

그러면서도 뭔가 개운치 않았다. ‘2000년이 되면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그래서 하루는 상관을 찾아가 그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상관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 나이가 몇이지? 그런 문제는 자네가 45살이 되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않아. 그 때쯤이면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이 말은 그 후 20여 년간 Y2K 문제에 대해 각국의 컴퓨터 전문가들이 취한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드 야거는 달랐다. 95년 무렵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는 이와 관련한 최초의 인터넷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강연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드 야거보다 먼저 Y2K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한 사람도 있었다. 71년 최초로 Y2K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고문을 발표한 로버트 베머. 드 야거와 마찬가지로 IBM사 직원이었던 그는 이미 60년부터 네 자리 수로 연도를 표기하자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러나 백악관은 67년 국립표준원에 두 자리로 표기하라고 지시해서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베머 역시 드 야거나 IBM사처럼 Y2K 문제를 제기한 선구자였으나, 동시에 이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비록 상관의 반대 때문이라고는 하나 당시 널리 보급되어 컴퓨터의 표준이 된 IBM사의 시스템 /360에 두 자리 수 연도를 입력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오늘날 연도 표기 문제를 안고 있는 대표적 프로그램 언어인 코볼을 발전시킨 당사자였다.

왜 인류는 Y2K 문제에 대해서 20년 전쯤, 그러니까 베머나 드 야거가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했을 때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을까?

Y2K 문제의 발단은 50년대 코볼 언어를 개발하기 시작한 해군 장교 그레이스 머레이로 거슬러올라갈 수도 있다. 아니면 1890년 원시적 형태의 컴퓨터를 만들었던 허먼 홀러리스나 1945년 개발된 상업용 컴퓨터 에니악(ENIAC)과 유니박(UNIVAC) 개발자에게도 책임이 돌아갈 수 있다. 집채만한 컴퓨터를 운용해야 하는 사람들로서는 80칼럼의 천공 카드에 찍는 연도를 가능한 줄이려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주범으로 꼽을 수 있을까. 그보다는 차라리 유사 이래 변치 않았던 인간의 탐욕과 근시안, 앞뒤 재지 않고 신기술에 탐닉하는 태도를 탓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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